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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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으로 빚은 새로운 언어

  • 김준기 미술비평 www.gimjungi.net

    입력2006-11-06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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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상으로 빚은 새로운 언어
    “어느 어둑한 날 밤,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곤히 잠든 70개의 발가락을 보았다.” 딸부잣집 아빠 박영근의 말이다. 작가 자신과 작가의 아내, 그리고 여섯 명의 딸들을 그려낸 이 화가의 문학적 진술은 그림과 글이 언어적 매개로 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는 시각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시도해왔다. 그것은 시각 이미지와 텍스트가 별개의 것이 아니며 양쪽 모두 ‘언어’라는 점을 각성하게 한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시각 이미지와 문자언어를 우열의 관점에서 분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박영근은 이러한 습관/관행에 균열을 내고 있다. 시각 이미지나 문자 모두 의미를 구성하는 하나의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형상과 문자를 병치해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구사한다.

    박영근은 화가다. 캔버스에 유화나 아크릴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화가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박영근은 전동 드릴이나 그라인더를 가지고 그림을 마무리한다. 전동 모터를 가동해 평면에 칠해진 물감을 파헤쳐 선을 만들어낸다. 그는 붓질로 그린 형상들을 기계의 둔중하면서도 날렵한 선율로 해체하곤 한다. 그 선은 형상을 직조해내는 기능적 요소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환상적인 변주곡을 연주하며 화면 위를 휘젓고 다니거나 질주한다. 그가 해체하려 하는 것은 형상만이 아니다. 그는 그림과 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가 하면, ‘서사’를 끌어들이는 방식도 뒤흔들어 버린다. 박영근은 소소한 자신의 이야기를 문자언어와 함께 여러 형상들로 쏟아낸다.

    그가 건네는 이야기는 사통팔달이다. 그는 문자의 한계를 회화적 형상으로 대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선다. 흔히 서사를 ‘문자언어에 의해 매개되는 사유나 감성의 연쇄’로 인식하기 십상이지만, 박영근은 시각 서사의 작동을 보여줌으로써 양자 간의 우열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삶을 통해 체득한 주관적 가치들을 가지고 큰 이야기의 보편적 가치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는 한강이나 황허와 같은 강, 북한산이나 알프스 같은 산, 말과 배와 우주선 같은 운송 통신수단, 박정희, 렘브란트, 양귀비 같은 역사적 인물과 무궁화, 튤립, 양귀비 같은 꽃을 각각의 대립쌍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조합들은 형상 그 자체로 언어적 매개를 이끌어내는가 하면, 문자언어를 도입함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언어적 매개를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11월3일까지, 갤러리 상, 02-73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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