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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반전, 여름밤 춥다 추워!”

독서 피서로 강추 일본 추리소설 6편 … 재미는 물론 작품성까지 갖춰 ‘인기몰이’

  •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공포와 반전, 여름밤 춥다 추워!”

“공포와 반전, 여름밤 춥다 추워!”
최근 1~2년 사이 부쩍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출간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소개된 소설은 재미와 작품성이 모두 뛰어난 1급 작품이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다. 이 미스터리 소설 6편만은 꼭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일본 미스터리를 다시 보게 만드는 대표선수는 미야베 미유키다. ‘모방범’은 원고지 6000장, 3권 분량의 방대한 소설이다. 1권만 샀다가는 다음 날 아침 서점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게 하는 대단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도쿄의 한 공원 쓰레기통에서 여자의 팔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찰이 범죄의 윤곽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 범인은 대담하게 방송국에 직접 연락을 취하고, 잇따른 범죄를 예고할 정도의 지능범이다.

물론 여기까지라면 여타 미스터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여왕인 미야베 미유키는 만만하지 않다. 연쇄살인범이 화자로 등장한다. 대체 어쩌려고 범인을 드러내나 싶지만 이야기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인 히로미가 죽자 공범인 아마가와 고이치는 연쇄살인의 진상을 밝힌다며 책을 쓰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범죄를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섬뜩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범인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삶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연극의 주인공으로 삼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가 미스터리를 쓰고 있지만 범죄나 범인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관심은 오로지 범죄의 이유와 인간의 욕망에 있다. 그걸 밝히기 위해 범죄와 연관된 사람이라면 그의 사돈의 팔촌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추리소설계 여왕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 같은 스타일을 두고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라고 부른다. 사회파 추리는 마쓰모토 세이조가 발전시킨 일본 추리소설만의 독특한 장르다. 추리소설이 트릭을 강조하며 유희적으로 치우치자 이에 반발해 등장했다.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범죄에 얽힌 인간 군상을 묘사하며 리얼리즘을 담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 밖에 본격 추리소설도 존재한다. 기상천외한 살인마,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명탐정의 등장,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전개를 통해 트릭과 논리적 재미를 추구하는 추리소설이다. 일본에서 본격 추리소설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반격에 주춤했지만 1980~90년대 ‘신본격’이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전기를 맞았다. 국내에는 ‘십각관의 살인’ 등 ‘관’ 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쓰지 유키토 등의 작품이 소개돼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이나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사회파 추리나 신본격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일본 미스터리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데뷔작으로 홈런을 친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추리소설의 재미를 잃지 않는다. 미야베 미유키처럼 무겁지 않고, 아야쓰지 유키토처럼 트릭에 치중하지도 않지만 주제의식과 대중성이 모두 살아 있다.

상해치사죄로 전과자가 된 준이치와 교도관 난고는 기억을 잃어버린 사형수를 구하기 위해 범죄의 진실을 찾아나선다. 범인으로 몰렸지만 사고로 범행 당일의 기억을 잃은 사형수가 오로지 기억하는 건 살해 위협을 받으며 올라간 계단뿐이다.

그렇다면 범행의 기억을 잃은 범인은 과연 범인인가. 연쇄살인범은 여러 차례의 재판을 거치느라 오래도록 살 수 있고, 평범한 살인범은 빨리 죽는 제도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형집행에 참여하는 교도관은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걸까. 작품은 정면으로 사형제도와 국가의 범죄관리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마지막에는 대반전이 독자를 기다린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역시 반전이 기막힌 미스터리다. 프리터족인 독신 남성 나루세는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린다. 연속적으로 벌어진 사건을 풀어가면서 나루세가 목격하는 것은 일본의 노년문제다. 책의 표지부터 결말까지 한통속으로 독자를 속이기 위해 똘똘 뭉친 소설이다. 시작부터 속지 않으리라 다짐해봤자 마지막에는 결국 속았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추리소설이다.

“공포와 반전, 여름밤 춥다 추워!”

일본문학에 대한 국내 출판계의 높은 관심이 추리소설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명작가의 경우 작품마다 2~3만 권의 판매고를 유지한다.

