체르바이오나의 와인들.
전직 비행사 디에고 몰리나리(Diego Molinari)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아내도 승무원이었다. 그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25년을 채우자마자 미련 없이 조종석을 박차고 포도밭으로 달려갔다. 유니폼 대신 작업복을 입었고, 비행장 대신 포도밭에 착륙했다. 전 세계를 비행하며 여러 문화를 체험한 그는 지역성이 녹아 있는 와인의 참맛을 깨닫자 직접 와인을 담그고 싶어졌다. 알리탈리아항공의 반복되는 파업과 긴 비행시간에 염증을 느낄 때 도착지에서 맛보는 와인으로 시름을 달랬던 것이 계기가 됐다.
비전공자인 그가 만든 와인은 과연 어떨까? 토스카나의 몬탈치노에 있는 그의 체르바이오나(Cerbaiona) 양조장으로 가보자. 놀랍게도 그곳에서 만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01년산이 이탈리아 와인잡지 ‘감베로 로소’가 수여하는 2007 최우수 레드와인에 선정됐다. 도대체 어떤 와인이기에 그런 영예를 안았을까?
제2 인생 30년 열정 … 伊 최고 명품 제조
전통주의자들은 이탈리아의 개성, 즉 전형성(tipicita) 구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와인은 포도즙으로 만드는 것이라서 포도 맛이 나야지 오크통에서 우려난 나무 맛이 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전형성이란 마땅히 나야 하는 맛을 제대로 살려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체르바이오나는 나무 맛이 별로 나지 않는다. 나무 맛이 많이 배는 작은 오크통 대신 대형 오크통을 쓰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전통적인 숙성방식이다.
이 부부가 만든 와인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3년 빈티지였다. 양조장의 두 번째 품질 와인인 ‘로소’(Rosso·레드라는 뜻)를 맛본 한 기자에 의해서다. 그는 “로소는 브루넬로 양조장의 세컨드 와인이지만, 맛은 세컨드 같지 않다. 셰리(Sherry)나 브랜디처럼 맛이 좋고 호두향이 나 고소하다”고 썼다. 이를 계기로 체르바이오나가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부부는 그것이 오늘날 체르바이오나가 몬탈치노에서 손꼽히는 양조장이 되는 발판이 됐다고 고백했다.
체르바이오나는 자그마한 밭이다. 밭이 작으니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다. 고작 1.7ha(사방 130m 크기로 평균 8000병 생산하고, 최고가 품질을 만드는 로마네 콩티보다 작은 규모다)에서 브루넬로를 키우고 그 옆에서 그보다 작은 규모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등을 심는다. 브루넬로는 출시하기까지 4년이 걸리기 때문에 숙성기간이 덜 걸리는 로소는 양조장 운영을 위해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로소의 맛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통 프랑스 품종을 혼합한다.
1977년 몬탈치노에 정착한 부부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브루넬로는 1981년 빈티지다. 꼭 20년 만에 그의 와인은 지역 최고, 아니 이탈리아 최고 와인이 됐다. 지난 세월 전심전력을 다해온 부부에게 “다시 태어나도 와인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와인은 나의 숙명’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기대와 달리 그들은 손사래를 친다. 좀 당황해 그들의 표정을 살피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와인 양조의 길이 그만큼 힘들면서도 큰 즐거움을 준다는 뜻 아닐까? 와인에 얽힌 인생의 희로애락을 추억하면서 부부는 그렇게 ‘숙성’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