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22일 인도 오리사주 주도인 부바네스와르에서 이구택 회장과 오리사주 나빈 파트나이크 주총리가 일관제철소 건설 및 광산개발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07년부터 건설공사 … 2010년 슬래브 생산
미탈스틸이나 아르셀로 등 세계 철강업계의 대표주자들이 국경을 초월한 인수·합병(M&A)으로 하룻밤 사이에 덩치를 키운 사례는 있으나 해외에서 독자적으로 일관제철소를 짓는 것은 포스코가 처음이다. 이 회장은 조인식 현장에서 인사말을 통해 “포스코 창립 기념일과 오리사주의 기념일이 4월1일로 같다”면서 “이는 양측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좋은 징조”라고 강조했다.
■나가야 산다 = 포스코의 인도 프로젝트는 세계화를 통해 ‘제철보국(製鐵報國)’ 신화를 재창조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세계 철강업계는 국경을 초월한 M&A를 통해 상대적 경쟁 우위를 선점해가는 추세다. 몸집이 클수록 원료 구매에서 협상력을 키울 수 있어 저렴하고 안정적인 원료 확보가 가능하다. 포스코가 인도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것 역시 안정적인 원료 확보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현재 3500만t 규모인 철강 생산량을 2020년까지 1억t, 개인당 철강 소비량을 100kg까지 늘릴 계획이다. 철강산업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만들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중앙정부 차원에서 마누 닐잔 철강차관을 위원장으로 10개 부처의 차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지원그룹을 구성, 포스코의 현지 진출을 적극 지원했다.
포스코는 양해각서 체결 두 달 뒤인 지난해 8월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부지 조성을 위한 정밀조사 등 타당성 검증을 거쳐 최종 투자협약(MOA)을 체결했으며, 2007년부터 본격적인 건설 공사에 나설 계획이다.
조만간 시작될 부지 매입을 앞두고 현지 주민들의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성식 인도법인장은 “대세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왜 인도인가 = 국내의 개인당 철강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인 1000kg 정도. 한마디로 국내 철강산업은 성숙단계에 진입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70년대 20%대에 달하던 철강수요 증가율이 최근에는 3%대까지 떨어졌다. 포스코로서는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인도는 포스코 입장에서 최고의 투자처라고 할 만하다. 세계 6위의 양질의 철광석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는 데다 10여년째 연평균 6%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철강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인도의 현재 개인당 철강 소비량은 우리나라의 3% 수준인 30kg 정도.
세계 철강업계가 포스코 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철강 역사상 해외에 일관제철소를 짓는 회사는 포스코가 처음이기 때문. 포스코는 인도에 1200만t의 제철소를 지을 계획이어서 규모나 생산성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지금까지 인도에서 광권을 부여받은 외국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사실 인도 프로젝트는 한국과 인도 중앙정부, 오리사 주정부, 포스코 등 4자 간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급부상에 부담을 느껴 제3의 시장을 모색하고 있고, 인도는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절실한 상황이다. 50억t의 철광석 매장량을 자랑하는 오리사주로서는 국제적 규모의 제철소 건설이 80년대부터의 숙원사업이었다. 포스코는 당시 주정부 초청으로 입지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포스코는 1단계 공사가 완료되는 2010년 말부터 생산되는 400만t의 슬래브와 열연제품을 현지에서 판매하고 국내 철강 수급 상황에 따라 일부는 국내로도 반입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인도 제철소가 완공되면 세계 2∼3위권의 철강회사로 올라서게 된다.
■삼고초려의 산물 = 2002년부터 인도 프로젝트를 암중모색했던 포스코가 오리사주에 제철소 건설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은 2004년 8월이다. 포스코는 열악한 사업 환경과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감수하면서 120억 달러나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오리사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오리사주에는 자원고갈 시대에 대비한 세계 철강업계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인도 측으로부터 ‘좋은 사업’이란 ‘립 서비스’만 받아오던 이 프로젝트가 단숨에 양국 간 현안으로 떠오른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었다. 포스코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정부가 이를 정상회담 의제에 올리면서 국가 차원의 ‘거래’로 격상했다. 이후 포스코 인도 투자는 오리사주 정부의 중점사업으로 발전했고, 포스코 경영진과 주정부 고위관리가 협상에 들어갔다. 포스코 뉴델리 사무소 관계자는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포스코 프로젝트가 포함된 것을 계기로 원칙과 정책만 따지면서 답답할 정도로 지연됐던 실무협상이 최소한 1년은 앞당겨진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지지부진하던 사업 추진 노 대통령 국빈 방문 후 급물살
하지만 정상회담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포스코의 투자 제안 내용이 알려지면서 자국 철광석이 대규모로 유출될 것을 우려한 인도 철강업계와 현지 광산업자들이 포스코를 음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포스코에 자극받은 세계 철강업체들이 잇따라 현지 제철소 설립에 관심을 보이자 느긋해진 오리사 주정부는 다시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자칫 무산될 뻔했던 이 사업에 극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은 지난해 5월 말 강창오 당시 사장이 오리사 주정부를 다시 방문하면서부터. 강 사장은 당시 “더 이상 협상을 끌어봐야 득 될 게 없으니 주정부의 진의를 확인하고 현지에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라”는 이 회장의 ‘특명’을 받고 현지를 방문했다.
인도 방문 네 번째인 강 사장은 이때 ‘광권 부여 이전의 자본금 납입’ 등 주정부가 내건 요구가 양측의 신뢰와 절차상 문제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들이 내건 조건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주정부도 제철소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인프라 예산을 확보하는 등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스왑(교환무역)의 한도도 포스코의 요구대로 30%로 늘려주면서 양측의 신뢰가 회복됐다. 결국 주정부는 지난해 5월17일 오후 포스코 프로젝트를 최종 통과시켰고, 이 소식은 현지 주재원을 통해 본사로 전달되면서 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