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 재벌그룹의 이른바 ‘2인자’들이 줄줄이 검찰의 출국금지, 소환 및 조사대상이 되고 있다. 파죽지세로 뻗어가는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문이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등 4대 그룹은 물론 롯데, 금호, 한진, 한화, 효성 관계자들도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이들 2인자의 상당수는 대선자금 제공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자금 제공 여부와 돈 마련 방법 등을 결정했으며, 전달과정 자체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액수와 과정이 가장 먼저 공개된 SK의 경우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의 요구를 받은 손길승 회장이 김창근 ㈜SK 사장에게 자금 마련을 지시, 김사장이 직접 차를 몰아 현금을 전달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역시 최의원의 전화를 받은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윤모 전무는 이 사실을 이건희 회장의 ‘복심(腹心)’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이본부장은 다시 구조본 재무팀장인 김인주 부사장에게 돈 마련과 전달을 지시했다. 이에 김부사장은 이회창 후보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에게 채권 112억원을, 최의원에게 현금 40억원을 직접 전달했다.
50대 중·후반 … 샐러리맨으로 최고의 위치
LG그룹은 어떤가. 구본무 회장의 ‘오른팔’인 강유식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최돈웅 의원이 전화를 걸어 강압적 분위기로 자금을 요구해 이모 상무를 시켜 150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정우 변호사의 자금 요청 전화를 받은 최모 부사장은 이를 김동진 부회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현대차는 내부 협의를 거쳐 현대캐피탈이 마련한 100억원을 최부사장을 통해 서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위에 언급된 임원들은 모두 각 그룹의 2인자 또는 재무 및 대외협력 라인의 핵심 인사들이다. 롯데그룹의 경우도 사실상 구조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병일 호텔롯데 경영관리본부 사장과 신동인 호텔롯데 사장 등 그룹 핵심인사 2명이 자택 압수수색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금호그룹도 박삼구 회장과 함께 ‘2인자’인 오남수 전략경영본부장이 소환 조사를 받았다. 한진그룹 심이택 대한항공 총괄사장도 소환됐다. 이들 역시 그룹의 핵심 인사들이다.
그룹 내 2인자는 대개 구조조정본부장 또는 사실상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50대 중·후반의 실무 실세들이다. 이들은 총수의 ‘대리자’ ‘메신저’ ‘그림자’ ‘오른팔’ ‘해결사’ 등으로 불리며, 소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그룹 전체의 재무·전략·기획 분야 등을 총괄한다. 이들 대부분은 재무 전문가 출신이다. 오너 가족의 재산관리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분 상속, 경영권 방어, 계열사 간 얽히고 설킨 자금 구조 관리 등이야말로 ‘총수 중심 재벌경영’의 핵심인 까닭이다. 이들의 총수에 대한 충성심은 ‘본능’에 가까울 정도다. 4대 그룹 2인자의 경우 그룹 홍보·정보 라인으로부터 총수 못지않은 관리와 보호를 받는다. 연봉, 사회적 지위 등이 샐러리맨으로서는 최고 위치에 올라갔다 할 수 있는 이들이다.
2인자의 위기는 곧 총수의 위기다. 그룹 전체에 경계경보가 울리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어보면 2인자의 자리란 여간해서는 흔들리지도, 흔들려서도 안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도 못 말리는’ 역대 최강 검찰이 지금 이들을 노리고 있다. 물론 “대기업은 직접적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다”라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발언 등이 있었으나 이는 재계에 ‘오너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2인자들도 인신구속 등 중형에 처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더라도 사내·외에서의 입지, 영향력, 카리스마 등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까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내년 3월 열릴 각 사 주주총회 이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위험성도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소액주주 등이 나서 이사 해임을 요구하거나 불법행위로 주주에 해를 끼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지금 각 그룹은 일반적으로 12월 중·하순에 이뤄지던 임원 인사는 물론 내년도 세부 사업계획까지 2월 이후로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더하여 일부 그룹에서는 내부 권력투쟁 양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기존 2인자 그룹을 대체할 신진세력들이 세 확장에 나서고 있는 것. 상대 라인의 핵심인사에 대한 뒷조사를 하거나, 반대로 승진을 예상하고 표정관리에 나서는 등 다양한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 물러나야” VS “그들의 잘못 아니다”
삼성의 경우 지난 여름 한동안 떠돌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낙마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선자금 문제도 그렇지만, 더 큰 이슈는 이건희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간 재산상속 문제다. 한때 에버랜드를 매개로 한 양자간 지분 상속 성공은 이본부장의 가장 큰 ‘업적’으로 이야기돼곤 했다. 그러나 편법상속 논란이 오히려 이재용 상무의 경영 일선 등장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 이본부장에 대한 사내·외의 시선 또한 이전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LG그룹 강유식 부회장도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LG의 지주회사 전환을 이끈 강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이 1970년대 중반 럭키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할 당시부터 인연을 맺어온 ‘30년 책사’다. 강부회장에 대한 구회장의 신임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 내부 인사들의 전언. 그러나 강부회장 역시 대선자금 문제는 물론, 이와 함께 불거진 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지주회사 전환 중 이루어진 총수 일가 지분 매입 및 계열사 지분조정 문제 등으로 인해 거듭 구설수에 오르기 때문이다.
