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 지코 감독
2002년 월드컵 영광의 재현을 꿈꾸며 각각 한국과 일본의 지휘봉을 잡은 코엘류 감독(53), 지코 감독(50)의 올 한 해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저마다 취임 일성을 통해 월드컵 4강을 이룬 히딩크 감독과 일본의 첫 16강 진출을 일군 트루시에 감독의 업적을 이어 “명실상부한 강팀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세대교체 실패, 킬러 부족, 포백 수비 도입 실패 등 같은 고민에 빠져 여전히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코엘류 감독은 7승2무6패(35골10실)를 거뒀고, 지코 감독은 6승6무6패(16골15실)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외형상으론 평범한 성적 같지만 한국과 일본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체감 성적’은 바닥 그 자체다. 12월10일 일본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에서 벌어진 한·일전에서도 두 감독은 끝내 웃지 못했다. 우승을 거둔 코엘류 감독은 11대 10의 수적 우위에도 졸전을 펼쳤다는 비난을 받았고, 우승을 호언장담했던 지코 감독을 지켜보는 일본 언론들의 눈초리도 매섭기만 했다.
서로가 첫 승 제물
코엘류 감독과 지코 감독은 출발부터 비슷한 길을 걸었다. 데뷔전이었던 3월29일 콜롬비아전에서 득점 없이 무승부를 거둔 코엘류 감독은 4월16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지코 감독과 첫 맞대결을 펼쳤다. 그 당시 지코 감독은 데뷔전인 자메이카전에서 1대 1 무승부 이후 아르헨티나전 패배, 우루과이전 무승부 등 2무1패로 부진한 출발을 보이고 있었다.
코엘류 감독은 이날 일방적인 경기 운영에도 골을 터뜨리지 못하고 끝내 자살골까지 내주며 일본에 0대 1로 패했다. 취임 이후 6개월간 단 1승도 챙기지 못한 지코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1승의 의미를 자축했지만 일본 축구팬들은 경기 내용에서 한국에 끌려 다닌 ‘지코 재팬’의 실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코 감독의 첫 승 제물이 된 코엘류 감독은 한 달 뒤인 5월3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안정환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1대 0으로 승리하며 지코 감독에게 보기 좋게 앙갚음하며 첫 승을 챙겼다.
이후 남미 강호들과 대결을 펼친 양 감독은 역시 똑같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코엘류 감독은 우루과이(0대 2) 아르헨티나(0대 1)에 연패를 당하며 전반기를 마쳤고, 지코 감독은 아르헨티나에 1대 4로 대패를 당한 데 이어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파라과이전에서마저 0대 0으로 비기고 말았다.
코엘류 감독과 지코 감독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2006년 독일월드컵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구상이었다. 두 감독은 각각 조재진(22·광주 상무)과 오쿠보 요시토(21·세레소 오사카)를 새로운 킬러감으로 낙점하여 적극 육성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조재진은 잇단 A매치 출전에도 단 1골에 그쳤고, 오쿠보는 A매치 데뷔골조차 터뜨리지 못해 두 선수는 양 감독의 최대 딜레마가 됐다. 여기에다 믿었던 최용수(제프 이치하라)와 다카하라(함부르크) 등 기존 스트라이커들도 대표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1년 내내 극심한 골 가뭄을 부추겼다. ‘라틴 터치’로 요약되는 코엘류 감독의 전략은 포르투갈을 2000년 유럽선수권 4강에 올려놓은 4-2-3-1시스템을 기본으로 패스를 통한 조직력 극대화에 힘을 쏟았다면, 지코 감독은 조직보다 ‘개인’ ‘자율’ ‘창조성’에 중점을 둔 4-4-1-1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포백 수비 포기’라는 똑같은 결론에 이른다. 스리백으로 회귀한 양 감독은 다시 팀 재편에 나섰지만 황선홍·홍명보가 빠진 커다란 공백과 ‘황금의 4중주’라 불리는 나카무라(레지나) 나카타(파르마) 오노(페예노르트) 이나모토(풀햄) 등의 빈자리만 확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밀월은 끝났다
코엘류 감독은 10월 아시아의 약체인 베트남과 오만에 잇따라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사퇴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재신임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코엘류 감독이 과연 한국축구의 비전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해외파를 모두 불러들인 11월18일 불가리아전에서 1.5군을 상대하고도 0대 1로 패한 것은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지코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1승2패 이후 9월10일 세네갈전에서 졸전 끝에 0대 1로 패하자 일본 언론들은 저마다 “더 이상 지코 재팬은 언터처블이 아니다”며 성토에 나섰다. 1993년부터 일본 J리그의 역사를 만들며 일본 축구에 헌신해온 지코 감독에게 존경심과 애정을 보여왔던 일본 언론이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누가 최후에 웃을까
비슷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어온 코엘류 감독과 지코 감독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험난해보인다. 이들은 앞으로 뼈아픈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더 강한 팀을 만들어낼 비전을 마련해야만 한다. 2003년 한 해가 월드컵 이후 커다란 목표의식이 없는 ‘상시체제’였다면 내년은 월드컵 예선과 아시아 지존을 다투는 아시안컵 본선이 열리는 ‘비상체제’다.
코엘류 감독은 베트남 레바논 몰디브 등과 맞서 손쉽게 월드컵 1차예선을 통과한 후 2004년 7월 중국에서 일본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지코 감독은 한국을 격파한 오만, 인도, 싱가포르 등과 월드컵 1차예선을 펼치고 코엘류 감독과의 맞대결에 나선다.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지, 이들이 한·일 축구의 앞날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