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모의 논술고사에서 1등 한 서울 대진고 이재성 군(3학년). 평소의 비판적 사고 습관이 답안 작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논술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투수가 타자의 빈틈을 공략하는 것처럼, 특정 제시문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특히 통합교과형 논술에서는 학생의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해 특정 제시문을 바탕으로 다른 제시문을 비판하라는 문제나, 자신의 견해에 대한 예상 반론을 서술한 뒤 재반론의 형태로 답안을 작성하라는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 따라서 제시문의 논리적 허점뿐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지닌 취약점까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숨겨진 전제 추론, 주장과 반대되는 사례 들어 비판
제시문을 비판하는 답안 작성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제시문의 논거나 전제를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방법이다. 제시문의 논거와 전제는 제시문의 논지를 정당화하는 도구 구실을 한다. 따라서 논거와 전제를 논리적으로 비판한다면 제시문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둘째, 동일한 전제를 바탕으로 제시문과 다른 결론이 나온 사례를 들어 제시문을 비판하는 방법이다. 즉, 반증의 사례를 통해 제시문의 논리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해 제시문을 비판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의 한 지역에 그곳 나치 사령관과 각별한 친교를 맺은 폴란드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유대인 수용소에서 한 유명 인사가 탈출했고, 어쩌다 그 남자의 집에 몸을 숨기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 나치 사령관이 일단의 부하를 이끌고 그 남자 집의 문 앞에 와서 혹시 탈주범을 봤느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아무도 못 봤다고 말했다. 친구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고차의 도덕원리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일상적 도덕원리가 무시될 수 있다.
-서울시립대 2007학년도 인문계 논술 예시문항
이 제시문은 도덕원리가 충돌할 때 고차의 도덕원리를 위해 일상의 도덕원리를 무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주장을 정당화하는 사례로, 폴란드 남자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탈출한 유명 인사의 목숨을 위해 나치 사령관에게 거짓말한 이야기를 제시했다. 즉,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원리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원리가 충돌할 때 후자의 도덕원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 제시문은 숨겨진 전제를 추론해 비판할 수 있다. 이 제시문을 쓴 저자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원리는 서로 다른 차원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하지만 도덕규범에는 상위 규범과 하위 규범으로 나눌 수 없는 규범이 존재한다. 따라서 각각의 도덕원리가 지닌 위상이나 도덕원리 간의 우선 여부를 구분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이 글의 숨겨진 전제를 비판한다면 고차적 도덕원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결론과는 다른, 차별성 있는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 제시문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례를 들어 비판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굶어죽는 현실에서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재산을 강탈해 나눠주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때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규범이 사적 소유물을 인정해야 한다는 규범보다 고차원적인 것이라며 타인의 소유물을 강탈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제시문의 주장은 도덕규범이 충돌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