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성들은 탐스러운 여성성을 마음껏 뽐내며 살아간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만큼이나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나라인데도 사고방식이나 민족 정서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 차이가 패션 스타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오전 8시. 런던 지하철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넥타이 부대’의 물결이다. 정장에 커프스 링까지 한 런던 신사들, 그리고 이에 질세라 흰 셔츠에 바지 또는 치마 정장을 한 여성들의 모습은 트레디셔널 정장 잡지의 한 페이지를 오려낸 듯했다.
같은 시간 파리 지하철 안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물론 업종에 따라 런던 사람들 못지않게 ‘드레스 업’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노타이에 좀더 컬러풀한 셔츠를 입은 남성, 또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울라치면 민소매에 가슴 굴곡이 훤히 드러나는 블라우스를 입고 나서는 여성들이 넘쳐나는 게 파리다. 색상 대비만 해도 런던이 흑백사진에 가깝다면 파리는 알록달록한 수채화다.
특히 노출에 대한 파리 사람들의 ‘관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공영방송에 등장하는 아나운서나 기상 캐스터도 가슴 굴곡이 드러나는 ‘클리비지 룩’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성인 내 눈에도 뉴스 내용보다는 그녀들의 ‘비주얼’에 시선이 간다. 가을에도 줄기차게 ‘클리비지 룩’만을 선보이는 한 미녀 기상 캐스터에게는 그녀의 옷장에 가슴이 파이지 않은 디자인의 옷이 있기는 한 건지 묻고 싶을 정도다.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프랑스의 한 유명 럭셔리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이 회사 임원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여한 임원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이날 날씨가 상당히 더웠다는 점을 감안해도 우리나라로 치면 이사나 상무급인 이들이 가슴선이 드러나는 짧은 소매의 옷을 입고 나타나 깜짝 놀랐다. 이 회사가 패션 기업이라고는 해도 업계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꼽히는데 말이다.
신이 준 몸매 마음껏 뽐내며 거리 활보
프랑스 여성들의 이런 개방적인 옷차림을 두고 아시아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영국에서 온 친구들조차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파리에 사는 영국인 친구 알렉시아 루소는 “만약 영국이나 미국계 회사에 여성들이 저런 옷차림으로 출근하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비난받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본드 스트리트, 슬론 스트리트 등에서 목격한 영국인들의 옷차림은 우리 눈에는 덜 이질적이었다. 유행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에 집중하는 파리지앵들에 비해 훨씬 트렌디하고 유행을 많이 탄다는 점도 우리나라의 여느 대도시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런던에서 볼일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나선 가을 옷 쇼핑에서, 저녁 모임에 입을 옷을 찾다 보니 여전히 가슴선이 많이 파인 옷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파리에서 살다 보니 이런 옷들을 보는 사람이나 입는 사람 모두 민망하지 않게 변형해 입는 센스도 발달하게 된다.
물론 가끔은 신이 주신 축복, 탐스러운 여성성을 마음껏 뽐내며 살아가는 파리지앵들이 부럽기도 하다. ‘크기’에 상관없이 누구나 노출하는 그들의 당당함까지도 말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파리의 남성들이 더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