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 문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유미리, 현월, 수전 최, 이창래(왼쪽부터).
12월7일자 뉴욕타임스 ‘북 리뷰’에 한국계 작가인 수전 최(Susan Choi)의 소설 ‘미국 여성(American Woman)’이 ‘주목할 만한 소설’ 리스트에 올랐다. 지난 1년간 주목받았던 책들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이 리스트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앞서 10월 ‘북 리뷰’ 표지기사로 이 작품을 다루기도 했다. 이 책은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극좌 반정부단체에 납치됐던, 신문 재벌 허스트의 딸 패티 허스트와 납치범 일본계 웬디 요시무라라는 두 실존 여성의 삶을 그렸다. 이 책은 요즘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의 유명 영문학자였던 최재서의 친손녀인 수전 최는 아버지 최창 교수(인디애나 주립대 추상수학과)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일대학을 졸업했고, 코넬대학의 영문학부 강사를 거쳐 현재 ‘뉴요커’지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첫 장편 ‘외국인 학생(The Foreign Students)’은 1998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올해의 가장 좋은 소설 10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호평받는 또 다른 동포작가로 이창래(프린스턴 대학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사설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한국계 교포 2세인 헨리 박이 미국 주류 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고뇌를 그린 ‘네이티브 스피커’로 이창래는 헤밍웨이 재단상, 펜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고 미 문단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1999년에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가해자의 처지에서 다룬 두 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를 발표해 뉴요커가 그를 ‘40세 이하 대표적 미국작가 2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수전 최, 이창래, 유미리, 현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창래는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민 갔다. 예일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증권분석사로 일하던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세 번째 소설 ‘얼로프트(aloft)’를 완성했다. 앞선 두 권의 소설이 민족과 인종, 국적에서 비롯된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세 번째 소설은 한국 여성과 결혼한 60대 미국인이 아내와 사별한 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와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다. 이 책은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이며, 이미 아마존에서 예약 판매되고 있다.
이밖에 주목받고 있는 한인 2, 3세 작가들로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유미리(柳美里), 현월(玄月), 가네시로 가즈키, 중국 지린(吉林)의 박선석,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트로치 등이 손꼽힌다. 이들 젊은 동포 작가들의 특징은 모국에 대한 강한 연계의식을 갖고 작품활동을 했던 1세대들과 달리 한국과의 연관성이 옅거나 그것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산문화재단과 재외동포재단 등이 9월 마련한 ‘한민족 문학 포럼’.
지난 9월 한민족 문학포럼에 참가했던 입양아 출신의 아스트리드 트로치는 “내 작품들은 스웨덴 문학”이라며 “스웨덴 문학이든 한국 문학이든 중요한 것은 문학이 민족적 소속감보다 세계와 더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혈통임은 분명하지만 문학에서 민족성을 따지는 것은 또 다른 무엇인가에 대한 배척을 전제하기 때문에 문학의 가치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2세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모국으로부터의 이탈 경향은 너무나 뚜렷하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한국인들이 이 땅을 떠난 동포들에 대해 고의적인 무관심을 보여왔고, 동포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게 사실이다”며 “2세대는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데다 현지 국가의 국민으로 사는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이탈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교수는 따라서 “그동안 한국문학이 밖을 너무 등한시했다”며 “한국문학은 재외동포 문학을 거울 삼아 민족주의적 함몰을 해독하고 동포문학은 한국문학을 거울 삼아 탈민족주의적 탈주를 돌아보는 상호 균형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만날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재외동포 작가들을 껴안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문학의 해 기념 ‘한민족 문학인대회’를 필두로, 올 9월 ‘한민족 문학포럼’ 같은 대규모 행사도 열렸다.
“유목문학 미래의 미학적 이정표”
그러나 이런 행사들도 국가별 참가자 선정이나 해외동포 문학의 현황과 문제점 등을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단체의 입맛에 맞는 몇몇 작가들을 초청하거나 출판계가 상업주의적 관점에서 그들의 책을 번역 출간하는 정도가 이제까지의 동포문학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예지들은 꾸준히 동포문학을 소개해왔고, 일부에서는 재외동포문학선집 출판도 준비하고 있다.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는 최원식 교수의 ‘민족문학과 디아스포라’라는 글을 실었고, 문학수첩은 2003년 여름호부터 ‘한민족문화권의 새 지형도’라는 기획탐방물을 만들어 미주 한국문학, 재일본 조선인문학, 재중국 조선족문학, 재러시아 고려인문학 순으로 연재글을 싣고 있다.
문학수첩측은 “오늘날 인류 사회는 서로 다른 삶의 영역과 언어 영역이 지근 거리로 좁혀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와 같이 창작자와 창작언어 중심으로 영역을 판정하는 근시안적 방식은 다원적 세계화의 시대에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제 우리 문학은 여러 지역의 해외동포 문학, 또 그 나라의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2, 3세들의 문학을 감싸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 임헌영)에서는 지역과 세대별로 분류한 50여권 분량의 재외동포문학선집을 준비 중이다. 1차로 중국동포 작가들의 작품을 광복 이전과 이후로 나눠 두 권을 내년 초까지 내놓을 계획이다.
임헌영 회장은 동포문학을 ‘노마드(유목민) 문학’이라 규정하고 “노마드 시대의 문학은 고향 상실 혹은 망각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모국 거류자보다 더 강한 향수의 문학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변방지대에 존재하는 미래의 미학적 이정표”라면서 “문학선집은 동포문학을 한국문학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집 출간작업은 예산과 저작권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