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본질은 그 어떤 도박꾼도 돈을 ‘생산’하지 않는 데 있다. 도박은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 돈다발을 끄집어내게 하여, 그렇게 모인 재화를 재분배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도박을 한다.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지만, 확률이란 중력을 떨치고 한탕을 거머쥐는 일은 짜릿하다. 경쟁에서 최고수가 되어 절정의 순간에 오르려 하는 심리는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 중 하나다. 게다가 인생은 가끔 인간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베팅하라며 부추긴다.
영화 ‘타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짜’는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영웅담이나 도박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물이 아니다. 한국판 ‘도신’도 아니다. ‘타짜’는 크게 지르고 빨리 먹으려는 인간들의 욕망에 관한 보고서다. 이름 그대로 ‘꽃으로 하는 싸움’인 화투는 꽃의 속성대로 빨리 피고 빨리 진다.
가구공장 공원으로 누나의 위자료를 화투판에 몽땅 갖다 바친 주인공 고니는 우여곡절 끝에 이 세계의 고수인 ‘평경장’을 만난다. 그런데 평경장은 만나는 그날부터 화투를 끊으라고 고니에게 충고한다. 그러나 화투판의 그 누구도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한쪽 귀를 잃은 타짜 짝귀는 결국 또 다른 타짜 아귀에게 손 하나를 잃고도 의수로 화투를 친다. 평경장조차 강력한 하수구처럼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도박판의 마수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대사발, 연기발, 말발 어우러진 탄탄한 구성 돋보여
이 영화의 절정은 고니가 아귀와 자기 팔을 담보로 숙명의 대결을 벌이는 배 위 마지막 화투판의 비장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니가 번 돈을 전부 기차에 싣고 가다 허공에 그 돈다발을 날리는 데 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처음부터 여러 번 주도면밀하게 시각적 장치를 마련해둔다. 어쩌면 ‘타짜’의 진정한 주인공은 돈이다. 갈퀴로 긁는 돈, 자동차 트렁크에 쌓인 돈, 옷장 속에 감춰진 돈. 돈, 돈, 돈. 그리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1억, 2억이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 그러나 죽지도, 자르지도 못하는 욕망의 꽃다발은 돈다발이 되어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화투가 ‘슬픈 드라마’라고 한 평경장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최동훈 감독은 전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다섯 명의 사기꾼을 밑천 삼아 관객들에게 ‘접시를 돌렸다’. 다시 말해, 장르 영화의 쾌감과 속도전으로 무장한 채 면도날 같은 편집 기술과 다양한 연출을 구사하고 있다. ‘타짜’는 최 감독의 피 속에 새겨진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재능과 취향을 반복한다. 아니, 진화한다. 시종일관 담배를 피우는 조승우의 연기를 따라 긴장을 조성하는 칼 같은 편집을 하거나, 다중분할로 화투의 겉과 속을 모두 보여준다. 또한 김혜수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항상 집단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전작과 캐릭터마저도 매우 닮았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염정아가 맡았던 팜므파탈 사기꾼 역은 도박판의 설계자 정 마담 역의 김혜수가 계승했고, 사기꾼들의 대부 백윤식은 그 능청, 그 구라, 그 타이밍으로 여전히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남들은 오만이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오기로 느껴지는 최고봉의 연기!) 할리우드 영화의 흑인 조연을 생각나게 하는 수다스럽지만 정 많은 캐릭터는 유해진이 맡았다.
화투 몰라도 영화 재미에 빠지는 데 무리 없어
대사발, 연기발, 말발, 이빨 모두 수준급인 연기 앙상블은 탄탄한 대사와 리드미컬한 화면의 수로를 따라 물 흐르듯이 미끄러져 나간다. ‘범죄의 재구성’이 뭔가 머리로 계속 짜맞추고 논리의 아귀를 맞추려는 초급 수준 범죄물이었다면, ‘타짜’의 최 감독은 잘 하면 딱 소더버그만큼, 걸작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좋은 연기자들을 데리고 된장냄새 없는 미끈한 장르 영화를 계속 뽑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걸게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만화가 허영만과 김세영이 쓴 ‘지리산 작두’ 1편. 원작은 청계천이 빈민가로 등장하는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타짜’는 그걸 90년대로 바꾸었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위력과 살벌한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비정함이 더해진다. 그러나 원작의 배경이 50년대인 것에 맞게 영화 속의 배우들은 고스톱이 아닌 섰다를 친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고스톱이든 섰다든 화투를 알지 못해도 영화에 몰두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흡인력과 속도감이 영화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아채는 아귀 혹은 악귀이기도 하다. 최 감독의 세계는 비디오 세대답게 연출력이 튀고 국문학도 출신답게 탄탄한 캐릭터들이 돋보이지만, 그 속에 침잠해 있는 어떤 세계관이나 본인이 지어낸 대사대로 ‘혼이 담긴 구라’가 부재한다고나 할까.
