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천촌!” 최원교 관장과 수련생들이 ‘열 십(十)’자 평형성 운동을 하며 ‘재주 재(才)’, ‘하늘 천(天)’, ‘마디 촌(寸)’을 배우고 있다.
최 관장이 앞차기 사진이 실린 카드를 보여준 뒤 “오년식! 시작!”이라고 외치자 수련생들은 “오년식! 얍! 얍! 얍!” 하며 앞차기를 한다. 이후는 ‘자동’. “다리 벌리기 준비! 상하부사!”(최 관장) “상! 하! 부! 사!”(수련생) “부수(部首)는?”(최 관장) “한 일(一)”(수련생) “뜻은?”(최 관장) “위 상(上)! 아래 하(下)! 아니 부(不)! 죽을 사(死)!”(수련생)…. 태권도 동작을 하며 한자를 배우는 ‘태권한자’ 수련이 진행된 것이다.
수련생들은 옆차기를 하면서 “매명기회”를, 손날 격파를 하면서 “미래촌”을, 두 팔을 벌리고 한 다리를 들면서 “재천촌”을 외치며 수련을 이어갔다. 가끔 새로운 한자를 익힐 때면 최 관장이 차근차근 한자의 뜻과 음을 설명한 뒤 수련을 계속했다.(기자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중간 중간 최 관장에게 물어야 했다.)
태권한자 수련법은 태권도 수련동작을 한자의 부수나 모양과 연결해 태권도와 한자를 함께 익히게 하려고 최 관장이 고안한 교수법. 자신의 성균관대 석사학위 논문(태권한자운동 프로그램이 주의집중력과 한자학습 능력 및 체력에 미치는 영향) 내용을 실제 수련에 적용한 것이다.
태권한자 수련법은 발차기와 격파 등 태권도 동작을 사진(태권카드)으로 보여주며 관련 한자 를 떠올리게 해 한자를 기억하는 방식. 예를 들면 서 있는 사람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메주먹치기 동작 사진을 보여주고는 한자 ‘도끼 근(斤)’과 모습이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근’이 사용되는 한자 ‘바 소(所)’ ‘새로울 신(新)’ 등을 익히게 한 뒤 메주먹치기 동작을 할 때마다 “소! 신!” 하며 외치게 하는 것.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수련생들은 사진만 보면 메주먹치기 동작과 “소! 신!”을 곧바로 연상한다.
‘다리 일자 벌리기’ 동작은 ‘한 일(一)’을 연상시키므로 한 일이 부수인 한자 ‘상(上) 하(下) 부(不)’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아이들이 보는 사진 뒷면에는 관련 한자를 써놓는다. 최 관장 외에 누구라도 태권한자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명기회’는 옆차기 사진을 보여주고 사람 인(人)이 들어있는 한자 ‘매양 매(每)’ ‘목숨 명(命)’ ‘기운 기(氣)’ ‘모일 회(會)’를, ‘미래촌’은 송판을 격파하는 모습이어서 목(木)이 들어있는 ‘쌀 미(米)’ ‘올 래(來)’ ‘마을 촌(村)’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한자 ‘인(人)’은 사람이 발차기하는 모습과 비슷해 기억도 오래간다는 설명이다.
“태권한자는 태권도 동작그림(사진)을 한자와 연결해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생각하며 운동수행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우뇌에서 그림을 비언어적으로 처리(인지)한 뒤 좌뇌로 옮겨 언어화(음 낭독)합니다. 우뇌와 좌뇌를 모두 이용하는 거죠. 그만큼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최 관장은 수련에 앞서 유치원생 및 초등생 14명을 태권도만 하는 태권도 그룹(7명)과 태권한자 그룹(7명)으로 나눠 8주 동안 주5회 운동실험을 비교분석했다. 주의집중력 검사는 산타크루스 요가연구소(Santa Cruz Yoga Institute)가 제작한 집중능력 검사지를 이용했는데, 실험 전후의 주의집중력 변화에서 태권한자 그룹이 20% 정도 주의집중력이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평형성과 윗몸일으키기 등 체력 측정에서도 한자학습 그룹이 앞섰다. 뇌파 활성화 정도도 마찬가지였다.
최 관장은 뇌파실험 결과, 태권카드를 보며 한자를 연상하면 베타파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초등생들이 한자를 어려워하더라고요. 처음엔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쳤는데, ‘태권도와 연계해서 가르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 이 수련법을 떠올렸습니다.”
현재까지 태권한자 수련법으로 익힐 수 있는 한자는 대략 300자. 한자급수시험 6~8급용 한자를 중심으로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5급용 한자도 포함할 계획이다.
요즘은 태권도 동작 외에도 태권도와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한자로 대체한다. 태권도복 사진을 보여주며 ‘흰 백(白)’자를 연상시킨 뒤 ‘익힐 습(習)’ ‘일백 백(百)’을 익히고, 눈을 감고 품세를 하는 ‘어둠 품세’를 하며 ‘저녁 석(夕)’이 부수인 ‘동(冬) 외(外) 다(多)’를 외우는 식이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다. 한도훈(11) 군은 “태권도 동작을 하다 보면 한자가 머릿속에 막 떠오른다. 오래 기억돼 좋다”고 했고, 박창희(5) 양은 “글은 잘 모르지만 그런 글자(한자)가 있다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이미 태권한자 카드 제작을 출판사에 의뢰했다. 카드와 책(한자쓰기 노트)이 출판되면 굳이 도장을 찾지 않더라도 집에서도 가족과 함께 태권도 동작을 해보며 한자를 익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최 관장은 “처음엔 거부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수련생 모두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였다. 앞으로 ‘태권 사자성어’ ‘태권 사자소학’ 등 한자 시리즈와 ‘태권 영어학습법’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