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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모두들, 괜찮아요?’의 남선호 감독

감독 되기 연습 18년 드디어 데뷔작 탄생

감독 되기 연습 18년 드디어 데뷔작 탄생

감독 되기 연습 18년 드디어 데뷔작 탄생
한국에서 영화감독은 가장 매력 있는 직업 중 하나다.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70% 가깝게 뛰어오르고 유명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극장을 가득 메운다. 사인 공세에 감독들은 귀찮을 지경이다.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가 팬이라며 요금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1년에 개봉되는 한국 영화는 많아야 80여 편. 김기덕 감독을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1년에 영화 한 편 만드는 감독이 없다. 잘해야 2, 3년에 한 편을 만들 수 있다. 만약 흥행에 실패하면 다음 작품을 언제 만들 수 있을지 보장이 없다. 어쩌면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1편당 연출료는 많이 받아야 1억원. 신인 감독들은 3000만원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3년에 한 편 만들면 연봉 1000만원이니 다음 영화를 만들 때까지 고등실업자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 본인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밖에서 보면 모두 백수들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 그것도 경영학과를 나왔다. 학벌만으로도 취직이 어렵지 않지만 이 남자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실업자 생활을 한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데뷔 준비를 한다. 1988년에 대학을 졸업한 이 남자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지만, 2006년에서야 데뷔작을 만든다. 그럼 대학 졸업 후 18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그동안 제대로 직장생활을 한 기간은 몇 달도 안 된다. 먹고사는 것은 무용과를 나와 동네에서 무용학원을 하는 부인이 책임지고 있다. 이 남자가 드디어 데뷔작을 만들어 영화감독이 됐다. 그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가?

‘모두들, 괜찮아요?’의 남선호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노력한 자신의 십 몇 년 경험담을 시나리오로 썼다. 그리고 그 영화로 감독 데뷔를 했다. 그것도 절친한 친구가 영화사 대표로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화사 마술피리의 오기민 대표는 친구에게 “너희 집안 사는 게 코미디잖아. 네 이야기를 한번 써봐” 이렇게 권했다. 그래서 2003년 10월경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친절한 금자씨’의 정서경 작가가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영화 속의 이야기는 대부분 내 자신의 경험담에서 가져왔지만, 시나리오 쓸 때의 시점에서 5년 전 얘기다. 시나리오에서 영화감독 지망생 상훈의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지만, 지금 내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됐다. 그리고 그사이, 장인이 돌아가셨다.”



‘모두들, 괜찮아요?’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십수 년째 백수생활을 하는 상훈(김유석 분)과 그의 아내 민경(김호정 분), 그들의 어린 아들, 민경의 치매 걸린 아버지 원조(이순재 분) 등 한 집에 사는 네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남 감독 주변에 존재하는 실제 인물이 모델이다.

“일상의 디테일에 가깝게 가면 드라마틱한 구성이 잘 안 살았다. 드라마를 살리면 너무 작위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음모나 배신도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하고, 상처받고, 그 상처를 치유받고 싶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악의를 가지고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 때문에 내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다.”

감독 되기 연습 18년 드디어 데뷔작 탄생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영화는 상훈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꿈은 있지만 빈둥거리는 백수라는 캐릭터는 영화로 만들기 힘들다. 현실에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동선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들, 괜찮아요?’는 그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일상의 섬세한 묘사와 살아 있는 캐릭터 구축으로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상훈의 욕망 때문에 다른 가족, 특히 무용가로서의 꿈을 접고 학원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부인 민경이 희생당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남성적 시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이 문제를 가지고 집사람과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민경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모습이 장기적인 플랜의 일부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의 다른 버전에는 민경이 별거를 하고 나서 공연 무대에 서는 과정이 있었다.”

남 감독의 부인은 지난해부터 무용 공연을 하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남편을 위해 민경의 꿈이 바뀐 게 아니라, 남편과 아들, 아버지가 결국 민경의 꿈을 바꾸게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남 감독은 대학 졸업 후 취직을 위해 면접도 보았지만 결국 연극을 시작했다. 극단 한강을 만들어 전국 대학축제나 노조 집회에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던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 대의 버스’ 등의 연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0년 연우무대에서 ‘한씨연대기’를 재공연할 때 김석만 연출 밑에서 조연출을 했다. 1993년부터 95년까지 러시아로 유학 가서 러시아 국가영화위원회 로스키노 산하 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을 위한 최고과정’이었다. 1995년 귀국해서 여균동 감독의 ‘맨?’ 조연출을 했다. 1999년까지는 독립 프로덕션에서 다큐멘터리 몇 편을 연출했다. 그 다음부터는 감독 데뷔를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모두들, 괜찮아요?’의 첫 촬영은 무더운 여름날인 지난해 7월2일 있었다. 그리고 9월3일 마지막 촬영을 했다. 총 33회차. 순제작비 8억5000만원이 들었다. 최근 제작되는 한국영화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그로서는 얼마나 감개무량했을 것인가.

극단 만들어 연극 연출·러시아 유학 통해 차근차근 준비

“준비를 할 때는 감개무량했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생각 할 틈이 없었다. 시나리오 작업 하고 콘티 작업하면서 도대체 이게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탓인지 오히려 촬영 들어가서는 기술적인 측면, 배우와의 관계 등에 신경이 쓰였다.”

남 감독 자신을 모델로 한 상훈 역의 김유석은 러시아 유학 시절 함께 공부한 인연이 있다. 김호정은 원래 무용을 전공한 데다 남 감독이 ‘나비’에서 그녀의 연기를 무척 좋게 보았기 때문에 같이 영화 하자고 전화했다.

“연극을 했기 때문에, 배우들이 어떤 경우에 가장 창조적으로 일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자기 맘대로 잘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전에 대화를 많이 해서 캐릭터 구축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의견 조율이 있어야 한다. 처음 촬영 들어갈 땐 서로 탐색 같은 것이 있었지만 4회 정도 촬영한 뒤부터는 시시콜콜 이야기 안 해도 술술 풀려나갔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던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모두들, 괜찮아요?’로 바뀌었다. 영화는 너무나 착하다. 착한 인물만 등장한다. 백수인 남편의 꿈까지 끌어안고 학원을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아내, 영화감독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보장 없이 현실적으로 고달프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남편, 젊은 시절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 뒤 늘그막에는 치매에 걸려 막내딸 집에 얹혀사는 원조,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밋밋할 것 같지만 남 감독은 낯익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접근해서 우리들에게 되돌려준다.

자, 봐라. 너희들 사는 모습이 이렇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렇게 상처받고 또 이렇게 치유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좋은 영화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효과를 가지고 있다. 타인의 삶을 보며 내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이런 기능이 ‘모두들, 괜찮아요?’ 속에 살아 있다. 오랫동안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온 부인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집사람 반응은 괜찮았다. 영화 속에서는 민경이, 내 이야기를 영화로 팔아먹느냐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을 가슴에 담아둘 나이는 아니기에 별 문제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영화 속에서 ‘명륜동’으로 등장하는 처가 쪽 인물들이다. 그분들은 아직 영화가 만들어진 것을 모르고 있다.”

남 감독은 이제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지 십 몇 년 만에 데뷔작을 만들었다. 영화 포스터가 걸리고, 시사회를 하고, 주위의 반응을 지켜보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단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물론 처음이어서 서툴렀고, 촬영환경 때문에 여러 가지 보류했던 것들도 있다. 생각을 다시 정리해서, 영화감독으로서 새롭게 전략 전술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감독으로서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창작일 뿐만 아니라, 상업적 유통망 아래서의 관객들과의 행복한 만남도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528호 (p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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