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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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은 ‘경험’과 연결해 인간 언어 이해 

[최인영의 멍냥대백과]‘산책은 즐겁다’처럼 자신의 감정과 단어를 함께 기억

  • 최인영 러브펫동물병원장

    입력2025-04-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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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려동물에게도 ‘올바른 양육’이 필요하다. 건강관리부터 문제 행동 교정까지 반려동물을 잘 기르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은 무궁무진하다. 반려동물행동의학 전문가인 최인영 수의사가 ‘멍냥이’ 양육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하품은 반려견이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 중 하나다. GettyImages

    하품은 반려견이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 중 하나다. GettyImages

    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반려견은 사람 언어를 최소 200단어 이상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둘 이상의 형태소가 합쳐진 복합어의 경우 개가 고릴라보다 더 많이 이해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반려견이 자기 이름과 “이리 와”하는 말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이 주장에 공감할 겁니다. “앉아” “기다려” 등 명령어를 잘 따르는 것은 물론, 평소 좋아하는 ‘산책’ ‘간식’ 같은 단어에 귀를 쫑긋하고 꼬리를 흔들 때도 많죠. 반대로 ‘목욕’ ‘청소’ 등 싫어하는 말이 들리면 이름을 불러도 어디엔가 숨어 모습을 보이지 않곤 하고요.

    단어·목소리 톤 일치 안 되면 혼란

    다만 반려견은 언어 이해력 면에서 사람과 약간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단어를 ‘의미’보다 ‘경험’과 연결한다는 점입니다. 반려견은 자신이 경험한 행복한 일을 단어와 연관해 기억하는 것에 능숙합니다. ‘산책은 즐겁다’ ‘간식은 맛있다’처럼 자신의 감정과 단어를 함께 기억하는 거죠. 그래서 좋아하는 단어를 들으면 눈을 반짝이면서 즉각적으로 기분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또 반려견은 단어 자체보다 말투, 뉘앙스 등 비언어적 표현에 더 가중치를 둡니다. 보호자의 목소리 톤이나 몸짓, 눈빛 등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거죠. 직장에서 퇴근한 보호자가 피곤해 보일 때 억지로 놀아달라고 떼쓰지 않고 보호자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또 가족 구성원끼리 언성을 높이고 다툴 때 한쪽에서 불안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거나 말리려는 듯 다가가 손, 얼굴을 핥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약 보호자가 반려견이 좋아하는 단어를 화내듯이 말하면 반려견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긍정적인 기억과 연결된 단어가 분명한데도 귀와 꼬리를 한껏 늘어뜨린 채 이리저리 눈치를 보죠.

    반려견이 이처럼 비언어적 표현에 민감한 이유는 갯과 동물의 조상인 늑대가 무리 생활을 하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늑대는 무리 속에서 서열과 역할을 확실히 부여받고, 그만큼 사회성이 높으며,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합니다. 짖거나 우는 소리뿐 아니라 표정, 꼬리 행동 등 이른바 ‘보디랭귀지(body language)’로 자기 의사를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데 능숙합니다. 마찬가지로 반려견도 다른 반려견,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과 비언어적 표현을 나눌 줄 압니다. 기쁨, 슬픔, 불안, 분노 등 감정을 스스로 표출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는 거죠.



    이는 곧 보호자가 반려견의 비언어적 표현을 이해하면 반려견의 의사와 감정을 더 잘 알아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반려견이 갑자기 큰 소리로 짖을 때 짖는 이유가 제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반려견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면 귀를 뒤로 젖히고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집어넣은 뒤 몸을 둥글게 말아 작아 보이게 하는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반대로 다른 반려견을 위협하거나 공격하려 할 때는 귀와 꼬리를 위로 치켜세우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죠. 각 상황에서 보호자는 반려견을 다르게 대해야 합니다. 전자의 경우 불안을 자아내는 대상을 없애거나 반려견이 안심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야 하죠. 후자일 때는 다른 반려견에 대한 공격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교육시켜야 합니다.

    비언어적 표현 따라 다른 대처 필요

    반려견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카밍 시그널은 반려견 스스로 진정하기 위해, 혹은 상대에게 적의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신호를 주는 겁니다. 형태는 아주 다양한데요. 처음 보는 반려견끼리는 인사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피하는 식으로 카밍 시그널을 주고받습니다. 반려견은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보호자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도 카밍 시그널로 자신의 긴장을 가라앉히는데요. 반복적으로 혓바닥을 내밀어 코를 핥는 행동이 그것입니다. 

    하품도 카밍 시그널의 일종입니다. 반려견이 하품을 연속으로 할 때는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반려견이 안절부절못할 때 보호자가 먼저 하품하는 시늉을 하면 반려견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반려견이 사람 언어를 이해하고, 보호자가 반려견의 감정 신호를 인지하면 반려견과 보호자는 더 깊이 교감하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약속된 칭찬과 보상의 말을 반복적으로 알려주고 강화함으로써 반려견의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보호자도 반려견의 비언어적 표현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최인영 수의사는…
    ‌2003년부터 수의사로 활동한 반려동물 행동학 전문가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러브펫동물병원 대표원장, 서울시수의사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어서 와 반려견은 처음이지?’가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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