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때서 소주를 내리고 있는 모습.
그런데 요즘 소주가 변했다. 20도 정도의 도수에 쓴맛도 거의 없다. 소주엔 청주의 부드러움은 없지만, 나름의 깨끗한 뒷맛은 있다. 나는 청주를 버리고 20도짜리 소주를 두어 달째 마시고 있다. 이게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릴 수 있나 하고.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시기는 고려시대 몽골에 의해서다. 그 전까지 우리 민족은 곡물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막걸리, 그리고 여기에 용수를 박아 떠올린 맑은 약주를 마셨다. 이 약주를 소주고리에 넣고 불을 때서 증류한 것이 소주다. 그래서 소주의 ‘주’ 자는 한자로 술주 자가 아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소주의 ‘주’를 한자로 쓰는 내기를 한다. “주 자 제대로 쓰면 내가 술값 내고, 틀리면 네가 술값 내는 거야.” 상대방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것도 못 쓸까봐”라면서 ‘酒’라고 턱 쓴다. 그러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소주의 한자는 ‘燒酎’다. 불 기운으로 두 번 거른 술이란 뜻이다. (지금까지 나의 승률은 100%다. 독자 여러분도 술자리에서 내기 한번 해보시길.)
전통 소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안동소주, 문배주 등이다. 이들 술은 명주에 든다. 이외에 알려지지 않은 소주들도 있다. 예전 집에서 몰래 내린 밀주인데, 이런 술들이 꽤 있다. 전국을 돌며 음식 여행을 할 때 이 밀주들을 찾아 마시는 일을 했는데, 사실 그다지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었다. 소주 내리는 기술이 간단치 않은 까닭이다. 불과 물, 알코올의 ‘생리’를 완벽하게 파악해야만 단내 나지 않고 역겹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순한 소주를 내릴 수 있다. 전문가들 의견으로는 소주 내리는 공력이 적어도 20년쯤 되어야 “소주 좀 내릴 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음식 바뀌니 술도 바뀌어 … 독한 소주 “캬” 소리 그리워
이런 밀주들 중에 내 입에 최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법성포 소주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는 고려시대 몽골의 해양 전진기지 노릇을 했는데, 그때 몽골인으로부터 소주 내리는 비법을 전수받아 아직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동네 사람들의 말로는 네댓 집에서 소주를 내린다고 한다. 밀주이니 내놓고 파는 집이 없어서 법성포 포구 근처 식당들을 배회하며 ‘집에서 내린 소주’를 찾아야 한다. 서너 번 이 술을 맛봤는데, 이만한 소주는 정말 드물다. 낮은 불에 천천히 내려서인지 단내가 전혀 없고, 깨끗하게 넘어가며, 뒷맛이 깔끔하다. 또 술기운이 저 아래 단전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좀처럼 머리까지 치지는 않는다. 좋은 술은 아래에서 기운이 올라오고 나쁜 술은 가슴, 더 나쁜 술은 머리에서부터 올라온다. 만취 후 다음 날 아침이 가뿐한 것도 이 술의 매력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전통 소주를 거의 마시지 못한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소주 내리는 집도 드문 까닭이다. 우리가 주로 마시는 것은 ‘공장 소주’다. 이들 소주는 ‘숯에서 몇 번을 걸러 순하다’고 광고하지만 라벨을 자세히 보면 이것저것 ‘조미료’를 넣어 독한 맛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한 민족이나 국가가 지니고 있는 음식문화의 절정은 술이라고 말한다. 그 술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있어야 의미가 있다. 한때 한국의 술은 막걸리였다. 김치나 된장에 풋고추만 있어도 맛있는 술이었다. 그러니까 채식에 어울리는 술이다. 최근의 한국 술은 소주다. 육식이나 짜고 매운 음식과 어울려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두어 달 동안 20도짜리 소주를 줄곧 먹으며 소주 회사의 마케팅이니, 여성 음주문화의 변화 등 ‘순한 소주 시대’에 대한 여러 원인들을 들었다. 다 일리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맛칼럼니스트로서의 내 시각은 이렇다. ‘음식이 바뀌니 술도 바뀌는 것’이라고. 육류에서 해산물로, 강한 맛에서 순한 맛으로 한국인이 즐기는 음식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 이런 흐름이라면 ‘독한’ 전통 소주는 맥을 더 못 출 것으로 예상돼 한편으로 서운한 감정이 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