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슬러’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평생 도박벽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가난에서도 헤어나지 못한 사람의 뒤늦은 ‘참회록’이었다.
인간의 심리에 정통한 소설들을 썼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이나 할 일이라면서도 도박에 빠져들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도박에는 그 이상의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
“딴 돈은 번 돈보다 두 배 더 달콤하다.”
폴 뉴먼 주연의 영화 ‘허슬러’에 나오는 이 대사는 도박의 중독성과 흡인력을 한마디로 표현해준다. 그 짜릿함과 극적인 묘미 때문에 도박은 영화에서 즐겨 다뤄졌다. 특히 1980~90년대 홍콩 영화는 도박장이 주무대였다. 주윤발의 ‘정전자’나 ‘지존무상’ 등 수많은 도박영화들이 홍콩 극장가를 장악했고, 한국에도 거의 빠짐없이 수입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달콤함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일 터. ‘영광은 짧고, 상처는 긴’ 셈이다. 영화에서 도박사들의 삶은 대체로 영광보다는 상처에 앵글이 맞춰져 있다. 이들의 캐릭터는 패배자나 인생 낙오자의 전형들처럼 묘사된다.
최고 도박사가 되고 싶었던 젊은 도박사의 얘기를 그린 영화 ‘신시내티 키드’의 클라이맥스는 스티브 맥퀸이 분한 주인공 신시내티 키드가 결국 비참한 패배를 맛보는 장면이다. 엄청난 판돈이 오간 마지막 베팅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패로 승리를 확신하지만 상대편인 당대 최고수 하워드는 마법처럼 마지막 카드로 잭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면서 최고 패인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완성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대목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내기를 하나 더 보여준다. 어쩌면 이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인지 모른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호텔을 나온 신시내티 키드는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는 구두닦이 소년을 만난다. 소년의 간청대로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지만 신시내티 키드는 이번에도 지고 만다. 최고수라도 우연과 불확실성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위태로운 인생인 것은 앞서 언급한 ‘허슬러’의 주인공 에디 펠슨도 다르지 않다. 그는 별명이 ‘날쌘돌이’일 만큼 당구 솜씨는 날래지만, 세상의 물정이나 자기 관리에는 그렇지 못했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던 그는 결국 마지막에 모든 걸 잃고 만다. 경기장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하우스 주인은 에디에게 “넌 타고난 패배자”라고 말한다.
도박장에 가는 사람들에겐 패배가 분명히 예정돼 있다. 도박의 승률은 결국 도박장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다시 한번, 왜 사람들은-최근 ‘바다이야기’에서 보이는 것처럼-도박에 빠져드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질문조차 부질없는 것인지 모른다. 영국의 사회학자 거다 리스가 ‘도박’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모두 도박사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도박적”이라고 말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