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이 만든 애니콜을 들고 포즈를 취한 구미공장 직원들.
5월15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 삼성전자 LCD단지를 찾았을 때 현장 안내를 맡은 현지 직원은 탕정단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생산직 여직원들이야말로 ‘세계 1위 달성의 일등공신’이라고 강조했다. 생산라인의 자동화가 고도로 이뤄져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완벽한 제품이 탄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LCD 점유율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삼성전자 LCD의 ‘생산 메카’인 이곳엔 사무실이 들어선 동을 기준으로 양쪽에 7-1라인과 7-2라인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자 LCD총괄의 1만5000명 임직원 중 생산직 여직원은 절반에 가까운 7000여 명. 이 중 탕정단지에서만 2500여 명의 여직원들이 365일 24시간 근무체제로 LCD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장의 힘을 강조하는 얘기는 5월23일 경북 구미시 구미공단 내 애니콜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도 들을 수 있었다.
“휴대전화 생산라인을 중국 등 외국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이곳에 근무하는 생산직 여직원들의 혼과 장인정신 때문입니다. 세계 최저의 불량률과 최고의 생산성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2500여 명 3교대 근무 … 1위 영광 ‘일등공신’
이날 안내를 맡은 직원은 애니콜 공장의 생산직 여직원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세계를 석권한 ‘애니콜 신화’를 만든 주인공은 명문대 출신도 석·박사 연구원도 아닌, 고졸 출신의 4300명 생산직 여직원들이라는 것이다.
LCD단지에 도착해 여느 직원들처럼 방진복에 방진모자, 방진마스크를 착용하고 7-1라인의 패널공장으로 들어섰다. LCD 생산과정은 크게 4단계, 즉 박막트랜지스터(TFT), 컬러프린터(CIF), 액정(LIC), 모듈 공정으로 나뉜다. 이 중 사람의 손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과정은 마지막 단계인 모듈 공정. 패널공장은 드라이브 IC 부착, 백라이트 조립 등의 모듈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거대한 기계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무척 앳돼 보이는 여직원들이 각자 맡은 일에 전념하고 있다. 탕정단지에서 가장 많은 여직원의 연령대는 스물하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1~2년 정도의 경력에 이른 이들이다. 하지만 이 ‘아가씨’들은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내 직원은 “화장을 안 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여직원들의 애칭이 청정미인이다”라고 말했다. 제품에 아주 작은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공장 내부는 철저하게 청정지역으로 유지·관리된다. 화장은 ‘절대 금물’. 패널공장에서 만난 이민주(21) 양은 “한창 멋 부릴 나이지만, 화장을 안 하니까 오히려 더 편하고 피부도 좋아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구미공단 내 애니콜 공장의 자랑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 공장 한쪽 벽에 붙은 ‘tact time(대당 생산시간) 현황표’는 생산직 여직원들이 이룩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3초(1998년)→18초(2000년)→11초(2002년)→5초(2005년)’.
8년 전에는 한 대를 만드는 데 23초가 걸렸지만 지금은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당 생산시간 5초 공장은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정보통신총괄 무산제조그룹장 정영 부장은 “5초 이하로 낮추는 것은 막대한 시설 투자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고, 앞으로는 투입 인원을 조정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탕정단지에서 근무하는 박미경 씨는 “세계 최고 제품 생산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마침 확습활동을 하고 있던 ‘기종변경 천하’팀 박수정 양은 “프로팀 활동을 통해 배운 지식은 업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동이 끝난 후 회사 지원으로 생맥줏집 등에서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좋다”고 자랑했다.
