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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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휘는 휴대전화 요금 “내리면 안 되겠니”

소비자들 “통신요금 인하 여력 충분” vs 이통사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6-20 1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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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 휘는 휴대전화 요금 “내리면 안 되겠니”

    YMCA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에서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요즘 주부 이효숙(48) 씨의 고민 중 하나는 높은 휴대전화 요금 부담이다. 석 달 전 모 통신업체로 번호이동을 한 둘째 딸(16)의 첫 달 휴대전화 요금이 무려 10만원 넘게 나온 것. ‘쭛쭛쭛요금제에 가입하면 음악을 무제한 내려받을 수 있다’는 대리점의 설명만 믿고, 무선 인터넷상에서 몇 차례 음악을 듣다가 생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달 네 식구의 총 휴대전화 요금은 27만원에 이르렀다.

    “요금체계는 엄청나게 복잡한데 업체에서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문제예요. 남편은 월평균 5만~6만원, 저는 3만~4만원의 휴대전화 요금을 내는데 이것도 비싸게 느껴집니다. SK텔레콤의 경우 같은 통신사 이용자끼리 통화해도 할인되는 서비스가 없잖아요.”

    지난해 말 휴대전화 가입자가 4000만명을 돌파하며 ‘1인 1휴대전화’ 시대가 열렸다. 휴대전화가 필수품이 된 요즘, 통신요금 부담은 이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휴대전화 요금 인하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요금 인하 요구를 주도하는 쪽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다. 서울 YMCA는 5월부터 ‘이동통신 4대 괴물 몰아내기 소비자 행동’을 시작했다. 문자메시지(SMS) 요금, 이동통신 가입비, 발신번호표시(CID), 이동전화 기본요금을 시급히 내려야 할 ‘4대 괴물’로 지목하고 인하 운동에 나선 것. 이 단체는 5월21일부터 서울 각 이동통신사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지원사격을 하고 나선 이는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 그는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우리가 쓰는 이동전화 요금 적절한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소비자단체들은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통신요금을 인하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한 반면, 이동통신업체들은 “한국의 휴대전화 요금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반박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논란이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통신업계 관계자와 소비자단체의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설득력 있을까.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한 이동통신업체와 소비자단체의 서로 다른 생각과 그 근거를 정리했다.

    국제 수준에서 정말 저렴한가

    “국내 이동통신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평균 요금에 못 미친다.”(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05’ 보고서 중)

    업계 관계자들이 ‘국내 이동통신 요금이 비싸다’는 공격을 받을 때 반대 논거로 가장 먼저 인용하는 통계치다.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0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평균 이동통신 요금(월평균 147.9분 통화, SMS 35건 이용 등 9가지 조건 적용)은 421.6달러로 OECD 회원국 평균인 556.4달러의 75.8%에 불과하다. 저렴한 순위로 따지면 30개국 중 8위다. 또 한국의 SMS 요금은 건당 30원으로 OECD 평균인 122.4원의 24.5%에 그친다.

    하지만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 이 통계수치의 이면을 지적한다.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는 “업체들이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05’ 보고서에서 인용한 요금 수치는 월평균 75통을 거는 중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통화 빈도가 낮은 가입자에게는 정작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제도가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허리 휘는 휴대전화 요금 “내리면 안 되겠니”
    “OECD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2003’ 보고서에서 OECD 회원국 중 이동통신 1위 사업자를 대상으로 통화 횟수가 월평균 25통인 사용자의 요금을 분석한 결과 SK텔레콤의 요금이 가장 비쌌다. 그런데 이후 이 부문 통계에서 SK텔레콤의 기본요금제가 빠졌다. ‘해외에서 통화 빈도가 낮은 가입자가 주로 이용하는 선불요금제와 후불제인 SK텔레콤의 기본요금제를 똑같이 비교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국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선불폰’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체계는 다량 이용자가 혜택을 누리고, 취약한 계층이 더 큰 부담을 껴안는 구조다.”

    국내 이동통신업체가 거둔 수익에 비해 요금이 비싸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김희수 연구원은 6월4일 국회 토론회에서 “국내 이통사의 분당 통화료는 OECD 평균에 비해 낮지만, 수익성에서 보면 OECD 회원국의 이동통신업체들보다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올 3월 기준으로 OECD 10개국 33개 사업자의 에비타 마진(EBITDA·이자비용과 법인세 및 감가상각비를 빼기 전 수익)을 비교한 결과 SK텔레콤은 11위, KTF는 15위를 차지하는 등 중간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원가보상률 논란

    휴대전화 요금 인하의 근거로 제시되는 원가보상률은 가장 큰 쟁점이다. 원가보상률이란 원가를 실제 매출액으로 나눈 것으로, 이 수치가 100% 이상이면 요금이 적정이윤을 포함한 원가보다 높다는 것을 뜻한다.

