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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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國 스웨덴의 가난했던 옛 시절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6-05-04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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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富國 스웨덴의 가난했던 옛 시절

    ‘정복자 펠레’

    현대자동차 사태로 재벌기업의 고질병인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투명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기업의 경제적 기여도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보여주는 모델을 찾게 된다.

    한국의 재벌기업 문제가 드러날 때 마다 몇 년 전부터 심심찮게 대안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다. 이동통신회사 에릭슨을 비롯해 항공기 제조사인 SAS, 방위산업 분야의 사브, 대형트럭 업체인 스카니아 등을 거느린 이 가문은 한국의 삼성 이상으로 스웨덴 경제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룹이 100년 이상 세습경영을 해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으니, 한국 재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발렌베리 가문의 세습경영의 비결에는 이른바 ‘스웨덴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 ‘복지와 성장의 조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 모델은 기업과 노조, 정부 3자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노동자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1930년대 스웨덴의 노사는 파업과 직장 폐쇄, 국유화 주장과 소득세 인상 반대 등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기업 이윤에 상관없이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을 지급한다는 ‘연대 임금제’에도 합의했다.

    물론 이 같은 합의와 대타협이 한꺼번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여러 차례, 다양한 영역에서 타협이 이뤄짐으로써 스웨덴 모델이 구축된 것이다.

    이 같은 대타협은 스웨덴의 모습을 확 바꿔놓았다. 스웨덴은 지금 세계 최고의 부국 중 하나로 꼽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의 빈국이었다. 가난할 뿐만 아니라 희망을 찾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1920년대에 이 나라의 노동자 1인당 파업 일수는 세계 1위였다.



    ‘가난한 스웨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정복자 펠레’다. 순수한 소년 펠레가 세상에 눈뜨고, 제목 그대로 세상을 ‘정복’하러 길을 떠나는 뭉클한 장면으로 끝나는 이 영화를 스웨덴의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읽으면 당시 스웨덴 이민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이 보인다.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어린 소년 펠레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국 스웨덴을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덴마크로 온다. 펠레 부자는 어렵게 한 농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스웨덴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용감한 스웨덴 청년 에릭은 감독에게 맞서다가 정신이 이상해졌다. 어린 펠레는 늙은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지만 아버지는 덴마크 농장의 어린 감독에게 꼼짝 못하는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가난하고 나약한 펠레의 아버지야말로 당시 스웨덴의 비루한 현실이다. 이런 나라가 지금은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환골탈태했는데, 그 변신의 계기가 바로 1930년대 이후의 사회적 대타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 성공사례로 평가받아 온 스웨덴 모델도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을 보호하는 이 나라의 복지체계가 비효율과 나태의 대명사처럼 비판받고 있기도 하다. 또 한 번의 대타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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