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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만국 공원 새단장, 서양식 근대건축물 5동 2011년까지 복원 추진 … 역사문화의 명소 ‘부푼 꿈’

  • 인천=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 자료제공=인천학연구원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 “이미 전화(戰禍)로 烏有化한(폐허로 변한) 유서 깊은 건물 중에 가장 뇌리에 살아남는 것을 들라치면 서슴지 않고 인천각(仁川閣)을 지적할 것이다. 아름다운 다각형 지붕 위 짜르르 윤이 흘러내리는 새빨간 기왓장이며, 복잡한 굴곡의 새하얀 벽면과 엇비슷이 두 쌍 세 쌍 바다를 향하여 매어 달린 창(窓)과 창의 잊을 수 없는 향수여!”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인천시의 만국공원 복원 예정도.

시조시인으로 광복 직후 인천의 근대건축물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기록한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1958)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인천각’이란 1905년 건설된 존스턴 별장을 말한다. 기와지붕을 얹은 유럽 양식의 석조건물이었던 존스턴 별장은 ‘개항도시’ 인천의 랜드마크였다.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응봉산 언덕 위에 자리한 이 별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별장은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두 시간 앞두고 진행된 함포사격에 의해 재와 먼지로 변하고 말았다.

이 존스턴 별장이 복원된다. 인천시는 100년 전 개항기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자유공원(옛 각국공원)과 그 주변에 열강들이 지었던 근대건축물 5개 동을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역사성, 건축성, 관광자원 가능성, 복원 가능성 등을 고려해 선정된 복원 대상은 존스턴 별장, 세창양행 사택, 알렌 별장, 영국영사관, 러시아영사관 등.

인천시 중구 응봉산 언덕 위에 위치한 자유공원은 1888년 조성된 한국 최초의 공원으로 처음에는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이후 서공원, 만국공원, 자유공원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이하 조선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이름인 ‘만국공원’으로 칭한다). 지난해 철거 논란이 일었던 맥아더장군동상이 바로 이 공원 안에 있다.

만국공원이 옛 모습으로 단장되고 근대건축물들이 복원되면 우리도 일본 요코하마의 야마테 지구나 고베의 기타노 지구와 같은 개항기 역사문화를 간직한 명소를 보유하게 된다. 조선 땅에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만국공원이 바라보고 있는 인천항으로, 이 일대는 새로운 근대문화가 조선 전체로 퍼져나간 ‘문화 발신지’라고 할 수 있다.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김창수 박사는 “자유공원은 ‘다문화의 평화로운 공존’을 나타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21세기에도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당시 중구 일대는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쪼개졌는데, 만국공원은 각국 조계(租界)지역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각국 대표가 참석해 조계지역의 운영과 치안, 도시계획 등을 협의하던 ‘제물포구락부’가 이 공원을 조성해 운영했다. 조선에 진출한 서구 열강들의 평화로운 ‘공존지대’였던 셈이다.



만국공원은 경성 사람도 자주 찾던 관광명소

처음에는 주로 외국인들이 이 공원을 드나들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인들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경인철도를 타고 인천에 놀러 온 경성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르던 관광명소. 하지만 이곳은 차별의 설움을 감당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공원과 건축물을 건설할 때 주로 일본인과 조선인 인부들이 동원됐는데, 조선인은 일본인과 똑같은 노동을 하고도 임금차별을 겪었다. 당시 일본인 목수와 미장꾼은 일당으로 70전을 받았는데, 조선인은 3분의 2 수준만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 짐꾼의 일당은 50전이었는 데 반해, 조선인 짐꾼의 일당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23전이었다.

복원될 근대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면 당시의 시대상이 읽힌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에 나오는 내용이다).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옛 존스턴 별장 자리에 세워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먼저 세창양행 사택은 1884년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세창양행은 독일 함부르크 상인 에드워드 마이어가 설립한 무역회사로, 직원 사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 맥아더장군상이 있는 자리에 이 사택을 지었다.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쉽게 무뎌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세창바늘’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세창양행이 바로 이 바늘을 팔던 회사다. 세창양행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재정차관 10만냥을 제공하기도 했고 1886년 ‘한성주보’에 최초의 신문광고를 싣기도 한, 우리에게 의미가 남다른 서구 회사였다.

현재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서 있는 자리에 위치했던 존스턴 별장의 주인은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상하이에서 항만건설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번 제임스 존스턴이다. 그는 여름철을 보내기 위해 이 별장을 지었다. 존스턴 별장은 존재 그 자체로 ‘다문화’를 웅변했다. 설계는 독일인이 맡았고 건축자재와 가구는 영국에서 가져왔으며, 붉은 기와는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공수해왔다. 실내 조각장식은 존스턴이 직접 중국에서 데려온 12명의 1급 중국인 조각가가 맡았고, 인부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동원됐다. 이 별장의 건축비는 35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는데, 당시 인천 최고 갑부의 전 재산이 35만원이었다고 한다.

존스턴은 여름철마다 상하이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데리고 이 별장으로 와 머물렀다. 아예 기선 한 척을 통째로 세내어 많은 군중을 데려온 적도 있는데, 그중에는 개, 고양이, 중국인 아이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월미도 포구에서 바라본 1907년 당시 인천항 풍경.

한 모퉁이를 둥근 탑으로 쌓아올려 작은 돔을 세운 것이 특색인 알렌 별장은 주한 미국공사이자 선교사이며,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 광혜원을 설립한 알렌의 별장이었다. 아관파천으로 상심한 고종황제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알렌 별장 바로 옆 부지에 피서용 이궁을 지으려 했다가 러일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이 있는 자리에 위치했던 영국영사관은 붉은 단층 벽돌집으로 정원이 특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1903년 건축된 러시아영사관은 다소 성급하게 건축됐다. 당시는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때로, 러시아는 커져가는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서둘러 인천에 영사관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만국공원 일대의 ‘평화로운 문화 공존’은 점차 와해돼갔다. 열강이 떠난 근대건축물은 일본 차지가 됐고, 광복 후에는 미국 몫이 되었다가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에 의해 점령됐다.





주간동아 537호 (p32~34)

인천=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 자료제공=인천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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