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충남 금산에서 열린 인삼 축제 행사장에서 홍삼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는 직원.
실험 결과 A 쥐는 36초 만에 돌출물을 찾아내 휴식을 취했다. 반면 B 쥐는 이보다 14초나 빠른 22초 만에 돌출물을 찾아냈다. 두 쥐의 차이점은 딱 하나, B 쥐에게 홍삼 추출물을 투여했다는 점이다. 이 실험은 홍삼이 인지력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홍삼의 이 같은 효능이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9월26일 충남 금산에서 열린 국제 인삼 심포지엄에서 노섬브리아대학의 데이비드 케네디 교수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케네디 교수는 이날 “홍삼 추출물이 인간의 기억력과 업무수행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18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홍삼 추출물과 위약을 각각 복용시킨 결과, 홍삼 추출물을 복용한 그룹이 좀더 높은 업무수행 능력을 보였다는 것. 인삼의 여러 가지 효능 가운데 하나인 ‘인지능력 향상’이 동물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인병 예방 등 기존 효능 외에 추가 효능 입증
홍삼은 수삼을 껍질째 찌고 건조시켜 수분 함량이 14% 이하가 되도록 가공한 것이다. 제조 과정 중 갈색화 반응이 촉진돼 농다갈색의 색상을 띠며, 매우 단단한 형태로 원형이 유지된다. 홍삼은 제조 과정에서 우리 몸에 유익한 생리활성 성분을 다양하게 생성해낸다.
홍삼은 총 34개의 유효 사포닌 성분을 지니고 있으며, 사포닌은 항암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삼은 당뇨 및 고혈압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노화 방지, 혈액순환 개선, 치매 예방 등에도 효과가 있다. 케네디 교수는 이런 홍삼의 일반적 효능 외에 실험을 통해 또 다른 효능이 있음을 입증한 것.
금산 인삼 축제 행사장의 전경(위).<br>데이비드 케네디 교수(아래).
케네디 교수는 홍삼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18명의 성인을 선발해 실험했다. 9명씩 두 군으로 나뉜 임상실험 참가자들은 총 20주 동안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 이들은 8주-4주-8주 등 3단계로 진행된 임상실험 기간에 자신이 어느 군에 속해 있는지 전혀 몰랐다.
케네디 교수는 첫 8주 동안과 마지막 8주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홍삼을 투여한 지 1일, 29일, 57일째 아침에 홍삼 투여 전과 홍삼 투여 3시간 후에 작업기억력을 평가하는 ‘3-백’ 실험과 공간작업 능력을 평가하는 ‘코르시 블록’ 실험을 했다.
두 실험 모두 29일째보다는 57일째에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 즉, 홍삼을 장기간 복용할 때 인지능력 향상 효과가 더 큰 것으로 확인됐다.
3-백 실험에서 홍삼 투여군은 29일째와 57일째 측정에서 각각 -0.101, -0.164를 보였으며 코르시 블록 실험에서도 각각 0.23, 0.60을 나타내 홍삼을 단기간보다 장기간 복용했을 때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3-백 실험은 마이너스 수치가 높을수록, 코르시 블록 실험은 플러스 수치가 높을수록 업무수행 속도가 향상되고 있음을 뜻한다.
고려인삼학회 한 관계자는 케네디 교수의 실험 결과와 관련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임상 참가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먼저 홍삼 투여군에 속하면 다음에 위약군에 속하고, 먼저 위약군에 속하면 다음에 홍삼 투여군에 속하도록 하는 등 연구 방법에서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인삼, 치매 환자에게 효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번 연구는 인지능력 분야와 관련된 홍삼의 효능에 대한 학술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학술적 의미가 더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험결과를 토대로 홍삼이 뇌 기능에 미치는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김만호 교수팀은 9월26일 인삼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기능 개선에 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김 교수 팀은 연구를 위해 알츠하이머 환자 63명(평균 67세)을 인삼 치료군 42명과 대조군 21명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인삼 치료군에는 하루에 인삼 분말을 4.2g 투여하고 대조군에는 보존적 치료를 했다. 12주가 지난 후 인삼 치료군도 대조군과 마찬가지로 보존적 치료를 했다.
이후 4주, 12주, 24주째에 인지지능정도측정법(MMSE)과 치매측정지표(ADAS)를 이용해 인지기능 개선 정도를 측정한 결과, 인삼 치료군이 훨씬 더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측정지표 점수의 경우 12주째에 대조군은 3.2점 감소에 그쳤으나, 치료군은 6.7점이 감소되면서 호전됐다. 하지만 인삼 투여를 중지한 뒤에는 인지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해 24주째에는 대조군과 차이가 없었다.
노인이 인삼을 복용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실험 결과는 과거에도 보고된 적이 있다. 1989년 불가리아 페트코프 박사는 인위적으로 기억상실증을 일으킨 쥐와 늙어서 기억력이 저하된 쥐에게 인삼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조사한 뒤 “인삼이 기억력 증진에 아주 유효했다”고 보고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사이토 교수도 유사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뇌기능 활동에 인삼이 효과가 있으며, 유효성분은 ‘인삼 사포닌’이라고 보고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인삼과 뇌 질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케네디 교수와 김만호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이런 흐름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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