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상황이) 안 좋다.” 12월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온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함께한 자리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이라크. ‘안 좋다’라고 번역한 부분에서 부시 대통령은 ‘bad’라는 표현을 썼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지난 10월에만 3700명 이상이 사망해 월 최고 사망자 기록을 경신했다. 2003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의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는 무려 65만5000여 명. 이는 영국의 의학잡지 ‘란셋’이 추정한 수치로, 사망자 수를 집계한 여러 통계 중 가장 높다.
이라크에 파병된 연합군 사망자 수는 3000여 명이다. 이 중 미군 사망자가 2800여 명에 이른다. 이라크를 떠나 시리아, 요르단, 이란 등 인접국으로 탈출한 난민의 숫자도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에는 임시 난민촌이 생겨났을 정도다. 유엔에서 이들을 위해 기초 식량과 의약품 등의 긴급 구호물자를 배급하고 있지만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민간인 65만여 명 숨져
미 국방부가 밝힌 이라크의 현재 병력은 10개 사단 13만명, 국경수비대를 포함한 경찰력은 19만명으로 총 32만명의 군과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상황은 안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돼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상황이 안 좋다”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7일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특별히 이라크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이날 공개된 ‘이라크 연구그룹(ISG)’의 보고서 때문이다. ISG는 미국의 공화, 민주 양당을 아우르는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지난 3월에 발족해 이라크에서의 미국 정책을 연구해왔다.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베이커와, 전 민주당 의원이자 9·11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의장을 역임한 리 해밀턴의 이름을 따 ‘베이커-해밀턴 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이라크에서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호되게 질타하면서 개선을 위한 총 79개의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2008년 초까지 14만명 수준의 이라크 주둔 미군 수를 절반 이하로 감축하고 이들의 주요 임무를 ‘전투’에서 ‘지원’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군대를 훈련시키고 자문해줄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전투병력은 철수하라는 의미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이라크의 정상화를 위한 도움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란, 시리아와 조건 없는 대화를 실시하라는 권고 사항이다. 보고서는 이들 두 국가가 이라크의 안정화를 위해 상당 부분 기여하리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바라보는 이라크와 주변 아랍국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쿠르드족 출신의 이라크 대통령 잘랄 탈라바니는 이 보고서에 대해 “미국의 국익만을 고려한 무책임한 보고서”라고 비난했다. 특히 사담 후세인 정권하의 바스당 세력까지 포함한 모든 계파와의 화해를 권고한 부분에 대해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하는 주장”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후세인 시절 바스당 집권세력은 화학무기를 사용해 쿠르드족을 대량살상한 장본인이자, 오늘날 이라크의 혼란을 야기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부시의 이라크 정책 반대 여론 71%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이자 외무장관인 사우드 알-파이잘은 이란과 시리아가 이라크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적극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사우디의 입장일 뿐 아니라 시아 이슬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모든 수니 이슬람 국가들의 공통된 입장이기도 하다.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 등의 수니 이슬람 국가들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초승달지대’의 형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라크 내부와 주변 아랍국의 반대에도 부시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무시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최근 실시한 연합통신의 미국 내 설문조사에서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71%에 달했다. 이는 이라크 전쟁 이후 최고 수치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종결하라는 여론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공화당의 중간선거 실패로 새해 들어 소집될 의회는 민주당 의원이 다수를 점하는 의회가 된다. 민주당 인사들은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에 대해 우호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이미 대(對)이라크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리고 성탄절 이전에 TV에 나와 이라크 정책의 변화 내용을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연 이 일정을 새해로 연기했다. 달라진 미국 내 정치지형과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부시 행정부가 미국 국민과 민주당 의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이라크를 안정화할 해법을 들고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지난 10월에만 3700명 이상이 사망해 월 최고 사망자 기록을 경신했다. 2003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의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는 무려 65만5000여 명. 이는 영국의 의학잡지 ‘란셋’이 추정한 수치로, 사망자 수를 집계한 여러 통계 중 가장 높다.
이라크에 파병된 연합군 사망자 수는 3000여 명이다. 이 중 미군 사망자가 2800여 명에 이른다. 이라크를 떠나 시리아, 요르단, 이란 등 인접국으로 탈출한 난민의 숫자도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에는 임시 난민촌이 생겨났을 정도다. 유엔에서 이들을 위해 기초 식량과 의약품 등의 긴급 구호물자를 배급하고 있지만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민간인 65만여 명 숨져
미 국방부가 밝힌 이라크의 현재 병력은 10개 사단 13만명, 국경수비대를 포함한 경찰력은 19만명으로 총 32만명의 군과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의 상황은 안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돼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상황이 안 좋다”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7일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특별히 이라크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이날 공개된 ‘이라크 연구그룹(ISG)’의 보고서 때문이다. ISG는 미국의 공화, 민주 양당을 아우르는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지난 3월에 발족해 이라크에서의 미국 정책을 연구해왔다.
이 단체의 공동의장으로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베이커와, 전 민주당 의원이자 9·11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의장을 역임한 리 해밀턴의 이름을 따 ‘베이커-해밀턴 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이라크에서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호되게 질타하면서 개선을 위한 총 79개의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2008년 초까지 14만명 수준의 이라크 주둔 미군 수를 절반 이하로 감축하고 이들의 주요 임무를 ‘전투’에서 ‘지원’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군대를 훈련시키고 자문해줄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전투병력은 철수하라는 의미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이라크의 정상화를 위한 도움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란, 시리아와 조건 없는 대화를 실시하라는 권고 사항이다. 보고서는 이들 두 국가가 이라크의 안정화를 위해 상당 부분 기여하리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바라보는 이라크와 주변 아랍국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쿠르드족 출신의 이라크 대통령 잘랄 탈라바니는 이 보고서에 대해 “미국의 국익만을 고려한 무책임한 보고서”라고 비난했다. 특히 사담 후세인 정권하의 바스당 세력까지 포함한 모든 계파와의 화해를 권고한 부분에 대해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하는 주장”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후세인 시절 바스당 집권세력은 화학무기를 사용해 쿠르드족을 대량살상한 장본인이자, 오늘날 이라크의 혼란을 야기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부시의 이라크 정책 반대 여론 71%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이자 외무장관인 사우드 알-파이잘은 이란과 시리아가 이라크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적극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사우디의 입장일 뿐 아니라 시아 이슬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모든 수니 이슬람 국가들의 공통된 입장이기도 하다.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 등의 수니 이슬람 국가들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초승달지대’의 형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라크 내부와 주변 아랍국의 반대에도 부시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무시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최근 실시한 연합통신의 미국 내 설문조사에서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71%에 달했다. 이는 이라크 전쟁 이후 최고 수치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종결하라는 여론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공화당의 중간선거 실패로 새해 들어 소집될 의회는 민주당 의원이 다수를 점하는 의회가 된다. 민주당 인사들은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에 대해 우호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이미 대(對)이라크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리고 성탄절 이전에 TV에 나와 이라크 정책의 변화 내용을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돌연 이 일정을 새해로 연기했다. 달라진 미국 내 정치지형과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부시 행정부가 미국 국민과 민주당 의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이라크를 안정화할 해법을 들고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