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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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필로폰 생산지로 부상한 미얀마 북동부 ‘샨주’

중국 기업이 밀수출한 원료 물질로 필로폰 제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12-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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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6일(현지 시간) 미얀마 양곤 외곽에서 ‘국제 마약 남용 및 불법 거래 반대의 날’을 기념해 불법 마약류가 소각되고 있다. 뉴시스

    6월 26일(현지 시간) 미얀마 양곤 외곽에서 ‘국제 마약 남용 및 불법 거래 반대의 날’을 기념해 불법 마약류가 소각되고 있다. 뉴시스

    미얀마 북동부에 위치한 샨주(州)는 ‘마약왕’ 쿤사(본명 장치푸)의 고향이다. 쿤사는 미얀마·태국·라오스 국경이 만나는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황금 삼각 지대)’을 근거지 삼아 전 세계 헤로인의 60%를 생산하던 마약 군벌이다. 중국 한족 아버지와 미얀마 소수민족 샨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93년 12월 이 지역에 ‘샨국’을 세우고 독립을 선포하는 등 독자적으로 통치해왔다. 헤로인 밀매로 연간 60억 달러(약 8조9000억 원)를 벌어들였던 쿤사는 한때 2만 명 군대를 보유하는 등 샨족의 해방자를 자처했다. 쿤사는 1996년 미얀마 정부에 투항한 후 은둔생활을 하다가 2007년 73세로 사망했다. 그 후 샨주는 합성마약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의 상품명)의 세계 최대 규모 생산지로 부상하며 또다시 국제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마약 카르텔 된 미얀마 반군

    미얀마의 14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샨주는 동북쪽은 중국 윈난성, 남쪽은 태국 치앙라이주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15만580㎢로 미얀마에서 가장 넓은 주다. 북쪽과 남쪽에 험준한 산이 있는 고원지대에서 600만~700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이곳을 장악한 세력은 미얀마 군사 정부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벌여온 반군 세력인 와주연합군(UWSA)이다.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공산당에 뿌리를 둔 와주연합군은 병력 3만 명과 각종 중화기, 헬기까지 보유한 미얀마 최대 무장단체다. 특히 와주연합군은 공식 언어와 화폐로 중국어와 위안화를 사용하는 등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와주연합군은 이곳에 풍부하게 매장된 희토류 등 각종 광물을 개발·생산하는 중국 기업들을 보호해왔다. 중국 기업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희토류를 모두 자국으로 보낸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론 미얀마 군사정권을 지지하지만, 희토류 확보를 위해 와주연합군도 은밀히 지원해왔다.   

    주목할 점은 와주연합군이 통치 자금 등을 마련하고자 필로폰을 대량생산해 밀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미얀마 샨주가 세계 최대 규모 필로폰 생산지이고, 와주연합군은 ‘마약 카르텔’이라고 규정했다. 와주연합군이 필로폰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것은 중국 기업들이 필로폰 원료인 화학물질들을 정부 묵인 하에 국경을 통해 대거 밀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미국과 동남아 각국 정부 관리 40여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중국 기업들이 필로폰의 전구체 화학물질을 미얀마 샨주에 수출해왔다고 보도했다. 전구체는 특정 화학 반응을 통해 다른 물질로 변환될 수 있는 화학 원료를 뜻한다. 

    필로폰의 경우 에페드린, 슈도에페드린 같은 화학물질이 전구체로 쓰인다. 이들 물질 자체는 합법적인 화학 공업이나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지만, 필로폰을 만드는 데 악용될 수 있다. 브랜든 요더 전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중국 기업들이 필로폰 원료가 되는 화학물질을 대거 샨주로 밀수출해왔다”면서 “이 때문에 와주연합군이 손쉽게 필로폰을 제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UNODC에 따르면 2023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 소재 기업인 윈 그룹 파머슈티컬은 중국 알리바바에서 마약 원료로 합성하는 방법을 담은 안내문과 함께 화학물질을 판매했다. 이 회사는 화학물질을 비누나 밀랍 등으로 허위 표시해 위장 배송하는 옵션을 제공하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암호화폐 기업 TRM랩스는 지난해 중국 화학업체들의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확인한 결과 120여 곳이 전구체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샨주가 필로폰 최대 생산지로 등극한 것은 중국 기업들의 전구체 밀수출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미얀마 북동부에 위치한 샨주(州)는 북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구글 지도

