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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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밝힐 명당터 산재한 대전·충청권

[안영배의 웰빙 풍수] 대전충남특별시 통합 논의에 대명당터 계룡산 일대 등 주목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5-12-3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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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계룡산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암용추. 용이 도를 닦아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명소다. 동아DB

    충남 계룡산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암용추. 용이 도를 닦아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명소다. 동아DB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를 대전충남특별시로 통합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해 국민의힘 소속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수도권 일극체제 해결 및 지방 소멸 방지를 명분으로 행정통합 추진을 공동 선언한 바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이에 힘을 실어주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여기에 대통령실과 정부청사의 세종 이전까지 더해지면 이 지역은 국토 대변혁의 중심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凡)대전권이 한국 정치의 중심 무대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언은 구한말 때부터 나왔다. “언젠가 지구적 차원의 변혁으로 선천(先天) 시대를 마감하고 후천(後天) 신세계가 펼쳐지는데, 이때가 되면 큰 서울이 작은 서울이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큰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작은 서울’은 세종을 포함한 대전권을 가리킨다.  

    자미원에 도읍 둬야 나라 번성

    이를 풍수 관점에서 살펴봐도 그럴 듯하다. 풍수학에 의하면 한 나라 도읍지가 자미원(紫微垣)으로 불리는 명당터에 자리해야 나라가 오래가고 번성한다. 자미원은 동양 천문학 용어로, 하늘의 중심인 북극성과 그 주변 별자리들을 묶어 담장처럼 울타리를 쳐놓은 것을 뜻한다. 하늘 최고의 신 상제(上帝)가 사는 곳인 북극성, 북극성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는 북두칠성, 그 통치를 보좌하는 하늘의 3정승과 3사(師) 이름을 가진 별자리 등 특별한 존재들이 머무는 영역이 바로 자미원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 권력의 중심축인 자미원 별 기운이 지구에도 연결돼 지상의 자미원을 형성한다고 봤다. 하늘 상제의 대행자인 사람 황제가 사는 공간으로 지상 자미원을 설정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서울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4대문 권역이 자미원에 해당한다. 조선 초 지관 문맹검은 1452년 세조에게 경복궁이 들어선 북악산을 자미원이라고 보고하며 ‘한양도성 자미원론’을 공식화했다. 

    사실 조선 궁궐 건축가들은 임금이 머무는 곳을 내심 자미원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증거가 경복궁에 있는 자미당(紫薇堂)이라는 건물이다. 교태전과 자경전 사이에 은밀히 들어서 있던 자미당은 역사에서 잊히다시피 했다. 세종대왕 말년에 침소로 사용되다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라졌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되살아나 고종이 잠시 정사를 논하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 때 다시 크게 훼손됐다. 현재는 발굴조사를 거쳐 터만 정비해둔 상태다. 



    자미당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는 국제정치적 이유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 임금이 머무는 경복궁을 자미원이라고 한 문맹검의 발언은 명나라를 황제국으로 받들던 당시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한 것일 수 있었다. 자미원은 하늘 임금의 대행자인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불문율인데, 조선에 자미원이 있다고 하는 건 명나라 황제에 대한 도전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명·청 시대 황제가 살았던 중국 베이징 자금성. 이 궁궐 이름은 하늘 권력의 중심축인 자미원에서 유래했다. GETTYIMAGES

    명·청 시대 황제가 살았던 중국 베이징 자금성. 이 궁궐 이름은 하늘 권력의 중심축인 자미원에서 유래했다. GETTYIMAGES

    자색(紫色)으로 꾸민 동양 궁궐들

    반면, 명나라 황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명실상부한 천자국임을 과시하듯이 1421년 베이징에 자금성(紫金城)을 조성했다. 이곳에 자미원을 상징하는 불그스름한 자색(紫色) 건물들을 지었다. 정전인 태화전, 황제 침소인 건청궁, 황후 침소인 곤녕궁 등을 자색과 노란색 벽으로 치장한 게 인상적이다. 자금성은 12m 높이 성벽과 52m 폭 해자에 둘러싸여 하나의 거대한 성곽처럼 보이는데, 이 또한 금단의 영역인 자미원을 상징하는 듯하다. 