파생 모델까지 합치면 2000여 종이나 되기 때문에 기종 변경에 얼마나 빨리 대응하느냐가 생산성 향상에 직결된다.‘기종변경 천하’팀의 목표는 현재의 5분에서 2.5분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회사 측은 직원들의 학습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사내 캠퍼스(프로 캠퍼스)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 대학과 협력, 사내에 전문대와 정규대학, 대학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강의장 제공 및 전반적인 커리큘럼 조정을 담당하고, 학비는 직원 부담이다. “입사 6년 만에 한 손엔 대학 졸업장, 다른 한 손엔 1억원이 든 예금통장을 거머쥔 ‘똑순이’ 여직원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회사 측은 여직원들의 이런 노력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구미공단 내 애니콜 공장 생산라인 한쪽 벽에는 직원들이 각자의 얼굴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을 붙여놓았다.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제조팀 박균택 차장은 “정과 인간미 넘치는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내 손으로 명품 생산 큰 보람과 자부심”
올해 초 양산에 들어간 탕정 LCD단지 7-2라인 직원들이 지난해 11월 초 시생산을 축하하고 있다.
하지만 테스팅 업무는 무척 고된 일. 40초 동안 1개 제품을 검사하는데, 이 짧은 시간에 모두 26가지 그림을 LCD 화면에 비춰보아야 한다. 30~50cm의 근접거리에서 먼저 확인한 다음 최종적으로는 1m 거리에서 이상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 박미경 씨는 “업무가 끝나면 녹초가 되곤 하지만 그래도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제품의 이상 유무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소임이 제 눈과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우리 제품 하나하나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껴요.”
애니콜 공장에서도 완제품을 마지막으로 검사하는 것은 생산직 여직원의 몫. 휴대전화 두 대를 손에 들고 키판을 두드리고 액정화면의 색감, 카메라 모드를 체크하면서 가느다란 흠집 하나 그냥 보내지 않는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사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신의 손’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LCD 생산의 마지막 단계인 테스팅 공정. 여직원들의 세심하고 정확한 판단이 삼성전자 LCD 품질을 좌우한다.
‘즐거운 일터 만들기’ 생산성 향상
여직원들은 4조 3교대로 8시간씩 엿새 동안 근무하고 이틀을 쉰다. 거의 대부분이 공장 옆에 있는 아파트형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한다. 김미옥(21) 양은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 때문에 힘들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비슷한 또래 친구, 언니, 동생들과 어울려 지내는 기숙사 생활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5월4일 탕정단지에서는 레드카펫과 리무진까지 등장한 ‘화려한’ 영화제가 열렸다. 사내 축제의 일환으로 여직원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들로 꾸며진 영화제가 개최돼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리무진을 타고 레드카펫을 밟는 이벤트가 벌어진 것. 이밖에도 탕정단지에서는 각종 행사가 자주 열린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여직원들이 만나길 희망하는 연예인들도 자주 초청된다. 요가, 헬스, 재즈댄스, 테디베어 만들기 등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다. 아산 지역 고아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봉사활동을 하는 여직원들도 있다. 이는 모두 즐거운 일터 만들기의 일환으로 ‘GWP(Great Work Place)’ 차원에서 회사가 적극 지원·장려하는 행사들이다. 송철규 대리는 “단순히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닌 곳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좋은 환경에서 마음 편하고 즐겁게 일해야 불량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에서도 GWP는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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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미인들은 ‘똑순이’들이다. 매달 집으로 돈을 부치고도 1년에 1000만원 넘게 저축하는 여직원이 적지 않다는 후문. 돈을 모아 사업을 하는 게 꿈인 사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인 사람 등 장래 희망도 다양하다. 7년을 근무한 뒤 지난해 퇴사한 한 여직원은 탕정단지 부근에 프랜차이즈 횟집을 열었다고 한다. 기숙사에는 비업무 시간 짬짬이 대입 시험을 공부하는 여직원도 많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며 진급의 꿈을 키우는 여직원도 크게 늘었다. 박미경 씨는 “생산직 여직원도 대리, 과장으로의 진급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는 게 꿈”이라며 웃어 보였다.
“가끔씩 ‘친구들처럼 대학 다니고 싶다’고 푸념하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도 네 나이 땐 그랬지만 지금은 생각이 전혀 달라’라고 충고해줘요. 대학을 졸업한 고향 친구들이 ‘세계 일류기업에 다닌다’며 오히려 저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세계 일류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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