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팀(왼쪽)과 금강팀 사무실 모습. 서정우 변호사(왼쪽)와 안희정씨가 양 캠프의 선거자금 모금의 핵심창구였다.
서울 여의도 금강빌딩 3층에 있었던 ‘사단법인 자치경영연구원’은 노무현 정권 탄생의 산실이다. 자치경영연구원이 입주해 있던 빌딩 이름에 빗대 노대통령의 측근그룹은 ‘금강팀’이라고 불렸다. 금강팀 사무실이 가장 북적거렸던 때는 지난해 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직전. 50여평 사무실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는데, 당시 한 관계자는 “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인원만 3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인건비만해도 한 달에 수천만원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자치경영연구원은 노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폐쇄됐다. 금강팀 구성원 대부분이 당 선거대책위원회로 흡수됐고, 대선 후 일부는 개혁국민정당 등 대선캠프의 위성단체로, 또 일부는 청와대로도 진입했다.
안희정 열린우리당 충남도지부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과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바로 금강팀의 핵심인사였다. 금강팀에서 안씨는 총무팀장 역할을 맡았다. 당내 경선을 시작으로 각종 선거에 드는 자금 마련이 그의 임무였다. 민주당 선대위로 흡수된 뒤로도 안씨는 선대위 정무팀장이라는 직함으로 선거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민주당 경선 직전 안씨는 노무현 캠프에 관해 취재하는 기자에게 “나와 이광재의 이름은 빼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캠프의 핵심인 두 사람이 소리 나지 않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주위의 관심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투였다. 하지만 안씨가 노캠프의 자금 담당이고, 이씨가 기획통이라는 사실은 정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불법과 합법 행동 소리 없이 ‘킹 메이커’ 역할
금강팀의 자금 담당이었지만 안씨는 오랫동안 가난한 대가족 가장처럼 고달픈 시절을 보내야 했다. 후보시절 노캠프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한 인사는 지난 여름 나라종금 비자금 사건으로 안씨가 검찰에 불려다닐 무렵,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노풍’이 일기 전까지 노캠프를 누가 눈여겨보기나 했나. 지지율은 5%도 안 되는데 딸린 식구들은 많지, 결국 안희정이가 총대 메고 여기저기 돈 구하러 다녔던 것 아닌가. 그 가운데 하나가 나라종금이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캠프 식구들 활동비 주고 밀린 월세 내며 근근이 버텨왔던 것이다.”
노캠프의 남루한 살림살이에 관한 증언은 또 있다. 민주당 경선 당시 노후보의 공보특보를 지냈다가 지금은 갈라선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12월11일 안희정, 이광재씨가 대검찰청에 소환된 것과 관련해 “광주 경선과 후보단일화, 대통령 당선 이후 등 노캠프에 세 번의 봄날이 왔다”며 노대통령 측근을 공격했다. 유대변인은 “기본적으로 ‘헝그리’한 노대통령 측근들이 그 봄날에 보인 행태를 옆에서 지켜봤다”며 “당시 월평균 100만원도 안 되는 활동비를 받았던 나로서는 개인적인 배신감이 끓어오른다”고도 말했다.
