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한글 패턴 의상(왼쪽)과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전통의상 심사 1위를 한 이하늬.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과 서울은 ‘약한’ 국가이고 도시다. 최근 세계적 브랜드 조사기관인 미국의 얀홀트-GMI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브랜드는 25개국 중 20위에 그쳤다. 이는 브라질 멕시코 인도보다도 낮은 순위다. 또한 ‘세계도시 경쟁력 보고서2005~2006’에서 서울의 도시경쟁력은 27위에 불과했다(물론 1위는 미국 뉴욕이다). 세계는 한국과 서울을 실력만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무엇 때문일까.
한국과 서울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가졌는가. 한국 스타일, 서울 스타일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가지각색의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를 하나의 낱말로 정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요즘 유행하는 ‘뉴욕 스타일’이라는 신조어 자체가 모순과 한계를 갖는다 해도, 뉴욕은 이 신조어를 낳을 만큼 힘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뚜렷한 한국 스타일, 서울 스타일이 없는 게 못내 아쉽다.
한국식 목욕문화·음식 해외서 인기
세계인이 인식하는 ‘한국적인 것’은 종종 발견된다. 최근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4위를 한 이하늬는 귀국 인터뷰에서 “한국 전통의상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며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코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이상봉은 2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프레타포르테 파리 컬렉션’에서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한 구절로 디자인한 한글 패턴 의상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인이 운영하는 미국 뉴저지의 ‘킹 스파 사우나’는 최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을 정도로 미국인 사이에서도 인기다. 이 사우나를 찾는 미국인들은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땀을 흘리는 한국식 목욕문화에 익숙해졌고 좋아한다”고 말한다.
팥빙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스타벅스의 신제품 ‘레드빈 프라푸치노’.
그러나 세계가 한국적인 미(美)에 감탄하거나 외국 음식에 한국적인 맛을 응용한 제품이 큰 인기를 얻는 것을 ‘한국 스타일’로 부르기에는 좀 미진하다. 스타일이란 좀더 규모가 크고 영속적이며 해당 스타일을 향유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려대 현택수 교수(사회학)는 “스타일은 유행과 다르다”고 말한다. 즉 스타일은 패션이든 음악이든 드라마든 특정 장르의 유행보다 거시적인 개념이며, 개인에게 내재화된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것이어서 유행보다 주기가 길다.
물론 남과 구별되고 독특하며 세계인의 선망을 받는 ‘스타일’을 가진 국가나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캐나다 스타일’ ‘베이징 스타일’ ‘암스테르담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게다가 매일 세계 각 지역과 교류하며 다국적기업의 상품과 상점이 도처에 널린 국제도시-서울 같은-에서는 그 도시만의 특색이란 갈수록 옅어질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
그럼에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뉴욕 스타일과 도도하고 세련된 파리 스타일처럼 우리도 한국 스타일, 서울 스타일을 가졌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적인 것, 서울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다이내믹 코리아’로 상징되는 역동성, 빠른 적응과 전파, 유머, 왕성한 인터넷 동호회 문화, 소주 한잔에 친구가 되는 친밀함, 한글과 기호를 활용한 기상천외한 이모티콘…?
이러한 우리 스타일을 세계인에게 각인하는 전략에 대해 현택수 교수는 “초기 과정에서는 한국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내세우거나 강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보통사람들은 특정 문화를 목표로 삼아 찾아 즐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즐기는 문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현 교수는 “사람들은 대상의 출신, 국적은 몰라도 호기심과 새로움을 자극하며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찾는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 있는 한국 가전제품도 소비자들이 원산지를 모른 채 소비하고 있는 게 그 예”라고 말했다.
우리만의 차별화된 자랑거리 특화해야
현재 핀란드 헬싱키의 국립문화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가정-삶의 방식(Korean Home-The way of living)’전은 ‘어떻게 하면 한국 스타일을 세계인에게 인식시킬 것인가’에 대한 한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 안애경 씨(‘주간동아’ 588호 참조)는 한국 시골에 남아 있는 오래된 가옥의 창살을 핀란드 미술가들에게 보여줬고, 이들은 그것에 영감을 얻어 모던하면서도 기하학적으로 단아한 디자인의 익숙하지만 새로운 ‘한국적 창살’을 창조했다. 이 전시물은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핀란드에 한국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을 고조하는 데 기여했다. 안씨는 “한국의 것을 가져와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한국문화의 전파가 되진 않는다. 현재에 맞는 새로운 해석과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속에서 한국 스타일, 서울 스타일이 인정받으려면 먼저 우리부터 그것을 창조하고 즐겨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이, 서울이 세계를 감동시켰다’가 이벤트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잡기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