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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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앤문 후폭풍에 누가 더 다칠까

盧 캠프 이어 한나라 4~5명 자금 제공 진술 확보 … 감세 청탁 수사 축소 의혹 확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12-18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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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앤문 후폭풍에 누가 더 다칠까

    12월4일 횡령 혐의로 구속된 문병욱 썬앤문 회장(왼쪽)과 문회장이 1억원을 건넨 이광재 전 대통령 국정상황실장.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1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난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구속)의 전방위 감세(減稅) 로비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문회장은 지난해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 당시 청와대 파견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P씨와 그의 형인 세무사 P씨 등의 소개로 손영래 당시 국세청장을 직접 만나 세금 감면을 청탁했을 뿐 아니라 이 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이 민주당 P의원을 만나 청탁을 시도하는 등 전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올 6월 서울지검 조사부의 썬앤문그룹 감세 청탁 수사가 부실 수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당시 서울지검 조사부는 손 전 청장이 이 사건에 개입됐다는 김 전 부회장의 진술을 확보한 후 손 전 청장을 극비리에 소환 조사하고도 손 전 청장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내사를 종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서울지검이 손 전 청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문회장의 감세 로비에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측이 개입된 사실을 확인하고 덮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물론 김 전 부회장 주변에서는 “김 전 부회장이 ‘손 전 청장에게 노무현 후보도 전화했다’고 떠들고 다녔으나 신빙성이 약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서울지검은 또 김 전 부회장으로부터 “이 전 실장에게 500만원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이 전 실장을 소환 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여전히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전 부회장은 문회장의 고소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 청와대 인사를 거론하면서 “나를 구속하면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다”고 검찰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 비리 특검 한나라당이 손해 본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안대희 검사장·이하 대검 중수부)는 12월4일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이 11월 초 썬앤문그룹과 관련해 수십억원대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수사를 의뢰해옴에 따라 수사에 착수해 혐의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문회장한테서 “지난해 대선 전이 전 실장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이어 이 전 실장을 소환 조사한 끝에 이 전 실장이 1억원을 노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열린우리당 충남도지부 창당 준비위원장(전 노무현 후보 캠프 정무팀장)에게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문회장은 또 이 전 실장 외에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제3자를 통해 2억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 전 대표는 “문회장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서 전 대표 외에 한나라당 의원 4∼5명에게도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쪽에서는 “이 가운데 일부 금액은 크지 않지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결과적으로 보면 노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을 통과시킨 한나라당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노대통령의 측근인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대선자금 비리에 관한 한 한나라당의 죄가 훨씬 무거운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검찰을 너무 막다른 길로 몰아 부메랑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문회장 사건과 관련해 가장 큰 의혹은 지난해 대선 당시 썬앤문그룹측이 노무현 캠프에 과연 1억원만 주었을까 하는 점이다. 문회장은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로 지난해 대선 과정에 노캠프 쪽 인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문회장은 또 노대통령이 투자한 생수회사 ㈜장수천의 서울 판매업체인 ㈜명수참물 이사를 역임하는 등 노대통령 쪽과 보통 이상의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김 전 부회장의 말은 신빙성이 약하다는 게 김 전 부회장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김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나 삼성측은 “김 전 부회장이 삼성생명 보험 모집인을 한 적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검찰 쪽에서도 “김 전 부회장은 문회장이 이 전 실장에게 1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가 95억원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썬앤문 후폭풍에 누가 더 다칠까

    12월14일 검찰에 구속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안희정씨.

    검찰이 문회장을 구속했을 때 불법 대선자금 불똥이 노대통령 주변으로 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문회장이 올 6월 서울지검에 구속되기 전부터 “지난해 대선 당시 노대통령측에 상당한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며 떠들고 다녔다는 얘기가 파다했기 때문. 일각에서는 “당시 청와대측이 문회장에게 입단속을 시켰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서울지검 조사부는 기본적으로 고소 고발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담당한다. 김 전 부회장의 농협 115억 사기대출 사건을 충실하게 조사했다. 조사부의 특성을 안다면 축소 수사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 4월 문회장과 김 전 부회장을 구속했던 소병철 서울지검 조사부장은 썬앤문그룹 축소 수사 의혹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도 “서울지검에서 수사를 제대로 못했다고 해서 축소 은폐로 몰아가면 곤란하다”며 서울지검 손을 들어주었다.

    서울지검 조사부 관계자들의 해명이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서울지검 조사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사부에 배당되는 사건이란 기본적으로 고소 고발인이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등 민사 사건과 비슷하다. 인지 사건을 담당하는 특수부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개입 의혹이 일었던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을 조사부에 맡겨놓았더니 다른 고소 고발 사건이 밀려 민원인들의 불만을 샀던 적도 있었다는 것.

    그러나 조사부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과연 서울지검이 수사 의지가 있었느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사부 사건이 밀린다고 판단하면 특수부로 재배당해 이 전 실장의 500만원 수수 의혹 등에 대해 전면 수사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검찰 주변에서는 “이 사건이 특수부로 배당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검찰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조사부에 그대로 방치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손 전 청장을 소환 조사하고도 무혐의 종결한 대목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당시 수사팀 관계자가 “손 전 청장을 비롯한 국세청 고위 관계자를 아무 근거 없이 소환했을 리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있어 수사팀 윗선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손 전 청장이 썬앤문그룹 감세 청탁 로비 사건의 핵심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썬앤문그룹에서 5000만원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 홍모씨는 서울지검 조사과정에서 “썬앤문그룹 세무조사를 맡자 손 전 청장이 전화로 ‘썬앤문그룹 세무조사 좀 살살 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지검이 P의원이나 청와대 파견 경찰관 P씨의 개입 혐의를 일부 확인하고도 소환 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물론 P의원은 이에 대해 “과거 대검에 함께 근무했던 수사관 출신의 법무사가 ‘식사나 하자’고 해서 나갔더니 김 전 부회장이 나와 있었다. 김 전 부회장이 ‘국세청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호소해 그 자리에서 국세청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김성래라는 사람의 호소를 한번 들어보라’고 했을 뿐이다. 그 뒤에 들었더니 국세청 간부는 김성래를 만나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고 해명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썬앤문 관련 의혹은 검찰뿐 아니라 청와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초 특검 출범 전까지 썬앤문그룹 관련 의혹을 수사한 후 관련 자료를 특검에 넘길 예정인 대검 중수부의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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