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마라도나가 하프라인부터 치고 올라가 신기(神技)의 드리블로 잉글랜드 수비진을 유린하며 넣은 골은 월드컵 최고의 골로 꼽힌다. 그때 어느 방송 해설자가 한 말은 마라도나가 왜 위대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축구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깬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둘의 가족이 얽히는 것이다. 나는 결혼의 개념을 깬 최초의 여자와 같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사는 게 참 힘들다.”
“일부일처제 채택 겨우 43곳뿐”
축구와 결혼이 절묘하게 얽혀 있는 소설. 읽다가 몇 번이나 ‘끅끅~~’ 하고 웃음을 삼켜야 하는 소설(지하철 같은 데서 읽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참 딱한 남자 덕훈과 여우 같은 여자 인아가 등장하는 소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남자와 결혼한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두 남편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설. 박현욱(38)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그런 소설이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기 짝이 없는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했으니 어쩌면 좋아요~” 하는 보통남자 덕훈의 하소연을 담고 있다. 덕훈의 아내 인아는 덕훈과 결혼생활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남자 재경과 결혼한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일처다부제, ‘폴리안드리’를 선택한 것이다. 인아는 앙큼하게도 주중에는 새 남편 재경과, 주말에는 원래 남편 덕훈과 살림을 계속한다. “이 상태가 싫으면 이혼해도 좋다”고 덕훈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지만, 덕훈과 함께 있는 동안은 요리 잘하고 살림 잘하고 밤에도 끝내주며(!) 애교가 철철 넘쳐흐르니 덕훈은 도저히 그녀를 버릴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떡하라고!
이렇게나 도발적인 소설을 쓴 작가는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일까 하고 잔뜩 기대하면서 인터뷰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 씨는 조용하고 말수도 적은, 아주 진중한 남자다.
“결혼제도의 비합리성을 비판하고 싶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의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것이에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생활을 한다는 설정 자체는 낯설지 모르지만, 여기서 남자와 여자를 바꾸기만 하면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시작부터가 황당하고 비현실적인데도 ‘아내가 결혼했다’는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혼제도에 대한 치밀한 조사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을 여럿 거느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라고 묻는 덕훈에게 인아는 바로 “폴리안드리로 살아가는 종족들이 여럿 있어. 티베트에도, 인도에도, 아프리카에도 있어”라고 확실한 근거를 대서 덕훈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어떻게 사냐”는 덕훈의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항변은 “전 세계의 인간사회 238곳 중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일한 결혼제도로 채택한 사회는 겨우 43곳뿐이야”라는 인아의 반박에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소설은 특이한 서브 플롯을 갖고 있다. 인아와 덕훈, 그리고 인아의 두 번째 남편 재경은 모두 보통이 넘는 축구광이다. 인아는 FC바르셀로나, 그리고 덕훈은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다. 세 사람의 기이한 결혼관계는 축구라는 공통분모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소설에는 지단, 베컴, 피구, 호나우두 등 유명한 축구선수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끝도 없이 전개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인생의 모든 법칙이 다 축구장 안에 숨어 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까지 생겨난다. 작가는 ‘아주 대단하지는 않은, 보통 정도의 축구 마니아’란다. 그러나 축구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과거에는 호나우두가 정말 잘했어요. 미드필드에서부터 치고 올라가서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는 드물죠. 호나우두가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호나우디뉴가 워낙 잘하더군요. 완전히 물이 올랐어요. 베컴요? 베컴은 과대평가된 선수가 절대 아니에요. 프리킥이나 자로 잰 듯한 패스 말고도 베컴은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 있는 선수거든요.”
