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아시아·태평양 만성 통증 치료 선언’을 발표한 동남아시아 통증학회 모습.
이번 선언은 아태지역에서 만성 통증 관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세계적으로 만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성인 5명 중 1명꼴. 미국의 경우 만성 통증으로 인해 지출되는 의료비용이 연간 1000억 달러에 이른다. 암과 심장질환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다.
만성 통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질병인 만큼 마땅히 치료돼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 진단 및 치료는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아태지역의 많은 환자들은 유효성과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대체요법으로 통증을 완화하거나 일반의약품으로 팔리는 진통제를 과다 사용하고 있어 효과적인 통증 관리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최근 콕스-2(COX-2,우리 몸에서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는 효소)만 선택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소염·진통 효과를 발휘하는 치료제가 시판되고 있음에도 그 효과가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환자의 정신건강에도 심대한 영향
만성 통증은 외상 혹은 수술 후 갑자기 생기는 급성 통증과 달리 오랫동안 지속된다. 통증이 간헐적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성 통증의 위험성은 한층 더하다. 발생 원인도 다양하다. 당뇨병성 통증, 암 통증, 염증으로 인한 통증 등 갖가지 양상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골관절염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말초신경계나 중추신경계의 손상 때문에 발생하는 신경병증성 통증이 만성 통증의 2대 축을 이룬다. 특히 신경병증성 통증은 그 상태가 복잡한 데다 환자와 의료진의 인식 부족, 전반적인 진단 미비 등으로 관리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번 학회에서는 2년 전부터 신경병증성 통증에 시달려온 간호사 출신의 40세 필리핀 여성이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의 투병생활을 직접 들려줘 눈길을 모았다.
만성 통증은 환자의 정신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때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초래한다. 때문에 만성 통증이 곧잘 심리적 문제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엄연한 신체의 질병이며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ASEAPS 위원장인 헨리 루 박사(필리핀 통증 전문의)는 “만성 통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보건의료체계에도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만큼 아태지역 보건의료 이슈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며 “고령화와 당뇨병 등 관련 질환의 증가 등으로 향후 유병률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학회의 한국 측 대표인 한양대 류머티스병원장 배상철 교수는 “국내에서도 65세 이상 인구 중 절반이 관절염을 앓고 있을 정도로 만성 통증은 대중적이다. 그럼에도 골관절염은 흔히 노화에 따른 것으로 여겨져 방치되고, 류머티스성 관절염도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