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6

2006.08.01

뉴욕 빈민에서 경제 권력으로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6-07-26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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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빈민에서 경제 권력으로

    ‘애니싱 엘스’

    “이스라엘이 미국의 가치를 옹호하기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및 레바논 공격이 몇 주일째 계속되는 와중에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스라엘 지지 집회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세계는 대체로 이스라엘의 호전성을 비난하는 쪽이지만 뉴욕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그것도 전직 대통령 부인이자 상원의원인 여성이 주도해서.

    이날 집회에서는 이스라엘 지지 발언을 한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좀 뜻밖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기아·대학살 희생자 구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반대 등에 앞장선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다. 어쩐지 그의 이력과는 맞지 않아 보였는데 의문은 그가 유대인, 그것도 어린 시절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됐다가 살아난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데서 풀린다.

    그런 점에서 엘리 위젤이야말로 오늘날 유대인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희생당한 끔찍한 재난의 피해자.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오늘날 중동에서 무고한 이웃 양민을 학살하는 침략자. 피해자와 가해자의 두 얼굴이다.

    그러나 피해자로서 유대인의 ‘과거’는 미디어 등을 통해 줄기차게 확대재생산되는 반면, 가해자로서의 ‘현실’은 그 밑에 묻혀 있다. 거기에는 미국 정계에서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의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역학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뉴욕은 세계 어느 곳보다 유대인들의 성공 신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가령 18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 유대인 이민자들은 뉴욕 뒷골목 밑바닥의 한 부분이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같은 거리를 무대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그 빈민가가 지금은 세계경제의 심장이 돼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빈민이 이젠 세계경제의 권력자들이 돼 있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 빌딩들의 40%를 유대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유대인의 고장, 뉴욕. 영화 속에서 유대인의 일상은 그래서 특히 뉴욕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재담과 신랄한 풍자로 극을 이끌어가는 우디 앨런이 대표적일 텐데, 그의 영화는 늘 ‘뉴요커로서의 유대인’ 혹은 ‘유대인으로서 뉴요커’인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다.

    지난해에 개봉된 영화 ‘애니싱 엘스’에서 늙은 희극작가로 분한 우디 앨런은 뉴욕을 ‘나치 잔당’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도시로 묘사하고, 수시로 테러 위험에 노출돼 있는 유대인 뉴요커의 처지를 빈정거린다. “유대인으로서 스스로를 지키려면 총을 갖고 다녀라.”

    그의 말 속에는 미국에서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리, 스스로에 대한 자기 비하와 냉소 등이 뒤섞여 있다. 더 이상 ‘게토’는 없지만, 유대인으로 산다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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