다른 남편하고 사는 아내 챙기느라 죽도록 몸고생, 마음고생 하는 덕훈이 불쌍하게도 인아는 끝까지 이중결혼을 고집한다. 소설은 “이대로는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드니 우리 셋이서 뉴질랜드로 이민 가자”고 조르는 인아의 말에 덕훈이 이민을 갈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아니, 덕훈이가 너무 딱하잖아요. 이왕이면 덕훈이와 인아가 잘 되는 걸로 끝을 내주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작가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결말은 독자들 상상에 맡겨”
“이 소설은 팬터지예요. 팬터지가 현실적으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인아가 덕훈에게 돌아가면 소설은 그냥 통속이 돼버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생 끝에 다 잘 풀려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사실 인아의 이중결혼이 끝까지 잘 될지는 미지수예요. 미국의 한 통계에서도 중혼이 5년 이상 유지되는 경우는 7%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러니 어떤 확실한 결말을 내주기보다는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긴 거지요.”
그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 소설은 팬터지다’라고 단언한다. 작가 자신도 덕훈 같은 결혼생활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라고.
사실 기자는 조금 실망이었다. 소설의 주제나 스토리 전개, 그리고 문장 모두가 너무도 반짝반짝해서 그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작가를 기대했지만, 그는 발칙한 상상력이 넘치는 자신의 소설에 비하면 너무도 점잖은 사람이었다. 술이나 한잔 하면 말을 좀 술술 할까? “저는 주종 불문하고 술은 딱 한 잔밖에 못해요.” 아이고, 아무래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기다리기보다는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새로운 소설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소설가로 등단한 지 6년째, 대학(연세대 사회학과)을 졸업한 뒤 ‘공부도 못하겠고 일도 안 돼서 글밖에 쓸 게 없었다’는 박현욱은 이번 소설을 통해 시쳇말로 ‘떴다’. 이 소설로 제2회 세계문학상에 당선되어 1억원의 상금을 받았고, 소설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요즘 대형서점의 한국 소설 베스트셀러 랭킹 1, 2위를 오르내린다.
“상금이 1억원이나 되는 상을 타서 신이 나긴 했지만 상이 문학적 성취를 증명하는 건 아니잖아요. 운이 좀 좋았던 거죠. 이번 수상보다 등단했을 때가 더 좋았고, 그보다는 그 전해에 500매쯤 되는 소설을 처음 썼을 때가 훨씬 더 좋았어요.”
아직은 소설 쓰기가 자신 없다지만, 쓰는 일이 즐거울 때보다 괴로울 때가 더 많다지만 아무래도 그는 천생 소설가인 것 같다.
‘축구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깬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둘의 가족이 얽히는 것이다. 나는 결혼의 개념을 깬 최초의 여자와 같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사는 게 참 힘들다.”
“일부일처제 채택 겨우 43곳뿐”
축구와 결혼이 절묘하게 얽혀 있는 소설. 읽다가 몇 번이나 ‘끅끅~~’ 하고 웃음을 삼켜야 하는 소설(지하철 같은 데서 읽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참 딱한 남자 덕훈과 여우 같은 여자 인아가 등장하는 소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남자와 결혼한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두 남편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설. 박현욱(38)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그런 소설이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기 짝이 없는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또 결혼했으니 어쩌면 좋아요~” 하는 보통남자 덕훈의 하소연을 담고 있다. 덕훈의 아내 인아는 덕훈과 결혼생활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남자 재경과 결혼한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일처다부제, ‘폴리안드리’를 선택한 것이다. 인아는 앙큼하게도 주중에는 새 남편 재경과, 주말에는 원래 남편 덕훈과 살림을 계속한다. “이 상태가 싫으면 이혼해도 좋다”고 덕훈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지만, 덕훈과 함께 있는 동안은 요리 잘하고 살림 잘하고 밤에도 끝내주며(!) 애교가 철철 넘쳐흐르니 덕훈은 도저히 그녀를 버릴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떡하라고!
이렇게나 도발적인 소설을 쓴 작가는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일까 하고 잔뜩 기대하면서 인터뷰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 씨는 조용하고 말수도 적은, 아주 진중한 남자다.
