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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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 일군 현정은, 도전과 응전

핵폭풍 시련 “금강산 사업 지속” 뚝심 … 현대건설 인수도 흔들림 없이 추진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6-11-01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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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자 일군 현정은, 도전과 응전

    10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경협 관계자 오찬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맨 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관광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금강산 관광사업을 중단하지 않겠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0월11일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남북 경제협력 사업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북한 핵실험 이후 남북 경협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는 자리에서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국 내에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굴하지 않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계속하겠다는 현 회장의 ‘뚝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그룹 임직원은 현 회장에 대해 한결같이 “자기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총수”라고 말한다.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사장단 회의 때도 말없이 보고만 받는다고 한다. 당연히 각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한다. 한 계열사 사장은 “처음엔 경영에 대해 잘 몰라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룹 사정을 꿰뚫고 있는 요즘도 마찬가지여서 오히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려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현 회장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룹 총수가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한 사안이 생길 때가 바로 그것이다. 현 회장은 그때마다 “그 문제는 저한테 맡겨주세요”라고 말한 뒤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간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현 회장의 ‘뚝심’도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 관계자는 “현 회장의 친정도 대단한 집안이지만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배운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짧은 기간에 경영자로 ‘우뚝’



    현 회장의 이런 뚝심은 지난해 8월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퇴진시킬 때도 빛을 발했다. 당시 북한은 김 부회장의 퇴진을 트집잡아 현대를 어렵게 했지만 현 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현대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공도 많았지만 회장에게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비자금까지 조성한 점 등이 문제가 됐다”면서 “그런 김 부회장을 과감하게 내침으로써 그룹 회장의 카리스마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말했다.

    KCC나 현대중공업그룹과의 경영권 분쟁 때도 현 회장의 뚝심은 여전했다. 특히 KCC와의 경영권 분쟁 때는 그룹 내에서도 KCC 측과 타협하기를 바라는 여론이 있었다. KCC 정상영 명예회장이 범현대가(家)의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다른 얘기는 마시라”면서 ‘정면돌파’를 선언했고, 결국 승리로 이끌었다.

    경영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현 회장의 고민거리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가 10월24일 이사회를 열고 아일랜드계 파생상품 전문 투자사인 넥스젠 캐피탈과 현대상선 주식 600주에 대한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으로 현대상선 우호지분이 40%대 중반을 넘어서게 돼 경영권 안정화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흑자 일군 현정은, 도전과 응전

    2004년 8월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현대그룹 2010 비전발표회’에서 현정은 회장이 사기(社旗)를 흔들고 있다.

    “현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답답”

    ‘북핵’만 아니었다면 현정은 회장은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것이다. 10월21일 현대그룹 회장 취임 3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남편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현대호’를 떠맡았지만 짧은 기간에 경영자로 우뚝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현대는 난파 직전 상태였지만 이후 흑자로 돌려놓았다. 최근엔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재도약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매출 6조9566억원을 달성했다. 현 회장이 취임한 2003년의 5조4345억원에 비해 28% 증가한 실적이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737억원 적자에서 7776억원 흑자로 돌아섰다(표 참조). 현대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 영업 비중을 줄인 결과 최근 해운업 불황 속에서도 ‘선방’하고 있고, 현대증권은 업계 1위를 넘보고 있다”고 자랑했다. 특히 만년 적자였던 현대아산은 지난해부터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최근 현정은 회장에게 주어진 도전과제는 현대건설 인수. 자금 마련 등 준비 작업도 착실히 해왔다. 그러나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가 8월 말 ‘구(舊)사주 문제’를 제기하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김 총재의 발언은 ‘부실 책임이 있는 구사주인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매각 대상에서 배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 관계자는 “구사주 문제는 법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개인 재산을 다 출연한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정 회장 주변에서는 ‘현대건설은 포기하고 차라리 전망이 좋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라도 지키는 게 낫지 않느냐’고 조언했지만 현대건설에 대한 정 회장의 애정이 워낙 강해 이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

    현정은 회장은 최근의 북핵 사태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현재로선 ‘핵폭풍’이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예측하기 힘든 만큼 현 회장의 ‘대북사업 뚝심’이 나중에 ‘무모한 고집’으로 비판받을지, 아니면 ‘결단’으로 칭송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의 한 임원은 “최근의 북핵 사태에 관한 한 현 회장이나 현대 임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아무것도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면서 “북핵 사태가 ‘경영자’ 현 회장의 마지막 시험대가 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주요 계열사 경영 실적 변화
    * 현대증권은 회계연도가 4월부터 다음 해 3월임. * 자료 : 각 사 사업보고서
      매출액 당기순이익
    2003년 2005년 2003년 2005년
    현대엘리베이터 358,168 473,019 28,346 83,948
    현대상선 3,944,676 4,845,594 -45,308 386,402
    현대증권 654,353 936,587 -198,167 282,678
    현대택배 387,695 446,441 4,834 10,375
    현대아산 89,639 235,001 -63,369 14,240
    5,434,531 6,956,642 -273,664 777,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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