SK 손길승 회장과 김창근 사장의 입지는 더욱 좁다. 두 사람 모두 검찰조사 결과는 물론 내년 3월 열릴 주주총회에서 어떤 수모를 겪게 될지 알 수 없다. 손길승-최태원 회장 간 갈등설이 표면화하고 있는 가운데 ‘생존’을 위한 손회장측의 움직임은 더욱 급박해져 가고 있다. 김창근 사장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의 모 임원은 “재벌의 모양과 성격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정도의 일로 주력 인사들의 2선 후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수 중심 체제에서 그 재산 및 경영권 보호의 첨병 역할을 해온 사람을 무작정 갈아치울 수 있나. 한 사람을 움직이려면 그룹 전체의 색깔과 인사가 다 바뀌어야 한다. 또 막말로 알고 있는 비밀이 한두 가지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나가라’고 말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전혀 다른 의견도 있다. LG그룹의 한 차장은 “많은 동료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사생활을 희생해가며 최선을 다해도 결국 도달하는 곳이 검찰이요, 부끄러운 일로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라면 일할 맛이 나겠나. 그분들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런 자괴감과 의욕 상실을 일소하기 위해서라도 해결할 일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SK의 모 인사 또한 “두고 보라. 다음 대통령선거 때는 돈 갖다달라는 사람도, 주겠다는 사람도 쉽게 나오지 않을 거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온갖 불법적인 문제들과 얽히고 설킨 사람들이 하는 업무 지시며 ‘훈계’들을 아랫사람들이 고분고분 들을 리 있나. 입지 축소와 발언권 약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가 된 인사들이 당장 물러나는 일은 없더라도 결국 조만간 정리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2인자의 상당수는 대선자금 제공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자금 제공 여부와 돈 마련 방법 등을 결정했으며, 전달과정 자체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액수와 과정이 가장 먼저 공개된 SK의 경우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의 요구를 받은 손길승 회장이 김창근 ㈜SK 사장에게 자금 마련을 지시, 김사장이 직접 차를 몰아 현금을 전달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역시 최의원의 전화를 받은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윤모 전무는 이 사실을 이건희 회장의 ‘복심(腹心)’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이본부장은 다시 구조본 재무팀장인 김인주 부사장에게 돈 마련과 전달을 지시했다. 이에 김부사장은 이회창 후보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에게 채권 112억원을, 최의원에게 현금 40억원을 직접 전달했다.
50대 중·후반 … 샐러리맨으로 최고의 위치
LG그룹은 어떤가. 구본무 회장의 ‘오른팔’인 강유식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최돈웅 의원이 전화를 걸어 강압적 분위기로 자금을 요구해 이모 상무를 시켜 150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정우 변호사의 자금 요청 전화를 받은 최모 부사장은 이를 김동진 부회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현대차는 내부 협의를 거쳐 현대캐피탈이 마련한 100억원을 최부사장을 통해 서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위에 언급된 임원들은 모두 각 그룹의 2인자 또는 재무 및 대외협력 라인의 핵심 인사들이다. 롯데그룹의 경우도 사실상 구조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병일 호텔롯데 경영관리본부 사장과 신동인 호텔롯데 사장 등 그룹 핵심인사 2명이 자택 압수수색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금호그룹도 박삼구 회장과 함께 ‘2인자’인 오남수 전략경영본부장이 소환 조사를 받았다. 한진그룹 심이택 대한항공 총괄사장도 소환됐다. 이들 역시 그룹의 핵심 인사들이다.
