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0

2006.11.14

고전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6-11-13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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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
    이른바 디지털 시대다. 첨단 자본주의 물결은 인간의 생활과 환경은 물론 정신까지 지배하고 있다. 남들을 따라가기도 힘든 시대에 고리타분하게 고전을 들먹인다면 그 사람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고 평가받기 딱 알맞다.

    대부분 고전이라고 하면 헌 책방이나 도서관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는 책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자타칭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10명은 “고전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길러져 나오는 ‘샘’이자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말한다.

    수원대 이주향 교수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시기에 ‘반야심경’을 만났다.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이 교수에게 ‘반야심경’은 충격이었다. 불교는 세상을 고해(苦海·괴로움의 바다)로 파악한다. 세상에 괴로움 아닌 것이 없다는 뜻. 이 교수는 매일 아침 ‘반야심경’을 보고 옮겨 쓰며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그때는 슬픔이 에너지였다. 나는 슬픔만큼의 위로를 얻었고, 위로만큼의 평화를 맛보았다. 나는 발견했다. 깨달은 자에게 법을 들으면 생이 바뀐다는 말의 참뜻을!”

    최하류층의 불우한 사형수 남자와 최상류층의 불안하고 냉소적인 젊은 여자가 만나 어긋난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힘겹게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작가 공지영. 그녀에게 ‘사형’이라는 합법적인 살인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 책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부활’이다. 공 작가가 ‘부활’에서 주목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상류사회에 대한 분노와 신랄한 비판이었다. 러시아 상류층의 타락상과 자포자기한 민중들의 범죄, 법정에서 벌어지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시대가 변하고 국가가 달라도 너무나 닮았다.

    경북대 법대 김두식 교수도 톨스톨이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 어린 시절 동네 서점 한구석에서 발견한 것이 ‘톨스토이 민화집’. ‘바보 이반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두 노인’ 등 예수의 가르침을 소설로 형상화한 내용들, 즉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들에 빠져들었다. 구원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내주거나 원수를 사랑하기 같은 평화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고 가르쳐준 ‘톨스토이 민화집’은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에 의문을 갖게 만든 첫 번째 계기라고 말한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나에게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샘솟게 했던 원형의 기억, 질투의 대상이다.” 영화감독 변영주의 작품 ‘발레 교습소’는 프랑스 영화감독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서 상당한 모티브를 얻었다. 어린 시절 집을 뛰쳐나와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교화소에 갇힌다는 이야기로, 어른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평범한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시인 신경림은 정지용 시집을 몰래 갖고 있다가 교장 선생한테 들켜 뜨거운 땡볕 아래서 하루 종일 운동장을 뛰었던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다. 6·25전쟁 때 사라진 정지용은 1988년 복권되기 전까지 이름조차 거론하지 못했던 시인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시를 교양으로서 읽는다면 다른 시인은 그만두고 정지용부터 읽으라고 권한다. 정지용이 진정한 우리 시의 출발점이고 우리 시의 첫 번째 고전이기 때문이다.” 시의 넓이와 깊이에서 정지용만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인이 없다는 것이 신경림 시인이 내린 결론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망상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능력은 바로 텍스트, 즉 고전이다. 가로와 세로로 수많은 지식이 녹아야 창의력이 나온다. ‘고전(古典)’은 낡은 책이 아니라 최고의 책 ‘고전(高典)’이다.

    공지영 외 지음/ 북섬 펴냄/ 24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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