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술 더 떠 ‘웃겨야 산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웃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웃음을 주는 사람은 어딜 가나 환영받는다. 요즘 TV를 보라. 각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은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각종 오락 교양 프로그램은 개그맨이나 개그맨 뺨치는 유머감각을 지닌 연예인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조선시대의 우스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스갯소리만 나열한 단순 유머집은 아니다. 저자는 고전문학 전공자답게 각종 고전에서 찾아낸 유머를 시대적 배경과 함께 소개하고 해설, 논평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색다른 모습을 조명하려고 했다. 이 책은 각종 우스개를 종류별로 나누어 담고 있는데, 양반들의 점잖은 우스개부터 음담패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처럼 못된 벼슬아치의 전횡을 꼬집는 우스개도 있고, 엄숙한 조정을 웃음바다로 만든 이항복의 장난스런 우스개도 있다.
더운 여름날 이항복은 입궐을 앞둔 장인 권율에게 날씨가 무더우니 버선을 벗고 신을 신도록 권했고, 권율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대궐에 들어간 이항복이 왕에게 날씨가 무더우니 나이 든 재상들을 위해 신을 벗게 해달라고 아뢰었다. 선조는 흔쾌히 허락했지만 권율만은 신을 벗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조는 권율이 임금 앞이라 어려워 그러는 줄 알고 내관을 시켜 신을 벗겨주라고 했다. 그런데 신을 벗기고 보니 맨발이 드러났다. 권율은 도포자락으로 발을 가리며 엎드려 아뢰었다. “이항복에게 속아 이리 되었나이다.” 임금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신하들도 배를 움켜잡았다.
- ‘기문총화(記聞叢話)’ 5권, 600화
이항복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우스개 자료를 남겼다. 그는 ‘농담의 천자(天子)’라고 불릴 만큼 걸출한 농담꾼이었다. 이항복의 농담 실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일화가 전해진다.
이항복은 말을 끔찍이 아꼈는데 계집종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말에게 먹일 콩이 떨어졌습니다.” 이항복이 웃으며 말했다. “말을 먹이는 것도 대신과 의논을 해야 하느냐?”
예나 지금이나 유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육담(肉談)이다. 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시기였지만, 전해지는 육담에는 지금 들어도 낯 뜨거운 것이 많다. 남자의 성기를 ‘살송곳’에 비유하는가 하면, 간통을 풍자한 육담에는 반상(班常)이나 남녀가 따로 없다.
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 성품이 매우 음탕했다. 구멍이 뚫린 호박 하나가 있는데 그 모양이 여자의 옥문처럼 생겼다. 이에 자신의 음경을 집어넣고 즐기다가 손님이 오면 의자 밑에 감추었다. 그에게 어린 조카가 하나 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하루는 그 조카가 찾아오자 선비가 그 의자에 앉도록 권했다. 조카가 한사코 사양하니 선비가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조카가 대답하기를 “비록 채소 종류이나 아주머니께서 의자 아래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올라앉겠습니까?” - ‘어면순(禦眠楯)’
이 밖에도 기생과 술에 관한 우스개, 옛날 우스개의 주인공, 옛날 우스개를 즐기기 위한 조건 등의 소제목으로 많은 우스개와 그에 관한 뒷이야기들이 나온다. 특히 유명인들의 실화도 자주 나온다. 대를 이어 영의정이 된 홍섬이 밤에 계집종을 친압하다가 아버지 홍언필에게 혼쭐난 이야기, ‘설공찬전(薛公瓚傳)’의 작가 채수가 세조의 부마인 하성부원군을 놀려먹은 이야기가 그렇다.
유머, 즉 우스개는 한 번 듣고 웃어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선시대 우스개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대단한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최불암 시리즈’나 ‘사오정 시리즈’도 후세에는 귀중한 사료로 회자되지 않을까? 우리가 우스개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류정월 지음/ 샘터 펴냄/ 336쪽/ 1만5000원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조선시대의 우스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스갯소리만 나열한 단순 유머집은 아니다. 저자는 고전문학 전공자답게 각종 고전에서 찾아낸 유머를 시대적 배경과 함께 소개하고 해설, 논평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색다른 모습을 조명하려고 했다. 이 책은 각종 우스개를 종류별로 나누어 담고 있는데, 양반들의 점잖은 우스개부터 음담패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처럼 못된 벼슬아치의 전횡을 꼬집는 우스개도 있고, 엄숙한 조정을 웃음바다로 만든 이항복의 장난스런 우스개도 있다.
더운 여름날 이항복은 입궐을 앞둔 장인 권율에게 날씨가 무더우니 버선을 벗고 신을 신도록 권했고, 권율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대궐에 들어간 이항복이 왕에게 날씨가 무더우니 나이 든 재상들을 위해 신을 벗게 해달라고 아뢰었다. 선조는 흔쾌히 허락했지만 권율만은 신을 벗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조는 권율이 임금 앞이라 어려워 그러는 줄 알고 내관을 시켜 신을 벗겨주라고 했다. 그런데 신을 벗기고 보니 맨발이 드러났다. 권율은 도포자락으로 발을 가리며 엎드려 아뢰었다. “이항복에게 속아 이리 되었나이다.” 임금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신하들도 배를 움켜잡았다.
- ‘기문총화(記聞叢話)’ 5권, 600화
이항복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우스개 자료를 남겼다. 그는 ‘농담의 천자(天子)’라고 불릴 만큼 걸출한 농담꾼이었다. 이항복의 농담 실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일화가 전해진다.
이항복은 말을 끔찍이 아꼈는데 계집종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말에게 먹일 콩이 떨어졌습니다.” 이항복이 웃으며 말했다. “말을 먹이는 것도 대신과 의논을 해야 하느냐?”
예나 지금이나 유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육담(肉談)이다. 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시기였지만, 전해지는 육담에는 지금 들어도 낯 뜨거운 것이 많다. 남자의 성기를 ‘살송곳’에 비유하는가 하면, 간통을 풍자한 육담에는 반상(班常)이나 남녀가 따로 없다.
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 성품이 매우 음탕했다. 구멍이 뚫린 호박 하나가 있는데 그 모양이 여자의 옥문처럼 생겼다. 이에 자신의 음경을 집어넣고 즐기다가 손님이 오면 의자 밑에 감추었다. 그에게 어린 조카가 하나 있었는데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하루는 그 조카가 찾아오자 선비가 그 의자에 앉도록 권했다. 조카가 한사코 사양하니 선비가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조카가 대답하기를 “비록 채소 종류이나 아주머니께서 의자 아래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올라앉겠습니까?” - ‘어면순(禦眠楯)’
이 밖에도 기생과 술에 관한 우스개, 옛날 우스개의 주인공, 옛날 우스개를 즐기기 위한 조건 등의 소제목으로 많은 우스개와 그에 관한 뒷이야기들이 나온다. 특히 유명인들의 실화도 자주 나온다. 대를 이어 영의정이 된 홍섬이 밤에 계집종을 친압하다가 아버지 홍언필에게 혼쭐난 이야기, ‘설공찬전(薛公瓚傳)’의 작가 채수가 세조의 부마인 하성부원군을 놀려먹은 이야기가 그렇다.
유머, 즉 우스개는 한 번 듣고 웃어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선시대 우스개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대단한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최불암 시리즈’나 ‘사오정 시리즈’도 후세에는 귀중한 사료로 회자되지 않을까? 우리가 우스개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류정월 지음/ 샘터 펴냄/ 336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