그룹 내 2인자는 대개 구조조정본부장 또는 사실상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50대 중·후반의 실무 실세들이다. 이들은 총수의 ‘대리자’ ‘메신저’ ‘그림자’ ‘오른팔’ ‘해결사’ 등으로 불리며, 소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그룹 전체의 재무·전략·기획 분야 등을 총괄한다. 이들 대부분은 재무 전문가 출신이다. 오너 가족의 재산관리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분 상속, 경영권 방어, 계열사 간 얽히고 설킨 자금 구조 관리 등이야말로 ‘총수 중심 재벌경영’의 핵심인 까닭이다. 이들의 총수에 대한 충성심은 ‘본능’에 가까울 정도다. 4대 그룹 2인자의 경우 그룹 홍보·정보 라인으로부터 총수 못지않은 관리와 보호를 받는다. 연봉, 사회적 지위 등이 샐러리맨으로서는 최고 위치에 올라갔다 할 수 있는 이들이다.
2인자의 위기는 곧 총수의 위기다. 그룹 전체에 경계경보가 울리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어보면 2인자의 자리란 여간해서는 흔들리지도, 흔들려서도 안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도 못 말리는’ 역대 최강 검찰이 지금 이들을 노리고 있다. 물론 “대기업은 직접적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다”라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발언 등이 있었으나 이는 재계에 ‘오너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2인자들도 인신구속 등 중형에 처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더라도 사내·외에서의 입지, 영향력, 카리스마 등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까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내년 3월 열릴 각 사 주주총회 이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위험성도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소액주주 등이 나서 이사 해임을 요구하거나 불법행위로 주주에 해를 끼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지금 각 그룹은 일반적으로 12월 중·하순에 이뤄지던 임원 인사는 물론 내년도 세부 사업계획까지 2월 이후로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더하여 일부 그룹에서는 내부 권력투쟁 양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기존 2인자 그룹을 대체할 신진세력들이 세 확장에 나서고 있는 것. 상대 라인의 핵심인사에 대한 뒷조사를 하거나, 반대로 승진을 예상하고 표정관리에 나서는 등 다양한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 물러나야” VS “그들의 잘못 아니다”
삼성의 경우 지난 여름 한동안 떠돌던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낙마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선자금 문제도 그렇지만, 더 큰 이슈는 이건희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간 재산상속 문제다. 한때 에버랜드를 매개로 한 양자간 지분 상속 성공은 이본부장의 가장 큰 ‘업적’으로 이야기돼곤 했다. 그러나 편법상속 논란이 오히려 이재용 상무의 경영 일선 등장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 이본부장에 대한 사내·외의 시선 또한 이전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LG그룹 강유식 부회장도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LG의 지주회사 전환을 이끈 강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이 1970년대 중반 럭키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할 당시부터 인연을 맺어온 ‘30년 책사’다. 강부회장에 대한 구회장의 신임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 내부 인사들의 전언. 그러나 강부회장 역시 대선자금 문제는 물론, 이와 함께 불거진 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지주회사 전환 중 이루어진 총수 일가 지분 매입 및 계열사 지분조정 문제 등으로 인해 거듭 구설수에 오르기 때문이다.
SK 손길승 회장과 김창근 사장의 입지는 더욱 좁다. 두 사람 모두 검찰조사 결과는 물론 내년 3월 열릴 주주총회에서 어떤 수모를 겪게 될지 알 수 없다. 손길승-최태원 회장 간 갈등설이 표면화하고 있는 가운데 ‘생존’을 위한 손회장측의 움직임은 더욱 급박해져 가고 있다. 김창근 사장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태.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의 모 임원은 “재벌의 모양과 성격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정도의 일로 주력 인사들의 2선 후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수 중심 체제에서 그 재산 및 경영권 보호의 첨병 역할을 해온 사람을 무작정 갈아치울 수 있나. 한 사람을 움직이려면 그룹 전체의 색깔과 인사가 다 바뀌어야 한다. 또 막말로 알고 있는 비밀이 한두 가지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나가라’고 말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전혀 다른 의견도 있다. LG그룹의 한 차장은 “많은 동료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사생활을 희생해가며 최선을 다해도 결국 도달하는 곳이 검찰이요, 부끄러운 일로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라면 일할 맛이 나겠나. 그분들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런 자괴감과 의욕 상실을 일소하기 위해서라도 해결할 일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SK의 모 인사 또한 “두고 보라. 다음 대통령선거 때는 돈 갖다달라는 사람도, 주겠다는 사람도 쉽게 나오지 않을 거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온갖 불법적인 문제들과 얽히고 설킨 사람들이 하는 업무 지시며 ‘훈계’들을 아랫사람들이 고분고분 들을 리 있나. 입지 축소와 발언권 약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가 된 인사들이 당장 물러나는 일은 없더라도 결국 조만간 정리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