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피라미드와 피라미드를 지키는 이집트 경찰의 낙타.
피라미드를 직접 본 많은 사람들은 “무척 실망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피라미드에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베르사유궁전 같은 화려함? 아니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만큼의 거대한 높이?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 아직 ‘문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방법으로 돌을 하늘 높이 쌓아 만든 피라미드가 있었다. 450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자리에 건재한 채 서 있고, 그럼으로써 오늘 내가 4500년의 역사를 실감하며 그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럽지 않은가.
카이로 남서쪽에 위치한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눈부신 태양 아래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피라미드는 내게 4500년 전에도 이렇게 위대한 문명이 존재했다고, 너희들의 문명이 최고가 아니라고 귀가 먹먹하도록 소리쳤다.
나는 그 마력에 이끌려 잠시 정신을 놓고 서 있었다.
“혼자예요? 그룹이에요?”
“혼잔데요.”
아차, 실수를 했다. 혼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찰거머리 같은 녀석이 나타났다. 피라미드에서 사기꾼에게 걸려들어 여행 기분을 망쳐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택시도 타지 않고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힘들게 찾아왔건만,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관리소 직원 행세를 하는 ‘삐끼’가 죽자고 따라붙었다.
“우리랑 한 팀이에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구경하는 관광객들.
어지자 다시 금세 옆에 붙어 선다. “우리랑 가족이에요.” 이번에는 한국인 가족이 나서주어 간신히 녀석을 떼어놓았다.
피라미드의 감동을 망치게 하는 건 바로 이런 삐끼 녀석들이다. 피라미드의 최강적 삐끼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하고 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은 더 지독했다. 불쑥 나타나 관리소 직원 행세를 하며 티켓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낙타투어를 소개해주겠다며 들러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이집트 꼬마들과 함께(가운데가 필자, 왼쪽 사진). 카이로의 중심 타흐릴 광장.
관광객 등치는 ‘삐끼’와 관광객 도와주는 ‘선한 목자’
순전히 여행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집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에게 사기를 치려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일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관광객을 도와주려는 사람이다. 전자에게 크게 마음을 상해 서둘러 이집트를 떠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이런 불쾌한 경험을 싹 잊게 해주는 후자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나의 이집트 여행은 어딜 가도 늘 감동이 가득했다.
삐끼에게 시달리던 필자를 불쌍히 여겨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해준 이집트 경찰.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여행책자를 펼쳤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내게 피라미드에 가냐고 묻더니 운전사에게 큰 소리로 뭐라고 말했다. 아마도 내가 피라미드에 가니 잘 내려달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옆 좌석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역시 내 여행책자를 흘끗 보더니 운전사에게 뭔가를 열심히 얘기했고, 운전사의 확답을 듣고서야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다시 옆사람이 바뀌었다. 그런데 그도 앞선 두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 가만 보니 이 버스는 피라미드로 가는 사람이 있을 때만 피라미드를 거쳐 가는 것 같았다. 옆 사람들은 혹시나 운전사가 피라미드를 그냥 지나칠까 염려돼 열심히 운전사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버스 안 승객들이 모두 나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어주기까지 했다. 버스 승객들은 모두 나를 보호하는 ‘선한 목자’ 같았다. 나는 그들의 지극한 보호를 받는 ‘어린양’이고. 어찌 이리 고맙고 정감 넘치는 사람들이 있을꼬.
피라미드에서 껌딱지처럼 나를 따라붙던 삐끼 때문에 욕이라도 한번 내지르고 싶다가도,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기꺼이 보호자가 돼주었던 그들은 삐끼에게 시달리던 내 지친 영혼을 토닥토닥 다독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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