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2일 세계경제포럼(WEF)이 한국의 남녀 성(性) 격차 지수가 세계 92위라고 발표하자 누리꾼(네티즌) 사이에 댓글 전쟁이 일어났다. 언론은 이 순위가 이슬람 국가인 아프리카의 튀니지나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비슷한 수치라는 설명을 곁들여 논란의 소재를 제공했다. 이 같은 결과가 여성가족부가 제공한 자료 때문이라는 성토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누리꾼들은 해묵은 이슈들, 예컨대 여성의 군 입대 문제나 여성부 존재의 필요성, 페미니즘과 얼치기 페미니스트의 기준 등을 들먹이며 치고받았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올해만도 벌써 몇 번째 이런 발표가 나와 순위에 민감한 한국인을 자극했다. 9월에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2005년도 인간개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여성의 정치·경제 분야 참여도를 측정한 ‘성 평등 측정(GEM)’ 순위를 매겼는데, 여기서 한국은 59위를 차지했다. 3월에는 전혀 ‘엉뚱한’ 순위가 나오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여성평등지표인 ‘성·제도·개발(GID)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벨기에, 네덜란드와 함께 공동 4위로 평가된 것이다.
가부장 전통 탓 피해의식 커 … 그러나 남자만의 미래는 불가능
기관마다 평가항목이나 조사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4위와 92위는 너무 동떨어지는 결과다. 그런데도 단순히 순위만 놓고 대한민국 선남선녀가 치고받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우스운 꼴이다. 일례로 WEF의 순위에서 아프리카의 르완다가 의회 내 여성의원 비율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지난 2000년까지 내전으로 수백만명이 학살된 이 작은 나라는 2003년 선거를 실시하면서 여성 의원을 30% 할당하도록 규정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말하자면 종합적인 삶의 질은 무시하고 특정 항목에 대한 단순 수치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바람에 항목이나 조사방법에 따라 너무나 큰 순위 변동이 생긴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더 이상 해외기관이 선정한 순위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순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좀더 냉철하게 한국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리 미워도 적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사랑해도 자웅동체가 될 수 없는 남자와 여자. 화성과 금성에서 온 것만큼이나 심리적 차이가 크지만, 또한 인간이라는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두 종족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인 메가트렌드였다. 육체적 힘으로 기계와 상품을 만드는 산업자본주의 대신 사무실이 노동의 메카가 됐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남녀 간 힘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더구나 여성 노동력은, 갈수록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기에 국가 차원에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또한 ‘차이는 있지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의 성숙도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다. 한마디로 이 새로운 시간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라별로 문화나 민족적 전통, 윤리의식 등에 따라 변화의 진행속도는 많이 다르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는 인식이 강해 변화 속도를 늦추는 주범이 되고 있다. 서구를 제외해도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 예컨대 일찌감치 여성 노동력을 중시한 공산 정권하의 중국은 생활 속의 남녀평등이 상당히 진행됐고, 말레이시아는 여성 고위 경영인의 수가 남성보다 앞서며, 태국은 대학교육을 받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필리핀에서는 이미 1941년에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고, 공공기관의 행정관리직 중 여성 비율이 50%를 넘어서 현재 세계 1위다. 전반적인 삶의 질은 한국보다 떨어지지만 남과 여, 두 종족 간 공존공생의 구조는 한국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이 받는 현실적인 피해의식이 크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가부장제적 전통의 장벽이 두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남자만의 미래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지만, 남자의 미래는 여자의 미래와 함께 오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올해만도 벌써 몇 번째 이런 발표가 나와 순위에 민감한 한국인을 자극했다. 9월에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2005년도 인간개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여성의 정치·경제 분야 참여도를 측정한 ‘성 평등 측정(GEM)’ 순위를 매겼는데, 여기서 한국은 59위를 차지했다. 3월에는 전혀 ‘엉뚱한’ 순위가 나오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여성평등지표인 ‘성·제도·개발(GID)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벨기에, 네덜란드와 함께 공동 4위로 평가된 것이다.
가부장 전통 탓 피해의식 커 … 그러나 남자만의 미래는 불가능
기관마다 평가항목이나 조사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4위와 92위는 너무 동떨어지는 결과다. 그런데도 단순히 순위만 놓고 대한민국 선남선녀가 치고받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우스운 꼴이다. 일례로 WEF의 순위에서 아프리카의 르완다가 의회 내 여성의원 비율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지난 2000년까지 내전으로 수백만명이 학살된 이 작은 나라는 2003년 선거를 실시하면서 여성 의원을 30% 할당하도록 규정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말하자면 종합적인 삶의 질은 무시하고 특정 항목에 대한 단순 수치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바람에 항목이나 조사방법에 따라 너무나 큰 순위 변동이 생긴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더 이상 해외기관이 선정한 순위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순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좀더 냉철하게 한국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리 미워도 적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사랑해도 자웅동체가 될 수 없는 남자와 여자. 화성과 금성에서 온 것만큼이나 심리적 차이가 크지만, 또한 인간이라는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두 종족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인 메가트렌드였다. 육체적 힘으로 기계와 상품을 만드는 산업자본주의 대신 사무실이 노동의 메카가 됐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남녀 간 힘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더구나 여성 노동력은, 갈수록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기에 국가 차원에서도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또한 ‘차이는 있지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의 성숙도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다. 한마디로 이 새로운 시간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라별로 문화나 민족적 전통, 윤리의식 등에 따라 변화의 진행속도는 많이 다르다. 특히 한국 남성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는 인식이 강해 변화 속도를 늦추는 주범이 되고 있다. 서구를 제외해도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 예컨대 일찌감치 여성 노동력을 중시한 공산 정권하의 중국은 생활 속의 남녀평등이 상당히 진행됐고, 말레이시아는 여성 고위 경영인의 수가 남성보다 앞서며, 태국은 대학교육을 받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필리핀에서는 이미 1941년에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고, 공공기관의 행정관리직 중 여성 비율이 50%를 넘어서 현재 세계 1위다. 전반적인 삶의 질은 한국보다 떨어지지만 남과 여, 두 종족 간 공존공생의 구조는 한국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이 받는 현실적인 피해의식이 크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가부장제적 전통의 장벽이 두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남자만의 미래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지만, 남자의 미래는 여자의 미래와 함께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