“결혼제도의 비합리성을 비판하고 싶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의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것이에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생활을 한다는 설정 자체는 낯설지 모르지만, 여기서 남자와 여자를 바꾸기만 하면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시작부터가 황당하고 비현실적인데도 ‘아내가 결혼했다’는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혼제도에 대한 치밀한 조사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을 여럿 거느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라고 묻는 덕훈에게 인아는 바로 “폴리안드리로 살아가는 종족들이 여럿 있어. 티베트에도, 인도에도, 아프리카에도 있어”라고 확실한 근거를 대서 덕훈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어떻게 사냐”는 덕훈의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항변은 “전 세계의 인간사회 238곳 중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일한 결혼제도로 채택한 사회는 겨우 43곳뿐이야”라는 인아의 반박에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소설은 특이한 서브 플롯을 갖고 있다. 인아와 덕훈, 그리고 인아의 두 번째 남편 재경은 모두 보통이 넘는 축구광이다. 인아는 FC바르셀로나, 그리고 덕훈은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다. 세 사람의 기이한 결혼관계는 축구라는 공통분모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소설에는 지단, 베컴, 피구, 호나우두 등 유명한 축구선수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끝도 없이 전개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인생의 모든 법칙이 다 축구장 안에 숨어 있구나 하는 새로운 깨달음(!)까지 생겨난다. 작가는 ‘아주 대단하지는 않은, 보통 정도의 축구 마니아’란다. 그러나 축구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과거에는 호나우두가 정말 잘했어요. 미드필드에서부터 치고 올라가서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는 드물죠. 호나우두가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호나우디뉴가 워낙 잘하더군요. 완전히 물이 올랐어요. 베컴요? 베컴은 과대평가된 선수가 절대 아니에요. 프리킥이나 자로 잰 듯한 패스 말고도 베컴은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이 있는 선수거든요.”
다른 남편하고 사는 아내 챙기느라 죽도록 몸고생, 마음고생 하는 덕훈이 불쌍하게도 인아는 끝까지 이중결혼을 고집한다. 소설은 “이대로는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드니 우리 셋이서 뉴질랜드로 이민 가자”고 조르는 인아의 말에 덕훈이 이민을 갈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아니, 덕훈이가 너무 딱하잖아요. 이왕이면 덕훈이와 인아가 잘 되는 걸로 끝을 내주지 그러셨어요.” 그러자 작가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결말은 독자들 상상에 맡겨”
“이 소설은 팬터지예요. 팬터지가 현실적으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인아가 덕훈에게 돌아가면 소설은 그냥 통속이 돼버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생 끝에 다 잘 풀려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사실 인아의 이중결혼이 끝까지 잘 될지는 미지수예요. 미국의 한 통계에서도 중혼이 5년 이상 유지되는 경우는 7%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러니 어떤 확실한 결말을 내주기보다는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긴 거지요.”
그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 소설은 팬터지다’라고 단언한다. 작가 자신도 덕훈 같은 결혼생활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라고.
사실 기자는 조금 실망이었다. 소설의 주제나 스토리 전개, 그리고 문장 모두가 너무도 반짝반짝해서 그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작가를 기대했지만, 그는 발칙한 상상력이 넘치는 자신의 소설에 비하면 너무도 점잖은 사람이었다. 술이나 한잔 하면 말을 좀 술술 할까? “저는 주종 불문하고 술은 딱 한 잔밖에 못해요.” 아이고, 아무래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기다리기보다는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새로운 소설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소설가로 등단한 지 6년째, 대학(연세대 사회학과)을 졸업한 뒤 ‘공부도 못하겠고 일도 안 돼서 글밖에 쓸 게 없었다’는 박현욱은 이번 소설을 통해 시쳇말로 ‘떴다’. 이 소설로 제2회 세계문학상에 당선되어 1억원의 상금을 받았고, 소설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요즘 대형서점의 한국 소설 베스트셀러 랭킹 1, 2위를 오르내린다.
“상금이 1억원이나 되는 상을 타서 신이 나긴 했지만 상이 문학적 성취를 증명하는 건 아니잖아요. 운이 좀 좋았던 거죠. 이번 수상보다 등단했을 때가 더 좋았고, 그보다는 그 전해에 500매쯤 되는 소설을 처음 썼을 때가 훨씬 더 좋았어요.”
아직은 소설 쓰기가 자신 없다지만, 쓰는 일이 즐거울 때보다 괴로울 때가 더 많다지만 아무래도 그는 천생 소설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