1998년 여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부국팀을 재건하기 위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대통령 자신도 돈 만드는 데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대선후보라는 사람이 당에 후원금도 한푼 안 갖다준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늘 쪼들렸지만 유대변인의 주장처럼 노캠프에도 돈 가뭄을 해결하는 ‘단비’가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12월13일 안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가 대기업 등으로부터 11억4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금액은 일부일 뿐 더 많은 돈이 금강팀으로 건네졌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데 금강팀의 사정을 아는 이들은 개연성이 높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조직 정치 폐해 이번 일로 끝장날 수 있나
실제 지난해 봄 ‘노풍’이 한창일 때 금강팀의 한 386인사는 “우리한테도 요즘 돈이 들어온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1년 11월, 금강팀은 전북 무주에서 민주당 대의원들을 초청해 1박2일 일정으로 단합대회를 열었는데 당시 행사비용으로 억대의 돈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을 앞두고는 노후보측에서 민주당에 특별당비 형식으로 돈을 전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대선 당시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지낸 이상수 의원은 “노대통령이 특별당비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 액수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대선 당시 자금관련 핵심실무자도 “특별당비라 하기엔 미미한 액수였다”고만 말했다. 가난했지만 노캠프도 필요에 따라 돈을 썼으며 정치자금 모금에도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이 ‘측근’이라고 칭했던 안희정씨가 그 역할을 맡았다. 안씨 외에 몇몇 인사들이 거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국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단체의 공식명칭은 ‘국회의원 이회창 후원회’다. 후원회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이 여의도 부국증권 빌딩이어서 부국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국회의원의 개인후원회였던 만큼 부국팀은 이 전 총재가 의원직을 사퇴한 지난해 11월 공식 해체됐다. 대신 부국팀의 기간조직은 한나라당의 직능국으로 흡수됐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국팀은 개인후원회를 넘어 수백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조달한 창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이 하늘을 찌를 무렵 부국팀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여평 남짓한 부국빌딩 후원회 사무실은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30만명을 돌파한 전국 후원회원 조직과 분야별 자문그룹을 관리하는 사조직 본부로 명실상부한 이후보의 또 다른 선거대책기구로 활동하고 있었다.
부국팀의 방장인 이회창 후원회 회장은 이정락 변호사. 부회장단에는 후원회 살림을 총괄하는 이흥주 특보를 비롯해 이충길 전 국가보훈처장(기획), 서정우 변호사(정책), 안동일 변호사(대외협력), 이수광 공인회계사(조직), 김영자씨(여성) 등이 활동해왔다.
회장, 부회장 외에 후원회 운영위원만 1000명 가까웠고, 700명 이상의 자문교수 그룹과 예비역 장성, 문화·예술계, 체육인, 언론인, 교육, 의료계 등 직능분야별 그룹이 물밑에서 이 후보를 도왔는데 그 면면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외교통일 분야는 정종욱 아주대 교수와 최영철 전 통일부총리 등이, 행정 분야는 안응모 전 내무, 김두희 전 법무, 윤동윤 전 체신 장관 등이, 정보통신과 IT 분야는 숭실대 신용태, 숙명여대 최종원, 고려대 강현국 교수 등 소장파들이 이후보의 자문에 응해왔다.
부국팀 산하 기구인 희망포럼에도 각계 전문가가 모였고 대학교수, 벤처기업 사장, 여론조사 전문가, 시민운동가 등 100여명이 모여 만든 북악포럼도 부국팀의 외곽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한나라당 대선기획단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30여개 이상의 소그룹이 세포조직처럼 구성돼, 각기 독자적인 모임을 갖고 각종 정책방향과 정세분석 문건을 이후보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부국팀은 이 전 총재의 집권 과정을 돕는 후원그룹이자 이 전 총재 집권 시 입각 예상자들이 모인 인재풀 역할도 맡은, 이른바 ‘정권 탈환 사령탑’이었다. 실제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부국팀에 속한 일부 인사들은 언론사에 자신의 이력이 담긴 자료를 보내며 “이후보 당선되면 잘 보도해달라”며 청탁을 넣기도 해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부국팀에서 자금모금 역할을 했던 이는 일단 서정우 변호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서변호사 외에도 2~3명의 부국팀 관계자가 불법자금 모금에 관여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부국팀은 자신의 명의로 지구당에 선거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대선을 치렀던 안영근 의원(열린우리당)은 “선거기간 중 부국팀 관계자로부터도 1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국팀은 단순히 돈을 모으기만 한 곳이 아니라 전략지역을 돌며 대선자금을 지원하는 역할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안희정과 서정우로 대표되는 금강팀과 부국팀의 핵심인사가 구속되면서 두 캠프의 역할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곳에서 모은 불법자금의 전모가 드러날 것인지도 관심사다. 과연 검찰은 진실의 문을 열 것인가. 아울러 사조직 정치의 폐해도 끝장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