참신한 주제 기묘한 미스터리

미국 ‘타임’지마저 격찬했다는 기리노 나쓰요의 ‘OUT’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작품이다. 남성이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 장르에서 독특하게 여성문제를 그린 작품으로, 도시락 공장에서 한 팀으로 일하는 아줌마들의 반란을 담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밀려난 50대의 가토리 마사코, 남편은 죽고 시어머니 수발에 허리가 휘는 중년여성 아즈마 요시에, 사치 때문에 빚더미에 오른 조노우치 구니코, 도박과 여자에 미친 남편을 둔 젊은 주부 야마모토 야요이가 주인공이다. 사건은 폭력을 행사한 남편을 덜컥 죽인 야요이의 부탁으로 마사코, 요시에, 구니코가 시체를 조각내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에 가담하면서 시작된다.

선정적이고 잔혹한 표현을 즐기는 기리노 나쓰요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OUT’에서도 시체를 토막내는 부분에서는 잔혹 취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사회적 억압을 받으며 사는 여성들이 느끼는 위화감과 반란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OUT’은 엽기적 추리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누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국내에서 여성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온다 리쿠를 빼놓을 수 없다. 천재수학자가 남편을 죽인 모녀를 돕는 ‘용의자 X의 헌신’은 나오키상을 받은 히가시노의 대표작이다. 처음부터 범인이 드러나지만, 과연 어떻게 천재수학자가 모녀의 알리바이를 만들 것인지가 궁금해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마지막에는 “설마 이렇게까지” 하는 탄성이 독자를 기다린다.

온다 리쿠는 미스터리 작가라기보다는 미스터리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다. 특히 여성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왜 우리는 이야기에 열광하는지를 그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어보면 참신한 주제를 기묘한 미스터리에 담아낸 작가의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국내에 온다리즘을 만들어낼 정도로 추종자를 거느린 독특한 작품세계가 특징이다.

그 밖에 주목할 만한 추리소설

‘리시 이야기’ ‘살인자들의 섬’ ‘넥스트’ 등 꼭 읽어볼 만


“공포와 반전, 여름밤 춥다 추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국내 미스터리 장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국내에서 미스터리 장르는 오랜 기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여명의 눈동자’의 김성종 이후 국내 추리소설은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고, 간헐적으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같은 역사추리물이 대중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국내에서 미스터리 장르가 활발하게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종의 지식소설이자 역사추리물인 ‘다빈치 코드’ 의 성공에 기인한다. 이후 ‘다빈치 코드’ 유형의 소설, 즉 팩션이 다수 소개되고 특히 남성 독자들이 이 장르를 선호하면서 덩달아 미스터리 장르 전체가 해빙기를 맞고 있다. 최근 소개된 팩션 중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단테 클럽’의 작가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가 있다. 에드거 앨런 포와 그의 소설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리고 있다.

정신분석과 추리소설의 만남을 시도한 ‘살인의 해석’도 흥미로운 팩션이다. 정신분석의 거두인 프로이트, 융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프로이트의 미국 방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삼아 만든 소설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신봉하는 미국인 정신분석학자 영거가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형식이다.

국내에서는 소수의 마니아 독자를 거느릴 정도로 푸대접을 받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스티븐 킹의 작품도 기다린다. 올 여름에 나올 신작은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크레이븐’에서 선보인 밀도 높은 긴장감을 즐겼던 독자라면 반길 만한 작품이다. ‘리시 이야기’는 유명작가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삼아 작가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묘하지만 인간적인 스토리다. 하지만 스티븐 킹 역시 미야베 미유키만큼이나 장황하고 길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다, 특히 도입부를 참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 중 대중적 인기와 문학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 작가로는 데니스 루헤인을 첫손에 꼽아야 한다. 국내에 소개된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러버’는 강력 추천하는 작품이다. 정신병으로 살인을 저지른 환자들을 수용한 섬에서 도망친 환자를 추격하는 ‘살인자들의 섬’이나 살인사건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세 남자의 삶을 담은 ‘미스틱 러버’는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언제나 필독서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쥬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턴도 신작 ‘넥스트’를 선보였다. 현실로 다가온 유전자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국내 작가로는 사회적 메타포를 공포의 소재로 이용하는 이종호의 작품이 주목할 만하다. ‘분신사바’ ‘이프’는 모두 영화화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형 팩션으로 평가받은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도 있다. 한글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기득권 세력과 신진세력의 암투를 그렸다.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등으로 유명한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도 흥미롭다. 18세기 말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 젊은 실학자들이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추리소설의 외피 속에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시리즈 중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이 이미 출간됐으며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다.




주간동아 2007.08.21 599호 (p54~56)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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