늘 가건물에서 뭔가 한탕을 좇는 진흙탕의 인간들이 나오는 최 감독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연꽃을 피우려면, 영화가 아닌 삶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할 터. 똑똑하고 냉철하고 재능 있는 감독이니, 최동훈의 영화세상에서 타짜가 아닌 진짜가 나올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허무와 집착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그가 또 어떻게 접시를 돌릴지 기다려진다.
영화 ‘타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짜’는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영웅담이나 도박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물이 아니다. 한국판 ‘도신’도 아니다. ‘타짜’는 크게 지르고 빨리 먹으려는 인간들의 욕망에 관한 보고서다. 이름 그대로 ‘꽃으로 하는 싸움’인 화투는 꽃의 속성대로 빨리 피고 빨리 진다.
가구공장 공원으로 누나의 위자료를 화투판에 몽땅 갖다 바친 주인공 고니는 우여곡절 끝에 이 세계의 고수인 ‘평경장’을 만난다. 그런데 평경장은 만나는 그날부터 화투를 끊으라고 고니에게 충고한다. 그러나 화투판의 그 누구도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한쪽 귀를 잃은 타짜 짝귀는 결국 또 다른 타짜 아귀에게 손 하나를 잃고도 의수로 화투를 친다. 평경장조차 강력한 하수구처럼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도박판의 마수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대사발, 연기발, 말발 어우러진 탄탄한 구성 돋보여
이 영화의 절정은 고니가 아귀와 자기 팔을 담보로 숙명의 대결을 벌이는 배 위 마지막 화투판의 비장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니가 번 돈을 전부 기차에 싣고 가다 허공에 그 돈다발을 날리는 데 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처음부터 여러 번 주도면밀하게 시각적 장치를 마련해둔다. 어쩌면 ‘타짜’의 진정한 주인공은 돈이다. 갈퀴로 긁는 돈, 자동차 트렁크에 쌓인 돈, 옷장 속에 감춰진 돈. 돈, 돈, 돈. 그리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1억, 2억이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 그러나 죽지도, 자르지도 못하는 욕망의 꽃다발은 돈다발이 되어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화투가 ‘슬픈 드라마’라고 한 평경장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최동훈 감독은 전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다섯 명의 사기꾼을 밑천 삼아 관객들에게 ‘접시를 돌렸다’. 다시 말해, 장르 영화의 쾌감과 속도전으로 무장한 채 면도날 같은 편집 기술과 다양한 연출을 구사하고 있다. ‘타짜’는 최 감독의 피 속에 새겨진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재능과 취향을 반복한다. 아니, 진화한다. 시종일관 담배를 피우는 조승우의 연기를 따라 긴장을 조성하는 칼 같은 편집을 하거나, 다중분할로 화투의 겉과 속을 모두 보여준다. 또한 김혜수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항상 집단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전작과 캐릭터마저도 매우 닮았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염정아가 맡았던 팜므파탈 사기꾼 역은 도박판의 설계자 정 마담 역의 김혜수가 계승했고, 사기꾼들의 대부 백윤식은 그 능청, 그 구라, 그 타이밍으로 여전히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남들은 오만이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오기로 느껴지는 최고봉의 연기!) 할리우드 영화의 흑인 조연을 생각나게 하는 수다스럽지만 정 많은 캐릭터는 유해진이 맡았다.
화투 몰라도 영화 재미에 빠지는 데 무리 없어
대사발, 연기발, 말발, 이빨 모두 수준급인 연기 앙상블은 탄탄한 대사와 리드미컬한 화면의 수로를 따라 물 흐르듯이 미끄러져 나간다. ‘범죄의 재구성’이 뭔가 머리로 계속 짜맞추고 논리의 아귀를 맞추려는 초급 수준 범죄물이었다면, ‘타짜’의 최 감독은 잘 하면 딱 소더버그만큼, 걸작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좋은 연기자들을 데리고 된장냄새 없는 미끈한 장르 영화를 계속 뽑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걸게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만화가 허영만과 김세영이 쓴 ‘지리산 작두’ 1편. 원작은 청계천이 빈민가로 등장하는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타짜’는 그걸 90년대로 바꾸었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위력과 살벌한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비정함이 더해진다. 그러나 원작의 배경이 50년대인 것에 맞게 영화 속의 배우들은 고스톱이 아닌 섰다를 친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고스톱이든 섰다든 화투를 알지 못해도 영화에 몰두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흡인력과 속도감이 영화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아채는 아귀 혹은 악귀이기도 하다. 최 감독의 세계는 비디오 세대답게 연출력이 튀고 국문학도 출신답게 탄탄한 캐릭터들이 돋보이지만, 그 속에 침잠해 있는 어떤 세계관이나 본인이 지어낸 대사대로 ‘혼이 담긴 구라’가 부재한다고나 할까.
늘 가건물에서 뭔가 한탕을 좇는 진흙탕의 인간들이 나오는 최 감독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연꽃을 피우려면, 영화가 아닌 삶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할 터. 똑똑하고 냉철하고 재능 있는 감독이니, 최동훈의 영화세상에서 타짜가 아닌 진짜가 나올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허무와 집착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그가 또 어떻게 접시를 돌릴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