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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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과 노화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6-04-17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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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과 노화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얼마 전 지인이 눈으로 직접 보고 들려준 이야기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에 여고생이 앉아 있었다. 어느 역에선가 중년 부인이 타더니 바로 그 여학생 앞에 섰다. 여학생은 내내 조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중년 부인은 이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몇 개의 역을 지났을까. 중년 부인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봐 학생, 학생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계시나?”

    어른을 세워놓고 조는 척하다니, 괘씸하다는 투였다. 이럴 경우 앉아 있는 쪽이 무안해하며 얼른 자리를 내주게 마련인데, 그 여학생은 부인을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머니면 할머니답게 하고 다니셔야죠. 전 젊은 아주머니인 줄 알았어요.”

    평일 낮이라 안 그래도 한산한 지하철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중년 부인에게로 향했다. 과연,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짙은 화장에 요란한 옷차림이었다. 이번엔 중년 부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부인은 그 자리에 있기가 힘들었는지 이내 다른 칸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지인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말하는 대신 “요즘 학생들은 정말 야무지다”며 감탄했다. 참고로 그는 칠순 노인이다. 그 중년 부인, 아니 할머니의 불행은 외모·나이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자글자글 주름진 피부를 진한 화장으로 감추고 싶은 욕망과, 포기하기 아까운 경로우대 혜택 사이에서 존재의 모순이 생긴 것이다.



    요즘은 남성들까지도 ‘나이 듦과의 전쟁’에 나섰다. 덕분에 바르기만 해도 주름살이 ‘쫘~악’ 펴진다는 안티에이징 화장품이 인기다. 여성들은 탱탱한 피부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들보들한 아기 피부를 갈망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어려 보여야 만족할까?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2006, 사이 펴냄)의 저자 윌리엄 새들러 교수는 나이 듦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쉰 살 넘은 사람 중에는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저자는 이런 말도 한다. “원숙함이 결여된 젊음의 추구는 미성숙한 정신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추함이다.” 마흔에 접어들어서일까, 나도 이런 책에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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