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9일 민주당의 제주 경선대회 모습.
우리당은 9월12일 광주를 시작으로 지역을 돌며 토론회를 개최해 여론을 수렴 중이다. 당내 한 핵심 부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걸러진 여론과 아이디어를 토대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위한 개정 사항(안)’(이하 개정안)을 만들었다. 개정안의 골자는 크게 서너 가지. 먼저 옥내에서만 가능한 합동연설회와 토론회를 옥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개정안은 선거비용 문제도 손을 봐야 한다고 적고 있다. 우리당 일각에서는 선거 비용 상한액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흘러나온다.
또한 예비후보자 등록을 선거일 240일 전에서 선거일 300일 전으로 앞당겨야 한다는 내용도 거론되고 있다. 10인 이내 선거사무원의 경우 국회의원 지역구 수(236개)나 시도별 10인 이내(160명)로 바꾸는 것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을 우리당의 최종안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게 중평이다. 한 관계자는 “아직 여론을 수렴 중이며 당 관계자들의 논의에 따라, 또 야당과의 협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개정안에서 제기된 문제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추진과 흥행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당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오픈 프라이머리의 추진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설사 실현되더라도 ‘파괴력’이 상당 부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정안을 접한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돈 및 조직 선거 등을 이유로 부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어 우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국민참여 비율 100%, 감동 배가 작전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이 채택했던 국민참여 경선은 주말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지켜본 국민들은 열광했고, 감동한 국민들은 너나없이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민주당 경선의 국민참여 비율은 50%. 우리당은 이 50%의 국민참여 비율을 100%로 높여 감동을 배가시킨다는 복안이다. 우리당 관계자들은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국민 수를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400만 명으로 예상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 같은 대형 후보가 없는 우리당은 이 과정을 통해 ‘흥행과 후보 띄우기’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수백만의 국민들이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뽑힌 후보는 ‘국민후보’로 손색없다는 게 우리당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열린우리당이 만든 오픈 프라이머리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사항(안).
‘주간동아’가 입수한 이 개정안에는 몇 가지 부분에 대한 우리당의 입장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합동연설회 또는 합동토론회 장소 문제. 현행 공직선거법 제57조 3항(당내 경선운동)은 정당의 합동연설회 및 합동토론회 개최 장소를 옥내로 제한하고 있다. 특정 정당의 경선 내용이 일반인들에게 흘러 들어가 영향을 주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우리당은 이 조항을 ‘정당의 합동연설회 또는 합동토론회를 옥내 또는 옥외의 지정된 장소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단, 옥외 선거운동은 지정된 장소의 반경 50m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범위도 제시했다. 과도한 선거운동을 경계하자는 의도로 읽힌다.
공직선거법 제60조 2항(당내 경선운동)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의 경우 예비후보자 등록은 선거일 240일 전으로 못 박고 있다. 이 조항은 2005년 8월 신설됐다. 그러나 오픈 프라이머리가 2002년 민주당 경선처럼 국민 축제로 자리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당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을 남겼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예비후보자등록을 선거일 300일 전으로 개정하자는 것. 이 경우 2007년 벽두부터 대선 바람이 전국을 강타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도 이 점을 거론하며 “오픈 프라이머리가 과도한 선거 열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조적으로 과열 부를 소지 높아
성공적인 오픈 프라이머리를 위해서는 지역별 조직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당의 개정안은 ‘선거사무원 수를 국회의원 지역구 수(243명) 또는 시도별 10인 이내의 수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는 당내 경선이 조직선거로 흐를 것임을 암시한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62조 2항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선거사무원을 10명 내외로 제한하고 있다. 이 선거법은 2004년 3월 신설된 내용으로, 2005년 8월 개정됐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경우 기존 선거운동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을 오가며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필연적으로 선거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의식한 우리당은 개정안에서 ‘선거 비용을 명시한 관련 법규의 수정’을 제의했다. 이와 관련해 당 일각에서는 경선 비용 상한액을 조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개정안 작성에 참여한 인사들도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당은 10월 초 현재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안을 짜지 못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잘못하면 돈선거라는 역풍을 부른다”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당은 경선 방법과 관련해 법 조항의 신설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정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방법에 있어 투표방식은 정당에서 선택한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는 사람이 기표소(투표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기표소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 어디서나 사람이 있으면 기표소를 만들어 투표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기표소를 사방에 설치해 참여율을 높이는, 인기투표의 또 다른 형태”라며 평가절하했다.
‘남의 잔치에 멍석을 깔아주고 싶지 않은’ 속사정도 있지만 “돈선거, 조직선거라는 고질적 병폐가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구조적으로 선거 과열을 부를 소지가 많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나선 주자들은 전국 구석구석까지 조직원을 두고 선거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과정에서 국민 혈세는 물론 대선 때와 비슷한 조직과 자금이 동원될 수도 있다. 이미 우리당 주변에서는 중앙당 후원회 부활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은 “선거일 300일 전 후보를 등록하거나 옥외행사를 허용하는 문제 등은 돈선거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며 “우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개정안을 순수히 받아들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어게인(again) 2002’를 향한 우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의 성패는 결국 한나라당의 손에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