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이사회는 부드러운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진행된다.
“포스텍이 경영 마인드를 가진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MBA 과정을 육성한다는 것 자체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국제관 및 기숙사 건립비 지원이 포스코 입장에서 주주이익이나 회사가치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97년 선도적 사외이사제 도입 이후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
“포스텍이 포스코에 의해 설립됐지만 이제는 포스코에 100% 의존할 게 아니라 자체적인 노력을 통해 동반 성장하는 게 필요하다.”
“포스코 이사회가 포스텍의 학사정책 결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포스텍의 장래에 대한 비전이나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서로 가치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는 주주들 입장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포스코 주주들에게 왜 이런 것을 하면 좋은지, 배당금을 받는 것보다 포스텍에 지원하는 것이 좋은 이유나 주주들이 얻을 수 있는 간접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등을 설명해달라.”
논란 끝에 기숙사는 포스텍이 자체적으로 건립하고 국제관도 규모를 축소해 지원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은 기숙사뿐 아니라 국제관 건립 부분도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다시 검토하자고 주장해 이 안건은 부결됐다.
그해 12월 포스코 국제관 건립비 출연 계획이 이사회에 다시 상정됐다. 2006년 창립 20주년을 맞는 포스텍으로서는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논란 끝에 포스텍이 자체 발전을 위한 별도의 모금 전략을 마련하고 그 보고서를 이사회에 제출한다는 조건으로 규모를 대폭 축소해 수정 가결됐다.
포스코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사외이사들이 최고경영자(CEO)의 결정에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적어도 포스코와는 무관한 지적이다. 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포스코 이사회는 CEO 등 집행임원들의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감시하고 이들의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등 이사회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다.
포스코는 2월24일 본사 아트홀에서 800여명의 주주가 참석한 가운데 38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CEO와 이사회 의장직 분리 △스톡옵션제(주식 매입 선택권) 폐지 △CEO후보추천위원회 신설 등 정관 변경안을 확정했다.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한 것은 CEO가 경영 활동에 전념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감시 및 견제 기능은 사외이사가 주축이 된 이사회에서 맡도록 하기 위해서다. 외국의 선진 기업에서도 보기 드문 시스템이다.
포스코는 97년 국내 대기업으로서는 선도적으로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이래 지속적으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해왔다. 사외이사 비중을 점차 늘려 현재 이사회 구성원 15명 중 9명이 사외이사다. 2월6일 열린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 새뮤얼 슈발리에 전 뉴욕은행 부회장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중 박 회장과 서 학장을 재추천해 주총의 승인을 받았다. 슈발리에 전 부회장 후임으로는 현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및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허성관 광주과학기술원장이 선임됐다.
사외이사 선임에도 CEO 입김 원천 봉쇄
포스코는 사외이사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다. 포스코 사외이사 선임은 사외이사 후보 추천자문단 구성에서 시작된다. 2004년 1월 도입된 자문단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각계 대표 5인으로 구성돼 후보자 추천 때까지 1~2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자문단의 임무는 선임 예정 사외이사의 3배수를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하면서 끝난다.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사외이사 후보를 결정하는 곳은 이사후보추천위원회다. 이사회 산하의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3인과 사내이사 1인으로 구성돼 있어 CEO가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사외이사가 이렇게 선임되기 때문에 CEO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사회 산하에 이사후보추천위원회 외에 5개의 전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표 참조). 이 가운데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2004년에 신설한 내부거래위원회, 경영진 평가 및 보상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평가보상위원회, 경영진의 업무 집행에 대한 적법성 감사와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는 감사위원회는 위원 전원이 사외이사다.
증권거래법에서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에 대해 사외이사 비중이 2분의 1 이상 되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사외이사 비중이 3분의 2 이상 되는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법에서 정한 것 이상으로 엄격하게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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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구택 회장은 “일전에 일본의 철강 전문가 한 사람이 굳이 지배구조를 이렇게 엄격히 가져갈 필요가 있는지 물어온 적이 있는데,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드문 경영 체제지만 우리는 이런 모델을 성공시켜 국내 기업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면서 “기업의 투명성 확보가 기업가치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의 선진적인 이사회 운영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사에 따르면 2004년 3월 현재 이사회 내 전문위원회를 도입한 상장법인 165개사 가운데 포스코는 우리금융지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6개의 전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특히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포스코를 포함해 삼성전자, KT 등 단 3곳에 불과했다.
내부거래위원회는 사외이사만으로 구성 ‘이채’
포스코는 주주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2004년 과도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오해할 수 있는 전환우선주 발행 조항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소액주주들이 특정한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와 서면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서면투표제를 도입한 것. 포스코의 지배구조 개선은 민간재벌 기업에 경영 투명성과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확산시킬 수 있는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코의 이런 지배구조는 최근 KT&G가 외국인 주주들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은 것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 주주들의 연간 수익률이 배당을 포함해 12% 이상이어서 외국인 주주들은 포스코를 매력적인 장기투자 기업으로 인정하고 있고, 이 때문에 외국인 주주의 경영권 공격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주주 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주주들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만이 적대적 인수 합병(M&A)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