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추어탕’
“당신, 고등어국 먹어봤어? 앞집 부산댁이 끓여온 건데, 글쎄 고등어로 국을 끓였지 뭐야.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나?” 딱 이맘때, 초여름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호들갑을 떤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내에게는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였을 것이다. 그 비린 생선으로 국을 끓이다니. 난 일순 입 안에 침이 괴면서 “아니, 새댁이 고등어국을 다 끓일 줄 안단 말야?” 하면서 식탁으로 갔다. 내 예상이 맞았다. 고등어를 갈아서 우거지에 숙주 부추 고사리 들깻잎 파 등을 넣고 마늘 풋고추 산초로 향을 더한 경상도식 고등어국이었다. 이 얼마 만인가! 그 자리에서 한 그릇 다 비우고는 “아, 방아(배초향, 생선 비린내를 없애주고 향긋한 맛을 돋운다)가 없다. 그것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하며 아쉬움을 표하자, 이 말을 아내가 새댁에게 전한 모양이었다. 일주일 뒤쯤 새댁이 고등어국을 다시 보내며 이 말도 전해왔다. “경상도에서는 방아를 넣는 게 맞는데 서울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네요. 이나마 맛있게 드신다니 고맙습니다.”
까다로운 조리 과정 … 속 시원한 맛 최고
모처럼 고향 음식을 먹게 해주었으니 내가 인사를 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맛있게 먹어줘 고맙다니 몸둘 바를 몰랐다. 그 후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몇 차례 더 새댁의 고등어국을 먹을 수 있었다. 아내에게 요리법을 배우라고 닦달했건만 지금까지 고등어로는 조림과 구이밖에 못한다. 사실 고등어국은 싱싱한 고등어를 고르는 법부터 된장 푼 물에 살짝 익혀 믹서에 갈고 하는 조리 노하우가 쉽게 익혀지는 게 아니다. 자칫하면 비려서 먹지 못한다.
고등어국과 비슷한 음식이 추어탕과 장어탕이다. 고등어, 미꾸라지, 장어라는 주재료만 다를 뿐 조리과정이나 양념 만드는 법, 맛 포인트 등은 거의 같다. 즉 생선을 비린내 없이 곱게 갈아 탕으로 해서 먹는 음식이다. 산초나 계핏가루를 넣는 것도 같다.
내 고향에서는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이런 생선탕을 해먹었다. 땀이 나게 하고 속이 개운하게 풀리는 것이 보신탕보다 나은 음식으로 쳤다. 서울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추어탕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서울식 추탕’이 대세가 되면서 경상도식 맛은 찾기가 어렵다. 경상도식으로 낸다는 추어탕집에서도 “방아 없어요?” 하고 물으면 주인장부터 서빙 아주머니들까지 날 조선족쯤으로 여긴다.
그러니 고등어국을 식당에서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않는다. 아마 경상도에도 이런 국을 내는 식당은 없을 것이다. 집에서 흔히 해먹는 음식일지라도 고등어는 비리다는 선입견 때문에 손님들이 찾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메뉴에 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잘만 하면 추어탕보다도 나은데 말이다.
장어탕은 요즘 서울에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전라도식이 강세다. 특히 여수 특산물로 갯장어가 널리 알려지면서 여수식으로 해야 전통인 듯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수식은 장어를 토막째 끓이고 경상도에서는 갈아서 끓이는 점이 다르다. 그러니 여수식은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장어 살맛을 즐기는 재미가 있고, 경상도식은 살이 국물에 풀어져 구수하게 후루룩 들이켜는 맛이 있다.
내 처지에서는 어느 식이 더 맛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최 수도권에서 경상도식으로 끓이는 장어탕집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수 장어탕’이라고만 써 있어도 고향 음식처럼 반갑기만 하다.
여수식 갯장어 음식은 광화문의 ‘여수 한두레’가 꽤 괜찮은데 아쉽게도 장어탕은 하지 않는다. 그 밖에 여수식 장어탕을 내는 집은 여럿 있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추천하기가 어렵다. 맛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