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0

2006.11.14

중·일 작품 빼곤 지나친 빈곤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6-11-09 18: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중·일 작품 빼곤 지나친 빈곤

    ‘춤추는 무뚜’

    태국은 ‘쿠데타의 나라’다. 9월에 있었던 쿠데타를 포함해 74년간 23차례나 쿠데타 내지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나라에 대해 친숙하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곤 푸켓, 파타야 등 관광지 정도다.

    어디 태국뿐이랴.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우리는 아시아 이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인에겐 과연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이 있을까. 물론 아시아인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시아는 어떤 아시아인가. 사실은 한·중·일 3국으로 이뤄진 동북아시아일 뿐이다. 동남아시아나 서아시아와는 심리적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국에 수입되는 영화들은 그 심리적 거리의 반영이자 동시에 영화 상영을 통해 그것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나라에 중국과 일본이 아닌 아시아 지역의 영화가 수입됐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나라, 태국의 영화를 본 일이 있는가. 어렵사리 찾아내자면 몇 년 전엔가 개봉된 영화 ‘잔다라’가 바로 태국 영화다. 출생의 비극을 안고 태어난 한 소년의 성장통을 파격적인 성애 장면과 함께 그린 이 영화는 그러나 관객의 기억에는 태국 영화라기보다는 이국적 에로물일 뿐이었다.



    1970년대에도 인도 영화 ‘신상’이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코끼리와 청년 간의 우정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당시 국내 영화 팬들에게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영화 이후 인도 영화가 국내에 들어온 일은 손꼽을 정도다. 풀란 데비라는 여걸의 이야기를 그린 ‘밴디트 퀸’ 그리고 4, 5년 전에 들어온 ‘춤추는 무뚜’라는 영화가 고작이다.

    어떤 나라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나라에 직접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게 그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어떤 나라의 영화를 두 편 본 사람과 세 편 본 사람 간에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인도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도에 대해 얘기하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영화 ‘춤추는 무뚜’를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담이 비록 만화 같아 보이긴 해도 인도인의 삶과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비천한 하인 무뚜가 사실은 고귀한 신분이었다는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뿌리 깊은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인도 민중에게 얼마나 강고하게 남아 있는지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타밀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서구의 영화제에서는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 영화에 이어 최근에는 태국, 베트남 영화가 호평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아시아 영화에 먼저 주목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다.



    영화의 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