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
반면 과거의 기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극장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옛 단성사에 살았던 쥐들을 기억하며 향수에 젖는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영화관들도 대부분 낡고 초라한 곳들이다. 뭐니 뭐니 해도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은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시칠리아의 영화관. 맨 처음엔 성당에 기생했다가 복권에 당첨된 아저씨가 지은 건물로 옮겨진 뒤 몇 십 년 동안 동네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한 극장으로, 이곳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들은 온갖 불편함들이다.
쉽게 불에 타는 위험한 필름, 뻔한 키스신 하나 못 보게 하는 검열관 신부님, 한 통의 필름으로 양쪽 극장에서 동시상영을 하기 위해 분주하게 필름통을 싣고 두 극장을 오가는 자전거 등. ‘시네마 천국’의 극장이 요즘 멀티플렉스처럼 멀끔한 곳이었다면 영화는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낡은 영화관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다. 컴컴하게 불도 꺼지고 닫힌 공간 안에 낯선 사람들과 모여 있는 건 보통 때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이다. 악명 높은 이탈리아 호러영화 ‘데몬스’에서는 극장 안에 갇힌 사람들이 한 명씩 좀비로 변한다. ‘스크림 2’와 ‘씨어터’에서 극장은 연쇄살인범의 활약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위험과 불길함은 종종 시적 전환이 되기도 한다. 매혹적인 스페인 영화 ‘벌집의 정령’에서 지지직거리는 필름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상영하는 마을회관은 주인공인 어린 소녀 아나에게 환상의 문을 열어주는 마법의 공간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붕괴되는 영화 끝에서 아나는 정말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만난다.
‘벌집의 정령’에서 상상력 풍부한 소녀의 마음속에서 두 세계의 붕괴가 일어난다면, 몇몇 영화들은 작정하고 두 세계 사이를 뚫어놓는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터프 가이는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에서 현실로 튀어나온다. 반대로 우디 앨런의 슬픈 코미디 ‘카이로의 자줏빛 장미’에서 미아 패로가 연기하는 여자 주인공은 영화관에서 보던 동명의 흑백영화에서 튀어나온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런 영화들에서 극장은 짝사랑일 수밖에 없는 영화 감상이라는 행위에 능동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대부분 영화들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들을 극중 영화관에서 트는 것으로 만족한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년, 천국에 가다’나 ‘사랑해, 말순씨’와 같은 영화들에 등장하는 극장에서는 지금 사람들 기억에 잊혀진 80년대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 이건 한국 영화에 대한 달라진 자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