    천황제를 고수한 일본 왕실도 자미원을 지었다. 옛 수도 교토의 교토고쇼(京都御所·경도어소)는 자미원을 지상에 실현한 공간이다. 일왕은 1868년 메이지유신 전까지 하늘의 자손임을 자부하며 이곳을 궁궐로 사용했다. 교토고쇼의 중심 건물인 시신덴(紫宸殿·자신전)은 지금도 일왕의 즉위식 및 각종 의례 공간으로 사용되는데, 이름 자체가 이미 자미원의 전각을 의미한다. 색깔도 자미원을 상징하는 자색이다. 

    한반도의 자미원은 한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전·충남권에서도 자미원 역량을 갖춘 장소가 여러 곳 거론된다. 먼저 계룡산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대명당터로 조명받았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수도를 계룡산 남쪽 신도안(충남 계룡시 신도안면)으로 정하고 궁궐 공사까지 착수했다. 다만 신하들 반대로 최종적으로는 한양이 수도가 됐다. 

    신도안을 중심축 삼아 산줄기와 물길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처럼 맞물려 있는 이 지역은 산태극, 수태극 형상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민간 비결서인 ‘정감록’ 등에는 계룡산 일대가 후천 세상의 중심 기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담겨 있다. 후천 세상을 여는 자미원 터라는 것이다.

    계룡산에서 뻗어 나온 물길이 거쳐 가는 대전도 자미원 명당의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를 듣는다. 대전 북동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계족산(鷄足山·428m)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산줄기가 닭발처럼 펼쳐져 있어 계족산으로 불리는 이 산은 계룡산과 곧잘 연결된다. 계룡산은 천황봉과 쌀개봉을 이은 능선이 닭 벼슬처럼 생겨 ‘닭의 머리’에 해당하고, 계족산은 ‘닭의 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계족산 일대가 계룡산 정기가 이어지는 또 다른 자미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명에서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계족산의 또 다른 이름은 봉황산이다. 은진 송씨 집안에서 이 산에 봉황을 숨긴 뒤 일부러 계족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봉황은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속 영물(靈物)인데, 하늘 상제 혹은 하늘 상제의 명령을 수행하는 집행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자미원의 상제를 상징하는 새가 봉황이라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계족산 명당론은 이미 지역 사회에서 유명하다. 계족산 정상에 천하 대명당이 있으며, 이곳에 묘를 쓰면 자손이 크게 발복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조상의 시신을 계족산 정상에 암장하거나 투장하는 예가 적잖았다고 한다. 이외에 계족산 자락에 전하는 풍수담으로 삼정동의 ‘삼정승 자리’를 꼽을 수 있다. “옛날 어느 노승이 이 지역 지세를 보고 앞으로 삼정승이 나올 명당이 있다”고 했다는 구전 설화다.  

    일본 교토의 교토고쇼(京都御所). 자미원을 지상에 구현한 공간으로, 메이지유신 전까지 일왕이 이곳에 거주했다. GETTYIMAGES

    일본 교토의 교토고쇼(京都御所). 자미원을 지상에 구현한 공간으로, 메이지유신 전까지 일왕이 이곳에 거주했다. GETTYIMAGES

    대전·충남권 자미원 명당

    충남도청이 들어선 내포신도시는 아예 자미원 간판을 내세우고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자미원의 존재를 상징화한 공원도 조성해놓았다.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 위치한 내포신도시의 주산은 용봉산이다. 용봉산에서 이어지는 구릉지형에 조성한 홍예공원에는 별빛자미원 연못이 있다. 

    이처럼 대전·충청권은 한국 미래를 밝혀줄 땅임을 암시하는 스토리와 명당터가 산재해 있다. 사실 서울은 한강 이북의 4대문권과 한강 이남의 강남권이 결합한 거대 도시다. 서울은 한강이라는 물길을 끼고 살아가는 경제 중심의 거대 광역도시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정치와 행정은 새로운 자미원 터로 이전하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대전·충청권 통합론이 내년 선거를 치르기 위한 정치권의 정쟁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미래 한국의 대안으로 부상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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