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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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이 더 큰 ‘프린터 경제학’

제조사들 토너와 잉크 절약 숫자 왜곡 … 싼 맛에 충동구매 땐 유지비 덤터기

  • 정지연 기자 전자신문 퍼스널팀 jyjung@etnews.co.kr

    입력2007-05-23 18: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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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꼽이 더 큰 ‘프린터 경제학’

    프린터 회사들이 내세우는 ‘최대 출력매수’와 ‘장당 출력비’는 신뢰하기 힘든 수치다.

    프린터와 복사기, 팩스를 통합한 ‘디지털 복합기’는 이제 사무실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IT(정보기술) 기기가 됐다. PC와 디지털카메라의 보급률이 각각 80%, 50%로 상승하자 ‘출력’의 필요성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애초 사람은 ‘비트(bit)’보다 ‘아톰(atom)’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디지털 복합기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잉크, 토너, 인화지 등의 소모품 비용이 기기의 최초 구입가격을 웃도는 현상이 일어났다. 제조회사들도 ‘배(구입 비용)보다 큰 배꼽(유지 비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값싼 제품으로 소비자를 현혹해 비싼 유지비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출력비를 포함한 유지비가 더 싼 제품을 찾아내는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 이른바 ‘프린터 경제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배경이다.

    문제는 복합기 제조사들이 내세운 ‘프린터 경제학’의 기준 숫자에 상당수 함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제조업체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토너 또는 잉크가 몇 장을 출력할 수 있느냐’ 하는 ‘최대 출력매수’와 A4 용지 한 장을 출력하는 데 드는 ‘장당 출력비’를 주된 기준으로 내세운다.

    시판 중인 소호(SOHO)용 흑백 레이저 프린터는 A4 용지 기준으로 최대 출력량이 1200∼2500장, 장당 출력비는 10∼20원이 보통이다. 컬러 잉크젯 프린터의 경우 최대 출력량은 400장 안팎, 컬러사진은 장당 200∼500원으로 비싼 수준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프린터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 수치들이 알고 보면 사실을 왜곡한 숫자라는 게 프린터 업체들의 과열경쟁 과정에서 잇따라 드러났다.

    다국적 프린터 업체인 C사는 얼마 전 프린터에 기본으로 장착된 카트리지의 토너가 ‘가득 찼다’는 내용을 광고로 내보냈다. 이는 경쟁사 토너의 함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은연중 폭로한 셈이다. 실제 대부분 프린터 업체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기본 장착된 카트리지에는 토너와 잉크를 100% 채워넣지 않고 출고한다고 한다.



    ‘장당 출력비’에는 더 많은 거품

    이에 앞서 F사는 시장 1위인 H사의 특정 제품과 비교광고를 시작하면서 자사에 유리한 면만 강조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분노한 H사는 맞소송을 준비했지만 결국 언론에 반대 해명을 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프린터 업계가 내세우는 최대 출력량의 기준이 A4 용지 전체에 문자를 입력했을 때가 아니라 A4 용지의 5% 정도만 채웠을 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한 개의 토너 카트리지당 최대 출력매수가 2500장이라고 표기된 프린터는 실제 A4 용지 전체에 워드 문서를 작성해 출력하면 100여 장만 출력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당 출력비’에는 더 많은 거품이 포함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프린터 업체들이 제시하는 장당 출력비는 카트리지당 출력이 가능한 매수를 해당 카트리지의 가격으로 나눈 수치인데, 이는 앞의 출력 기준을 바탕으로 한 데다 실제 프린터 구입비 등은 반영하지 않아 거품이 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제품 소개 팸플릿이나 광고 등에는 이 수치들만 부각되고 있다. 유지비에 대한 고민 없이 값싼 가격에 눈이 멀어 프린터 기기를 충동구매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일찍이 미래학자들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종이 없는 사무실이 구현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오히려 프린터와 복사기 시장은 커가고 있으니 이만한 아이러니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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