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의 사비 알론소 감독. 뉴시스
2000년대 이후 감독 교체 18차례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은 예부터 ‘독이 든 성배’로 통한다. 슈퍼스타가 즐비한 세계 최고 축구 클럽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선 매일같이 미디어에 노출되고 ‘우승이 아니면 실패’라는 압박을 받는다. 2000년대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18번이나 감독을 교체했다. 각각 2번 감독을 지낸 안첼로티와 지네딘 지단을 포함해 16명이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으로 부임했다.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연거푸 들어 올린 안첼로티와 지단 감독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왕관 무게’는 더 커졌다. 이제 우승은 기본이고 유럽 축구를 선도하는 전술 색채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 탓이다. 레알 마드리드 두 번째 임기 때 안첼로티 감독은 4시즌 동안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에서만 각각 2번 우승했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을 무관으로 마친 탓에 팀을 떠내야 했다. 전술가 스타일이 아닌 관리형 리더십만으로는 더 강한 팀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 때문이다. 선수단 장점을 살리는 비교적 자유분방한 전술도 비판 대상이 됐다. 마지막 시즌에는 라커룸 장악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다음 선택은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엘 04 레버쿠젠에서 리그 우승을 달성한 젊은 감독 사비 알론소였다. 사실 알론소의 레알 마드리드 부임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그는 리버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게다가 감독으로선 독일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물리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레알 마드리드의 부름을 받을 만했다. 안첼로티가 떠나고 알론소가 부임한 타이밍도 적절했다. 3시즌 가까운 독일 생활은 감독 알론소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리그 우승과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통해 그가 앞으로 감독으로서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남길지 관심이 쏠렸다. 알론소호(號) 레알 마드리드가 안첼로티와 지단 감독 시대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런데 11월부터 알론소 감독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관측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불안감은 9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마드리드 더비’ 완패 때 본격화됐다. 물론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감독이 왔으니 팀이 변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레알 마드리드는 그런 ‘상식’이 통하는 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서 고조되는 불화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11월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원정부터 12월 첫 경기였던 RC 셀타 데 비고와의 리그 홈경기까지 7경기에서 연승 없이 2승 3무 2패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성적이 나빠서 팀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팀이 흔들려서 성적이 곤두박질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임 직후 선수단을 강경하게 휘어잡으려는 알론소 감독의 지도 방식이 일부 선수와 마찰을 빚는다는 것이었다.
알론소 감독과 비니시우스의 포옹

12월 20일(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비야 FC와의 경기가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알론소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뉴시스
맨체스터 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매치데이 6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팀 내 불화설은 정점을 찍었다. 홈에서 맨시티를 잡지 못하면 알론소가 경질된다는 뉴스가 도배됐다. 알론소 감독은 급한 불을 끄려고 능동적·유기적인 전술보다 단단한 수비로 역습을 추구하는 실리적인 스타일로 무장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1-2 역전패였다. 그나마 경기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경질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이후 경기에서는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교체돼 나가는 과정에서 알론소 감독과 포옹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불화설의 대표 주자인 비니시우스가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아예 생각을 바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일단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시티 전 이후 3연승을 기록하며 갈등 봉합의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알론소 감독의 선수 기용과 경기 스타일도 지나친 변화보다 선수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지도자가 아무리 좋은 전략·전술을 도입해도 이를 수행하는 선수단을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감독으로선 선수들 마음을 얻는 게 먼저다.
다만 위기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상태다. 알론소 감독의 전술 방향성이 여전히 들쭉날쭉하고 선수들과의 불화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수단을 휘어잡지 못한 채 맞이한 팀의 ‘평화’는 감독이 늘 져주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중요한 점은 전술 지도력과 라커룸 통제가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알론소 감독의 미래도, 레알 마드리드의 계획도 틀어진다는 것이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은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