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5

2006.07.25

한국인보다 더 한국스러운 ‘한국 알림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7-19 18: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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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보다 더 한국스러운 ‘한국 알림이’
    서울대 영문학 석사와 국문학 박사, 10년 동안 김덕수 사물놀이의 매니저로 활동, 남이섬 문화원 원장을 거쳐 2006년 1월부터 인터넷 포털 ‘코리아닷컴’(www.korea.com) 고문으로 활동 중.

    프로필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남도 어디쯤에서 태어나 전통문화 보존과 전파에 남다른 소명의식을 가진, 뼛속까지 ‘징한’ 한국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푸른 눈에 흰 피부, ‘수잔나 샘스택 오(Suzanna Samstag Oh)’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미국 여성이다.

    요즘 ‘한국 문화에 매료됐다’는 외국인이 한둘이 아니어서 ‘서구 엘리트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을 경계하던 마음은, 오 고문의 ‘한국문화 마케팅론’에 곧 항복하고 말았다. 미국인이면 어떤가. 한 수 배울 수 있다면 기꺼이 배워야 할 터. 올해 나이 마흔일곱, 한국에서 25년 동안 살며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으니 날개옷 입고 ‘휘리릭’ 떠날 사람도 아니다.

    “한국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에 영어는 물론이고 외국어로 된 한국 포털 사이트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코리아(Korea)’를 치면 700만개의 문서가 뜹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정보가 너무 많은 동시에 전혀 없는 나라이기도 해요. 한국을 알리는 첫 번째 관문이 되는 것이 ‘코리아닷컴’의 목표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서비스하는 ‘코리아닷컴’이 있다. ‘코리아닷컴’은 도메인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2000년 두루넷이 개인으로부터 500만 달러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2005년 9월 매각됐고, 2006년 1월 대성그룹에 인수돼 5월17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한국이 오랜 역사와 뛰어난 문화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적절하게 ‘마케팅’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오 고문은 한 주한 외국인 모임에서 ‘코리아’라는 브랜드 홍보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오 고문의 말에 공감한 사람들 중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이 있었다. 당시 대성그룹은 에너지 전문기업이면서 차세대 사업으로 문화산업을 선정, 창투사 등을 통해 영화 제작 등에 막 뛰어들던 참이었다. 김 회장은 ‘코리아닷컴’을 통해 한국과 대성의 브랜드 가치를 함께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고, 이를 자신한 오 고문이 ‘코리아닷컴’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게 됐다.

    “한국 포털을 그대로 번역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나라마다 한국에 대한 관심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정보의 종류도, 설명도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화랑정신’을 문화적 맥락이 다른 서구와 일본, 중국에 똑같이 설명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 ‘코리아닷컴’의 영문 사이트를 접속하면, 한국에 관한 실시간 뉴스는 물론이고, 한국의 자연이나 음식을 소개하는 영문 사이트로 들어갈 수 있다. 아리랑 TV의 ‘독도 다큐멘터리’도 링크돼 있다.

    한국 문화를 알리려는 오 고문의 노력에는 한국을 사랑하는 여느 외국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개인적인 취향과 인연으로 한국 문화에 빠졌다기보다는 세계 문화의 하나로서 한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 한국 문화를 외국에 ‘파는’ 마케팅 현장에서 직접 일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스러운 ‘한국 알림이’

    “한국 전통문화 상품 중 ‘메이드 인 차이나’가 너무 많아져 속상하다”는 오 수잔나 고문.

    인터넷 통해 문화·역사 등 해외에 전달…사물놀이 해외공연도 주도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은 단지 ‘펄 벅이 쓴 책을 읽노라면 이상하게 와 닿는 나라’였을 뿐이다. 그러나 당시 급변하던 정치적 상황은 오 고문으로 하여금 한국의 사회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했다. 당시 한-미 관계가 잠시 악화되면서 평화봉사단 활동이 중단됐지만, 오 고문은 본국으로 철수하는 대신 한국에 남아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를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1981년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그 독창적인 미감에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더 놀란 건 사물놀이 연구생으로 입단한 제게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거예요. ‘그 시끄러운 걸 뭐 하러 배워요?’”

    당시 오 고문에게는 한국처럼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이 어째서 자국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거나 세계에 적극 알리려고 하지 않는지가 ‘미스터리’였다. 그는 많은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한국 역사를 배우면서 일제 식민 지배와 미국 주도의 근대화가 한국 사람들의 정신에 어떤 ‘공백’을 남겼는지를 깨닫게 됐다.

    오 고문은 1984년 김덕수 사물놀이의 매니저가 되어 해외 공연을 주선했다. 해외 공연은 표를 파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처음으로 호암아트홀에서 입장료 1만원을 받고 사물놀이 유료 공연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국의 풍속이 세계적인 공연예술로 바뀐 거죠. 돌아보면 1980년에 한국에 온 것이 제겐 가장 큰 행운이었어요. 날마다 대학생들의 데모를 보면서 한국의 현대사를 이해했고, 한국 문화가 세계로 진출하는 역사적 단계에 직접 참여했으니까요. 80년대에 한국 전통문화를 배우려면 기능보유자 등을 따라다니며 도제 수업을 받아야 했는데, 지금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이런 변화를 목격할 때 참 뿌듯합니다. 제가 조금 빨랐거나 늦었다면 그런 기회를 놓쳤겠죠.”

    사물놀이의 해외공연 담당으로 활동한 뒤 지금까지 다양한 영문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전국 유적지의 잘못된 영문 표기를 바로잡는 등 오 고문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에서 잠시도 떠나본 적이 없다. 2005년엔 남이섬 문화원 원장이 되어 MT 장소의 대명사였던 남이섬을 고급 한류 체험명소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올해 4월부터 6월 말까지 열린 2006 남이섬 국제 아동도서 축제를 기획한 사람도 다름 아닌 오 고문이다.

    “한국 어머니들은 저를 보면 아이에게 영어를 잘 가르치는 방법이 무엇인지, 좋은 학원이 어디인지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늘 한국말을 잘 가르치라는 것뿐입니다. 한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다른 외국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거든요. 사람이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어떤 언어로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비극입니다.”

    오 고문은 수익사업으로서도 ‘코리아닷컴’이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증명됐듯이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이를 알리는 일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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