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다원검사를 받고 있는 수면장애 환자. 그동안 수면기사가 환자의 뇌파를 관찰하고 있다(오른쪽).
직장인 K(45)씨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3년 전부터 잠들기가 힘들어 집 부근 의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해왔는데, 약을 먹으면 잠은 오지만 다음 날 아침 머리가 맑지 않았다. 가끔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고 잠을 청해봤지만, 잠들기가 더 힘들어 약을 중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K씨는 수면클리닉이라는 곳을 알게 되어 그곳을 찾았다. 잠자리가 불편한 환자들이 수면클리닉을 방문하면 어떤 검사들을 받게 될까. K씨 사례를 통해 일반인이 잘 모르는 검사법에 대해 알아보자.
수면장애 ‘병’이라고 생각 안 하는 사람 많아수면클리닉을 방문한 K씨는 전문의의 진찰에 앞서 간호사로부터 질문지를 몇 장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지난 한 달간의 전반적인 수면 양상과 낮 동안의 졸음 정도, 아침형-저녁형 수면 여부를 묻는 내용 등을 기입했다. 전문의는 질문지 내용을 참고하면서 K씨의 증상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종아리가 불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K씨는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그것이 병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의는 몇 가지 사항을 추가로 확인한 뒤 K씨가 ‘하지불안증후군’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K씨의 코골이 증상에 대해 묻고 혹시 잠자는 도중 숨을 쉬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물었다. K씨는 최근 2년 사이 체중이 5kg 가량 늘면서 코골이가 심해졌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자신이 코를 골다가 30초 이상 숨을 멈추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전문의는 K씨의 증상이 단순한 코골이가 아니라 수면무호흡증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K씨가 현재 앓고 있는 고혈압과 당뇨병 또한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면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의는 이어 K씨가 낮 동안 기력이 없고 심하게 졸린 것도 불면증으로 인한 수면 부족에다 수면무호흡증으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의는 K씨에게 몇 가지 혈액검사와 함께 야간 수면다원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K씨는 예약 당일 밤 9시에 수면검사실을 찾았다. 수면기사에게서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몸에 센서를 부착했다. 준비를 마친 후 K씨는 침대에 앉아 하지불안증후군에 대한 검사를 1시간 정도 받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잠은 비교적 쉽게 들었다. 이후 8시간 동안 야간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K씨는 다음 날 새벽 6시에 수면기사가 깨워 일어났다. K씨는 샤워를 한 뒤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수면평가척도 질문지.
퇴근 후 다시 수면클리닉을 방문한 K씨는 전문의로부터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하룻밤 동안 자신의 수면이 어떤 상태인지를 요약한 그림을 보니 쉽게 이해가 됐다. K씨는 하지불안증후군이 있어 다리가 불편해 잠들기가 힘들었고, 그 심한 정도 역시 검사 결과에 나타나 있었다. 또한 수면 중에도 주기적으로 다리를 움직여 깊은 잠에 들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코골이도 심한 편이었고 10초 이상 숨을 멈추는 무호흡증도 시간당 20회 정도 나타났다. 전문의는 컴퓨터에 저장된 검사기록 중 무호흡증, 주기적인 다리 움직임, 수면자세 등을 보여주었고, K씨는 덕분에 자신의 수면상태를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몸에 센서 부착하고 자는 동안 수면상태 체크전문의는 K씨의 하지불안증후군에 대해 약을 처방했다. 수면무호흡증에 대해서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함께 구강과 인후 구조 등에 대한 진찰을 한 뒤 수술 치료를 권했다. 또한 체중을 줄이고 술·담배를 끊을 것, 생활습관을 바꿀 것 등을 지시했다.
K씨는 약물을 복용한 후 하지에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받은 뒤에는 코골이와 무호흡증도 크게 줄었고 낮 동안의 무기력증도 사라졌다. 낮 동안 졸리지 않자 운동을 시작했더니 체중도 줄었다. 이후 K씨는 당뇨와 혈압 조절이 훨씬 잘 되어 약을 끊고 지낼 수 있게 됐다. 수면장애 치료로 K씨의 인생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수면클리닉에서 어떤 검사 하나
문진에 직접 답한 뒤 자는 동안 수면다원검사
| 수면평가척도
수면장애 환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은 쉽게 잠들 수 없거나 자주 깨는 문제, 낮 동안 심하게 졸린 경우,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잠들기 전 하지의 불편감 등이다. 이 증상들을 쉽고 빠르게 평가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자기가 직접 기입하는 수면평가척도를 작성하게 한다. 지난 한 달간의 수면의 질, 낮 동안 졸린 정도, 코골이 유무, 하지 불편감 등에 대한 질문지가 따로 있다.
수면 전문의는 환자를 진찰하는 과정에서 이 수면평가척도를 적극 활용한다. 환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증상에 맞춰 다양한 문진을 하고, 필요한 경우 수면다원검사나 활동기록기검사(actigraphy)를 시행한다.
수면다원검사
심장이 좋지 않은 환자가 병원에 가면 심전도 검사를 받듯, 잠에 문제가 있으면 잠을 ‘찍어 보는’ 수면다원검사를 받게 된다. 수면다원검사는 잠에 관한 한 가장 종합적인 검사다. 환자는 수면검사실에서 하룻밤을 잔다. 대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8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데, 이때 뇌파와 안전도(눈동자의 움직임), 근전도(턱 근육의 긴장도), 심전도, 코골이 증상, 호흡 양상, 하지 근전도, 혈중산소 포화도, 수면자세(적외선 카메라로 녹화) 등을 측정한다. 이 검사를 위해 20개 가량의 센서가 활용된다.
환자가 검사를 받는 동안 수면기사는 잠을 자지 않고 환자에게 나타나는 자료를 모니터하고 특이사항을 기록한다. 8시간의 검사 결과는 검사지 1000쪽 분량에 이르며, 이를 판독하는 데만 5시간 이상 걸린다. 판독 결과를 전산처리하면 전체적인 수면의 질, 코골이, 무호흡증, 주기성 사지 운동증(잠을 자면서 주기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는 증상), 부정맥 유무와 심한 정도를 수치로 알 수 있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검사이기 때문에 수면다원검사 비용은 1회에 50만~70 만원이나 된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검사 비용에 놀라는 환자들도 검사과정에 드는 노력과 검사 결과의 세밀함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주간입면기 반복검사
낮 동안 심한 졸음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엔 기면병(嗜眠病)을 의심해볼 수 있다. 기면병을 진단하려면 하룻밤 동안 수면다원검사를 하고, 이어서 다음 날 아침 환자에게 잠을 2시간 자게 하여 얼마나 빨리 잠드는지, 렘(REM) 수면(빠른 안구운동이 나타나는 수면의 단계 중 하나로 꿈을 꾸는 잠)이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주간입면기 반복검사를 한다. 이 검사 역시 뇌파와 안전도, 근전도, 심전도 등을 측정해 낮 동안의 졸린 정도를 수치로 표현해주며, 특발성 수면과다증이나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한 낮 동안의 졸음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수면은 며칠 혹은 수개월에 걸쳐 나타나는 생체리듬의 하나이므로 한두 가지 결과만 보고 수면장애 진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수면 전문의의 진찰과 여러 검사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
환자가 맨 처음 기입한 질문지 내용과 문진 소견, 수면다원검사 및 활동기록기 결과 등을 종합해 최종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