    미얀마 북동부에 위치한 샨주(州)는 북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구글 지도

    마약에 희생되는 미얀마 젊은이들

    UNODC는 중국 정부 측에 전구체를 밀수출하는 중국 기업들을 단속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해왔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윈난성에서 국경을 접한 미얀마 샨주로 향하는 필로폰 원료 물질 수출의 통제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필로폰 원료 물질 수출은 감소하지 않고 중국에서 라오스·태국을 거쳐 미얀마로 향하는 우회 유통 경로가 새롭게 개발됐다. 



    실제로 중국 국영기업 자회사인 골드링크 인더스트리는 최근 필로폰 원료가 되는 염화프로피오닐 72t을 라오스를 거쳐 샨주로 보내려다가 라오스 세관에 적발됐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얀마와의 국경 지대에서 필로폰 생산에 필요해 수산화나트륨·톨루엔·아세톤 등을 비롯한 화학물질 800t을 압수하기도 했다. 태국 마약단속국 고위 관리는 미얀마의 수입처가 합법적 용도로 수입했다고 주장하면 필로폰 생산을 위해 운송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워 이를 제지할 방도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미얀마 군사 정부도 샨주에서 필로폰이 생산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단속할 능력도 없는 실정이다.

    샨주 곳곳에는 필로폰을 대량생산하는 ‘마약 단지’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을 비롯해 취업할 곳이 없는 미얀마 젊은이 상당수가 필로폰에 중독되고 있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된 인구가 어느 정도인지 집계조차 되고 있지 않다. 미얀마에선 2021년 2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한 이후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실업률이 계속 치솟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미얀마 전체 인구 중 절반이 빈곤층이다. 또한 WP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곳곳에선 필로폰 등 마약으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이 버려져 있고, 10대들이 거리에서 좀비처럼 비틀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젊은이는 필로폰과 여러 마약을 섞은 ‘해피 워터’라는 새로운 마약의 주요 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샨주에서 생산된 필로폰이 쓰나미처럼 동남아와 동아시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UNODC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와 동아시아에서 압수된 필로폰은 236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보다 24%나 급증한 수치다. 베네딕트 호프만 UNODC 동남아·태평양 대표 대행은 “이는 압수된 필로폰 규모일 뿐이며, 실제로 시장에 공급된 물량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로폰이 가장 많이 압수된 곳은 동남아의 주요 마약 소비지이자 유통 경로인 태국이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필로폰 130t이 압수됐는데, 특히 필로폰과 카페인을 혼합해 만든 야바(YABA)의 적발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호주에서도 2024년 필로폰 사용이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호주 경찰은 필로폰의 70%가 샨주에서 밀반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에서도 밀수입 필로폰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기준 불법 마약 사용자가 5년 사이 60% 넘게 증가해 40만 명을 넘어섰다고 추정했다.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는 미얀마산 필로폰

    UNODC는 미얀마의 필로폰 밀수출이 태국·라오스·캄보디아를 통한 육상 경로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을 잇는 해상 통로를 통해 이뤄지며, 최근 들어 인도와 남아시아로까지 번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해양경비대는 지난해 미얀마에서 자국으로 밀수출하려던 필로폰을 압수했는데, 당시 나포한 어선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필로폰 5500㎏이 발견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국립마약청도 4∼6월 단속을 벌여 마약 밀매 용의자 285명을 체포하고 필로폰 등 마약 684㎏을 압수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압수된 필로폰은 2023년 6.2t에서 지난해 7.5t으로 크게 늘었다.  

    현재로선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필로폰 원료 물질 밀수출을 적극 차단하는 방법이 절실하다. 중국에선 마약 소지만으로도 사형이 집행되지만 중국 당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전구체 수출을 사실상 방치해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마약 전문가인 반다 펠밥 브라운 수석 연구원은 “중국은 ‘좀비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뿐 아니라 필로폰 전구체의 세계 최대 공급국”이라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필로폰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존 코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연구원도 “중국 산업과 범죄 조직이 없었다면 미얀마에서 필로폰 제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를 제한하는 건 전적으로 중국공산당과 정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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