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페스큐 러프에 들어간 공을 찾는다 해도 페어웨이로 빼내는 것보다는 언플레이 볼을 선언하는 게 낫다.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포스 만을 다리로 건너 동해안도로를 타고 한 시간 반쯤 올라가면 인구 10만의 작은 고도(古都) 세인트앤드루스가 나타난다. 세인트앤드루스 시가지 서북쪽 바다에 반도로 돌출한 삼각형 땅을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라 한다. 이곳엔 6개의 골프 코스가 경계도 없이 붙어 있어 조감도를 보면 손가락 마디의 지문처럼 홀들이 이어져 있다.
600년 된 올드코스는 그 한복판에 자리잡았고, 110년 된 뉴코스는 올드코스 동쪽에, 그 너머 108년 된 주빌리 코스가 바닷가로 이어져 있다.
올드코스 서쪽으로 90년 된 에덴코스, 그 옆에 1993년에 문을 연 스트라티럼 코스, 그 아래 9홀 파 30인 발고브 코스 등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엔 6개의 코스가 모여 있다. 모두가 퍼블릭 코스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 올드코스 ‘황당한 디자인’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에서 라운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 올드코스만 빼고!
올드코스의 그린피는 4~10월 성수기 때 24만원, 12~3월은 11만원으로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부킹은 대단히 어렵다. 2년 전에 편지나 팩스, e메일로 신청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 신청할 땐 공식 핸디캡(남자 24, 여자 36 이하) 증명서와 자신이 속한 클럽의 골퍼 한 명을 지명해 그의 연락처도 알려줘야 한다.
올드코스엔 복권제도가 있다. 하루 전, 혹은 당일에 추첨으로 몇 자리를 뽑는 ‘하늘의 별따기’ 제도다.
“예약 받은 날짜에 부모가 돌아가셔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을걸요.” 내가 묵었던 세인트앤드루스 시내 조그만 호텔 주인의 얘기다.
2004년 3월13일 나는 운 좋게도 이곳에서 라운드하는 기회를 잡았다. 1번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서니 중세의 건물에 둘러싸인 드넓은 페어웨이 왼쪽 끝으로 스윌칸브리지가 보이는 너무나 눈에 익은 모습에, 그리고 내가 골프의 메카에서 마침내 라운드를 한다는 감격에 가슴이 방망이질쳤다.
그러나 코스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황당하다. 1번과 18번 페어웨이가 엇박자로 공유한다. 1번 홀에서 티샷 한 공과 18번 홀에서 티샷 한 공이 하나의 페어웨이 위에 떨어진다. 2번 홀 파4, 411야드. 우드를 잡고 파온을 시도하려는데 그린에 깃발이 두 개다. 오른쪽에 붉은 깃발, 왼쪽에 흰 깃발로 그린 하나에 홀이 두 개다. 무려 7개 그린이 그런 식으로 두 개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이다.
아웃코스는 붉은 깃발, 인코스는 흰 깃발이지만 언제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 험한 링크스 코스에서 아마추어가 어떻게 흰 깃발 쪽으로, 붉은 깃발 쪽으로 정확하게 공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3번 홀에서 퍼팅을 하고 있는데 핑 하고 공이 날아와 목덜미 옆을 스치며 그린 위에 떨어진다. 15번 홀에서 세컨드 샷 한 공이다.
‘골프다이제스트’는 미국 외 세계 100대 골프 코스를 선정하며 올해도 그 맨 앞자리에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를 앉혀놓았다. 이 선정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계 랭킹 1위라는 자리가 골프 코스 디자인 측면에서 최고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설계자가 없다. 굳이 설계자를 찾으려면 공동설계자로 토끼와 목동들을 꼽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골프계의 원로나 골프 칼럼을 쓴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라운드하고 온 뒤 ‘코스의 간결미’ ‘레이아웃의 자연미’ ‘코스의 심미성’ ‘골프의 신이 디자인한 완벽한 코스’ 등의 수사를 늘어놓으며 새빨간 거짓말을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