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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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계절 ‘염치 흉년’이 웬 말인가

  • 입력2006-10-16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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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엔 ‘신이 내린 직장’이 수두룩하다.그곳의 일부 임직원들에겐 절대명제와도 같은 불문율이 하나 있다. 염치의 ‘실종’이다.

    자진 삭감한 임금 20%를 다시 받아낸 공영방송 KBS의 정연주 사장 등 임원 8명을 보자. 2004년 648억원의 적자가 난 것과 관련, 이들은 이듬해 6월 ‘사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뼈를 깎는 반성을 하겠다”며 임원진 임금 20% 삭감을 공언했다. 그러고도 올해 1월 6개월치 삭감분인 1억여 원을 일시불로 돌려받았다. ‘자진(自進)’은 남이 시키기 전에 스스로 나선다는 뜻. 경영 위기에 대한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자진 삭감한 월급을 ‘자진 복구’했으니 ‘뼈를 깎는 반성’은 허언(虛言)이자 당연 무효다.

    그뿐인가. KBS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국정홍보처 등 정부 각 부처에게서 무려 200억원이 넘는 방송제작 지원금도 받아냈다. 이러고도 정 사장은 후임 KBS 사장 공모에 응모했으니 아예 염치와는 담을 쌓은 듯하다. 그의 응모는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추한 손짓으로만 비칠 따름이다.

    국책은행들과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시중은행들도 그에 못지않다.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장의 평균 연봉이 정부투자기관장의 4배인 6억원, 청원경찰과 운전기사의 연 평균임금이 최고 9100만원이다. 일부 은행은 최하위 평가등급을 받은 직원과 휴직자에게까지 성과급을 내줬으니, ‘성과’는 성과급을 받은 직원들의 개인적 성과인가.

    3년간 유조차 100대 분량의 국가 비축유를 빼돌린 한국석유공사 직원들도 몰염치하긴 매한가지. 때때로 텅 빈 기름탱크를 물로 채우기도 했다니 기가 막힌다. ‘돈독’ 오른 ‘돈벌레’가 따로 없다.



    이렇듯 세상 한쪽에서 흥청망청 ‘돈잔치’가 질펀하게 벌어졌으나, 우리에겐 다를 게 없는 일상이었다. 가을은 과연 풍요의 계절인가? ‘고향’과 ‘텅 빈 지갑.’ 어느 라디오 방송의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30대 이상 국민들이 ‘당신이 보낼 추석과 가장 어울리는 낱말’로 떠올린 단어들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랬다. 고향의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 풍광은 설연휴 때보다 더 못해졌고, 부모님 얼굴의 주름 골은 더 깊이 패였다. 여전한 미소만 빼면….

    그 미소에 가슴 저미는 귀경길 다짐을 새롭게 하고, 겸연쩍은 웃음을 띤 채 아내 몰래 로또복권 한 장 호주머니에 사 넣으며, 아이들을 따뜻한 눈길로 한번 더 바라봤다면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 이 가을의 평균적인 가장(家長)일 터다.

    ‘평균인(平均人)’에겐 돈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염치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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