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애널리스트 데이’ 행사에 참가한 윤종용 부회장(왼쪽)과, 최도석 사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삼성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함대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계열사들이 배치돼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삼성 함대’를 지휘하는 수뇌부를 ‘삼각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함대 사령관인 이건희 회장, 각 함정의 함장인 계열사 사장, 그리고 사령관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사령관과 일선 함정을 연결하는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이 삼성 함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삼각편대가 ‘견제와 균형의 마술’을 발휘하면서 오늘의 삼성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견제와 균형 통해 오너십 영향력 극대화
이런 분석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견제와 균형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체계화한 시스템 덕분에 삼성이 거대한 함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건희 회장과 전략기획실, 그리고 계열사 사장들이 서로 견제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오너십을 기반으로 하는 회장을 정점으로 해서 계열사 사장과 전략기획실 참모가 서로 견제하며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분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모든 분석에서 계열사 사장과 전략기획실 참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은 오너십을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오너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삼성 함대의 항공모함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현재 삼성전자의 경영책임자는 윤종용 부회장이다. 그는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지만 장기 전략이나 대규모 투자 등은 이학수 부회장이 실장을 맡고 있는 전략기획실의 지원을 받아 결정한다.
삼성전자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모든 부문에서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업은 회사 전체를 총괄하는 부회장 밑에 각 사업을 이끄는 5명의 총괄사장과 16개 GBM(Global Business Management) 책임자들이 이끌고 있다. GBM은 사실상 독립회사처럼 운영된다. 삼성전자에선 물품의 생산과 판매는 물론, 사람을 뽑고 해외지사를 설치하는 것까지 총괄사장 책임 아래 진행된다. 사업부 간 거래도 외부 회사와 거래할 때처럼 납품 물량과 납기, 가격 등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합의가 이뤄지면 전표를 떼고 결제도 한다. GBM장은 신제품 기획에서 생산과 판매, 재무, 인사 등 자기 사업 부문의 모든 업무를 관장한다. 성과 보상도 사업부별로 다르다. 매년 말 이뤄지는 평가와 보상은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A는 최고의 보상을 받지만 C는 전혀 보상이 없다. 생산성장려금(PI)의 경우 평가를 잘 받으면 최고 월 기본급의 300%까지 지급받는다.
삼성전자가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경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유능한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삼성은 어떤 기업보다도 인재 선발과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이를 통해 엄선된 최고경영자들이 삼성 함대의 효율적 항해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에게 인재 선발과 양성은 이제 하나의 전쟁이 됐다. 기업이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재 확보다. 삼성의 눈부신 성장 및 발전도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에 기반을 둔다.
삼성 인재시스템의 핵심은 경쟁과 보상이다. 이 두 단어는 ‘삼성식 경영’의 두 축을 이루며 삼성의 사장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한다. 삼성전자에 입사해 정상적 승진 연한을 다 채웠다면 50대나 돼야 임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삼성 임원들의 평균연령은 47.5세에 불과하고, 40대 임원의 비율이 68%에 이른다. 삼성의 전·현직 사장 100명을 분석한 결과 임원이 된 나이는 40~42세이고, 51~53세에 사장이 됐다.
사장 되려면 임원끼리 또 다른 경쟁서 이겨야
이것은 삼성에서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려면 정상적 승진을 뛰어넘는 발탁 승진이 필요함을 뜻한다. 삼성에서 임원이 될 확률은 1% 정도다. 나머지 99%는 탈락한다. 삼성전자에서도 전체 직원 7만여 명 가운데 임원은 700명 정도다. 결국 임원이 되려면 ‘1%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관문 통과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발탁 승진은 경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삼성은 2005년 1월 임원인사에서 3명을 ‘대발탁’했다. 대발탁은 기본 승진 연한을 2년 이상 단축시키는 것이다. 삼성은 해마다 탁월한 성과를 낸 임직원에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주는데, 2005년에도 10명에게 상을 줬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5000만원과 특별승진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사장이 되려면 1% 관문을 통과한 임원들끼리 벌이는 또 다른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삼성전자에는 16개의 GBM이 있다. 총괄사장이 5명이기 때문에 총괄사장이 되려면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평가의 핵심 기준은 성과다. 성과가 없으면 승진은 불가능하다. GBM 책임자들이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라붙는 것이나 매출과 수익을 늘리기 위해 직접 마케팅과 원가절감 전략을 지휘하는 것도 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경쟁의 결과는 달콤하다. ‘삼성전자처럼 월급을 받았으면…’, 2005년 4월 국내 한 신문에 실린 삼성전자의 평균급여와 관련된 기사 제목이다. 2004년 삼성전자의 경영실적이 좋아 생산성 격려금과 초과이익배당금이 많이 지급되면서 직원들의 평균급여는 4년 전의 거의 배에 이르는 7130만원이었다.
그러나 ‘월간 CEO’의 기사를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다. 당시 삼성전자 등기이사의 1인당 평균 연봉은 89억7000만원이었기 때문. 국내 100대 상장기업 등기이사의 평균연봉(4억4140만원)이 직원 평균연봉(4420만원)의 9.9배 수준이지만, 삼성전자는 125.8배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등기이사가 받는 보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스톡옵션은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들을 수백억 원대의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성과 우수자 교육도 포상의 한 방법
삼성은 ‘임원으로 승진해 첫 월급을 받으면 한동안 정신이 멍한 상태’가 될 정도로 임원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지급한다. 이런 보상은 임원에게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인정돼 상을 받거나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으면 깜짝 놀랄 만큼의 포상이 주어진다. 특히 삼성에서는 교육도 포상의 한 방법이다. 교육은 성과부진자가 아니라 성과우수자의 몫이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시 승진과 보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승진과 교육 등 삼성의 보상은 철저히 후보상 성격이 강하다. 가령 삼성은 해마다 200~300명을 외국에 연수시키는 해외지역전문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수활동비로 기본연봉 외에 1인당 1년에 1억원 안팎의 지원을 하는 이 제도의 수혜자들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직원들이다. 삼성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인 삼성MBA제도나 삼성전자공과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성과와 보상의 인재양성 시스템, 이를 뒷받침하는 엄격한 평가와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삼성의 오늘을 만들어놓았고 삼성 임직원에 대한 재계의 평가를 바꿔놓았다. 삼성을 이끌고 있는 삼성의 CEO들은 모두 이 같은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성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