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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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통증, 알고 보면 심각한 질병”

필리핀서 제1회 아·태 만성 통증 치료 선언 … 고유 질병 인식하고 철저한 관리 필요

  • 마닐라=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12-19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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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 통증, 알고 보면 심각한 질병”

    ‘제1회 아시아·태평양 만성 통증 치료 선언’을 발표한 동남아시아 통증학회 모습.

    만성 통증이 아시아 의학계의 새 화두로 떠올랐다. 11월29~12월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통증학회(ASEAPS)에서 ‘제1회 아시아·태평양 만성 통증 치료 선언’이 발표됨으로써 해당 지역 환자와 의사들이 만성 통증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통증을 정확히 진단하고 관리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한 것. 이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한 9개국 500여 명의 통증 관리 의사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해 만성 통증에 대한 열띤 관심을 나타냈다.

    이번 선언은 아태지역에서 만성 통증 관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세계적으로 만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성인 5명 중 1명꼴. 미국의 경우 만성 통증으로 인해 지출되는 의료비용이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른다. 암과 심장질환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다.

    만성 통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질병인 만큼 마땅히 치료돼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 진단 및 치료는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아태지역의 많은 환자들은 유효성과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대체요법으로 통증을 완화하거나 일반의약품으로 팔리는 진통제를 과다 사용하고 있어 효과적인 통증 관리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최근 콕스-2(COX-2,우리 몸에서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는 효소)만 선택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소염·진통 효과를 발휘하는 치료제가 시판되고 있음에도 그 효과가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환자의 정신건강에도 심대한 영향

    “만성 통증, 알고 보면 심각한 질병”
    만성 통증은 외상 혹은 수술 후 갑자기 생기는 급성 통증과 달리 오랫동안 지속된다. 통증이 간헐적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성 통증의 위험성은 한층 더하다. 발생 원인도 다양하다. 당뇨병성 통증, 암 통증, 염증으로 인한 통증 등 갖가지 양상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골관절염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말초신경계나 중추신경계의 손상 때문에 발생하는 신경병증성 통증이 만성 통증의 2대 축을 이룬다. 특히 신경병증성 통증은 그 상태가 복잡한 데다 환자와 의료진의 인식 부족, 전반적인 진단 미비 등으로 관리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번 학회에서는 2년 전부터 신경병증성 통증에 시달려온 간호사 출신의 40세 필리핀 여성이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의 투병생활을 직접 들려줘 눈길을 모았다.

    만성 통증은 환자의 정신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때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초래한다. 때문에 만성 통증이 곧잘 심리적 문제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엄연한 신체의 질병이며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ASEAPS 위원장인 헨리 루 박사(필리핀 통증 전문의)는 “만성 통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보건의료체계에도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만큼 아태지역 보건의료 이슈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며 “고령화와 당뇨병 등 관련 질환의 증가 등으로 향후 유병률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학회의 한국 측 대표인 한양대 류머티스병원장 배상철 교수는 “국내에서도 65세 이상 인구 중 절반이 관절염을 앓고 있을 정도로 만성 통증은 대중적이다. 그럼에도 골관절염은 흔히 노화에 따른 것으로 여겨져 방치되고, 류머티스성 관절염도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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