    김희정 의원은 “지난해 SK텔레콤, KTF, LG텔레콤의 2세대 원가보상률이 각각 123%, 105%, 102%로 모두 100%를 넘어 초과 이윤을 거뒀다”고 지적했다. 이동통신사업은 공공적 성격이 강하고, 사업자가 이미 충분한 가격인하 여력을 갖춘 만큼 요금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강하게 반박한다. SK텔레콤 이형희 상무는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부문에 추가 투자할 금액이 3조~4조원 수준인데 단순히 원가보상률로 요금 인하를 주장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업이 IT(정보기술) 산업의 선순환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데 요금을 인하할 경우 실업, 경제활성화 저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과 달리 KTF와 LG텔레콤은 좀더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KTF 김윤수 상무는 “3세대 서비스인 WCDMA에 투자한 비용까지 고려하면 현재 기업의 원가보상률은 100%가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발주자인 LG텔레콤의 경우 줄곧 원가보상률이 100%를 넘지 못하다 2005년부터 초과 이윤을 달성했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원가보상률은 해당연도 매출과 원가만 계산한 것이므로 그 수치가 100%를 넘는다고 누적된 투자비용을 모두 벌어들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업 측 논리에 대해 서울 YMCA 시민중계실 김희경 팀장은 “이동통신 요금은 현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내는 사용료이지 기업에 내는 투자금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가입비·발신번호표시제가 주범?

    “KTF를 이용하다 맨 처음 등록한 SK텔레콤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가입비를 내야 한대요.”

    직장인 김모(29) 씨는 한 통신사에 가입비를 두 번씩이나 내야 하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린다. 가입자에게 1회 3만원의 가입비를 부과하는 KTF, LG텔레콤과 달리 SK텔레콤은 소비자가 다시 등록할 때마다 가입비 5만5000원을 내도록 요구한다. 이 요금은 지난 7~8년간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

    허리 휘는 휴대전화 요금 “내리면 안 되겠니”

    KTF의 ‘쇼’ 광고(사진 위). SK텔레콤의 3G 서비스 광고.

    가입비란 전산등록비, 가입처리비 등 신규고객이 가입할 때 생기는 비용에 대한 요금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입비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등 19개국. SK텔레콤의 가입비는 이들 국가 사업자의 요금 중 세 번째로 비싸다(2005년 기준). “가입비에 거품이 낀 것 아니냐”는 질문에 SK텔레콤 측은 적극 반박했다.

    “가입비는 신규 고객이 서비스를 새로 이용하며 생기는 비용이다. 가입비를 받지 않는 업체는 신규 고객이 창출하는 비용을 다른 고객들이 나눠서 내게 한다. 하지만 비용을 발생시키는 사람이 요금을 부담하는 게 당연한 원칙 아닌가.”

    발신번호표시 요금도 논란거리 중 하나다. 지난해 1월부터 SK텔레콤은 정부 권고를 받아들여 1000원이던 발신번호표시 요금을 아예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KTF와 LG텔레콤은 발신번호 무료요금제를 내놓고 여기에 새로 가입한 사람에게만 무료 혜택을 줬다. 이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발신번호표시 요금을 내고 있다.

    김희경 YMCA 팀장은 “발신번호표시 요금은 휴대전화의 기본 기능에 불과한데 통신업체들이 마치 신규 서비스인 것처럼 속여 요금을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통신사 관계자는 “발신번호표시제의 효용가치가 있으니까 소비자들이 기꺼이 1000~2000원의 비용을 내고 사용하지 않았겠느냐”고 반응했다.

    통신 결합상품은 생색내기용?

    7월부터 판매되는 통신 결합상품이 휴대전화 요금 인하의 신호탄이 될까?

    SK텔레콤과 KTF 등 이동통신업체들은 유선전화, 무선전화,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TV, 휴대인터넷 등의 통신 서비스를 묶은 결합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휴대전화 요금을 10% 정도 낮춰주겠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 이형희 상무는 “7월부터 결합판매가 본격 시행되면 요금할인 움직임이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는 “결합상품이 상대적인 요금할인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이 상품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의 통신 소비를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부는 침체한 통신사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결합상품 판매를 허가했다. 기업은 마케팅으로 착시효과를 일으켜 수요를 창출하는 데 더 큰 목표가 있다. 결합상품을 사야 휴대전화 요금을 할인해준다는 조건이 오히려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

    자율적인 가격경쟁을 허용하라

    한국인들은 OECD 회원국 평균의 3배에 이르는 통신비를 지출하고 있다. 이동통신 비용의 가계비 부담도 나날이 늘어가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의 통신요금 규제정책 실패’를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사용하는 이동통신서비스의 경우 배타적인 주파수 할당에 의해 시장진입 자체가 제한되는 독과점 시장이다. 그로 인해 서비스 요금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최적가격을 형성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됐다. 따라서 정통부가 휴대전화 요금 결정에 일부 개입하게 된 것.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을 조정하려면 정통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의 이동통신업체 규제 정책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통신업계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한 요금경쟁을 확산시켜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의 설명이다.

    “정통부는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의 ‘망내 요금할인(같은 서비스 이용자끼리 통화를 대폭 할인해주는 제도)’을 금지했다. 지배적 사업자에게 고객이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망내 요금할인 수준을 지정할 순 있지만, 그 제도를 원천봉쇄할 필요는 없었다. 소비자를 이롭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시장을 왜곡하는 비대칭 규제정책에 앞장서온 정부가 이제 이동통신사의 경쟁을 촉진하는 데 힘써야 한다.”

    한편 비판의 초점이 돼온 정통부는 최근의 논란과 관련해 인위적인 요금 인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정통부 장석영 통신이용제도팀 팀장은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소매규제에서 도매규제로 전환하고 보조금 규제 완화 등 후속조치를 추진함으로써 시장자율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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