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사장 인근에는 청력장애가 시작되는 80dB 이상의 소음이 나기도 한다. 고속도로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소음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크게 늘었다(작은 사진).
서울의 한 재건축아파트 공사현장 건너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5) 씨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공사가 시작된 5개월 전부터 공사장에서 나오는 소음과 먼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터파기(땅속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건물 지을 자리를 파는 것) 작업을 한다고 덤프트럭이 하루에 수십 대씩 소음을 내가며 오가더니 콘크리트 작업이 진행되는 요즘에는 레미콘 차량이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김 씨는 “건설사 직원들에게 수차례 공사 좀 조용 조용히 하라고 요구했지만 ‘금방 끝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나아지는 게 없다”며 답답해했다.
‘소음피해’가 늘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 등 각종 공사가 쉴 새 없이 벌어지고 고속도로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면서 소음에 노출된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
1991년 설립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올해 3월 말까지 처리한 1443건의 사건 중 소음·진동 피해가 1244건으로 86%를 차지한다. 2005년 조정위가 처리한 소음·진동 피해 사건은 151건으로 2000년(49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으며, 특히 소음피해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발파작업 수준의 80dB 웃도는 경우도
가장 흔한 소음피해 유형은 공사장 소음이다. 소음피해 사건 10건 중 9건이 공사장 소음에 달할 정도다. 공사장 소음은 생각 외로 심각하다. 최근 조정위가 주민 331명에게 2972만원을 배상하라고 재정 결정을 내린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장의 경우, 덤프트럭과 레미콘트럭이 오가면서 발생한 소음이 최고 87데시벨(dB)에 달했다. 이는 발파작업 소음도인 80dB보다 높은 수준이다. 80dB은 지하철이 역 안으로 들어올 때 플랫폼에 서서 듣게 되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 조정위 김정우 심사관은 “소음 전문가들은 소음이 80dB에 이르면 청력장애가 시작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사장 소음의 법적 기준치는 65dB(보통 대화를 나누는 소리인 60dB과 전화벨 소리인 70dB의 중간치) 이하다. 하지만 조정위는 법적 기준치 이하의 소음피해에 대해서도 배상해주라고 조정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60~70dB이 그다지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3월 인천 남구 주안6동의 ‘더 월드 스테이트’ 재건축아파트 공사장 주변 단독주택 주민 119명은 조정위로부터 정신적 피해배상금 2100만원의 재정 결정을 받아냈다. 건설사는 이 같은 조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건설사인 풍림산업 관계자는 “배상 금액이 억 단위라면 경영상 큰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비교적 소액이라 합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음피해와 관련해 당사자 간에 합의가 성사되려면 피해금액의 규모가 관건이다. 조정위 임성재 과장은 “1인당 배상액이 수십 만원 수준이라도 피해자가 수백 명에 달할 경우 건설사는 부도날 처지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도로 소음피해 분쟁 땐 합의 쉽지 않아
공사장 소음피해는 조정위를 통해 ‘비교적’ 쉽게 해결되는 편이라면, 소음피해 유형의 10%에 해당하는 도로 소음피해는 분쟁 해결 양상이 다소 복잡하다. 경기 용인시, 하남시, 경남 구미시 등 고속도로 인근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차량 소음 때문에 한여름 밤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나 건설사와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는 서로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도로 소음 사건은 조정위로부터 재정 결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민사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높다.
경부고속도로 대구-구미 간 구간과 불과 25~40m 떨어진 구미시 사곡동 B아파트에 거주하는 박준영(32) 씨는 “여름철 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잠자리에 누우면 마치 TV 볼륨을 아주 크게 틀어놓은 것 같은 시끄러운 차량 소음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맨꼭대기인 17층 박 씨 집은 야간소음이 무려 78dB까지 나온다. 박 씨를 비롯한 이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4월 조정위로부터 1인당 50만원의 재정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도공 측과 배상금은 받지 않고 방음시설을 확충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수년에 걸쳐 민사소송을 벌이더라도 도공이나 건설사를 상대로 승소하기 어려울 뿐더러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소음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합의를 택한 것이다. 박 씨는 “그나마 아파트 건설 승인이 도공의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 승인보다 며칠이라도 빨리 나왔기 때문에 도공이 방음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우리 아파트의 경우는 원만하게 해결된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박 씨 말처럼 도로 소음피해 주민들 가운데 많은 수가 원만한 해결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경기 용인시 H아파트 주민들이 제기한 고속도로 소음피해 관련 소송에 대해 주민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도공은 고속도로가 아파트보다 먼저 건설됐기 때문에 책임을 피했고, 건설사는 5층 이하로만 소음 규제를 하는 건교부 규정을 지켰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면했다. 5년에 걸친 주민들의 소음 분쟁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주민 측 변호를 맡은 조기민 변호사는 “실질적인 피해가 있음에도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소음피해가 시정되지 않은 무척 아쉬운 판결이었다”고 평했다.
현재 도로 소음 분쟁과 관련해 모두 9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 도공의 한 관계자는 “고속도로가 건설된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의 소음피해는 아파트 시행사와 건설사,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사항이기 때문에 조정위 재정 결정에 승복할 수 없어 소송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도로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5층 평균 소음도가 65dB 미만만 유지하면 된다는 건설교통부의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현실적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 이 규정은 저층 아파트 건축이 일반적이던 1986년에 제정된 것. 임성재 과장은 “도로 소음피해 주민들은 대부분 6층 이상에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들”이라며 “현실에 맞게 규정을 개정한 뒤 아파트 건축 단계에서부터 도로 소음을 차단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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