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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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수수료 인하가 능사 아니다”

상담서비스 질 저하 불 보듯 …택시요금처럼 기본수수료제 도입이 상책

  • 조충현 증권투자상담사·‘배부른 펀드 재테크’ 저자 smcon@naver.com

    입력2008-11-13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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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드수수료 인하가 능사 아니다”
    편두통보다 ‘펀드통(痛)’이 더 무서운 요즘이다. 2400만여 계좌가 설립돼 있으니, 최근의 전 세계적인 주가 급락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터. 그런데 투자자와 한 배를 탄 줄 알았던 펀드 판매사와 운용사는 천연덕스럽게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으니 투자자들이 뿔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책당국은 비과세 혜택을 통한 적립식 주식형 펀드 활성화,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미스터리 쇼핑제’, 펀드위험등급제 등 여러 방안을 마련해 성난 투자자들의 마음을 달래려 하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판매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여론을 의식해 펀드수수료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어 염려된다.

    소액투자자들은 수수료 내려도 혜택 실감 못해

    정책당국은 일률적인 수수료율 인하를 구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률 방식의 현행 펀드수수료 체계에 대한 개선 없이 수수료를 내리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언뜻 투자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나눠줘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 같지만, 잘못하면 소액투자자들의 투자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왜 그런지는 은행이나 증권사에 찾아가 10여 분만 앉아 있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소액투자자들은 대부분 은행이나 증권사 판매창구에 찾아가 적립식펀드에 가입한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8년 9월 말 현재 전체 펀드 판매금액 중 적립식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22%에 그치지만, 판매계좌 수로는 그 비중이 61%나 된다. 특히 은행권은 판매계좌 수에서 적립식펀드의 비중이 75%에 이른다.



    지난해까지 은행들은 펀드 수익률이 호조를 보이자 목돈을 만들려는 고객에게 적금 대신 적립식펀드를 많이 권했다. 그러나 목돈을 맡기는 거치식과 달리 매달 불입액이 10만원 안팎인 적립식펀드를 유치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할애할 수 없는 것이 은행의 현실이다.

    은행 지점 중에는 펀드 가입 창구를 따로 마련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반 창구에서 펀드 상담을 진행한다. 그런데 자동화기기 업무체계 확대로 창구 직원의 수가 일손에 비해 늘 부족하다. 많은 고객들이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은행 직원이 공들여 펀드 상담을 해주기는 어렵다. 특히 구조가 복잡한 파생상품 펀드는 상품 구조와 위험도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정으로 지금까지도 은행창구에서 불완전 판매가 이뤄져왔는데, 판매수수료까지 인하된다면 은행창구의 펀드 서비스는 더 부실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현행 정률 방식의 펀드수수료 체계를 잠시 살펴보자. 먼저 가입기간 1년, 매달 10만원 불입, 판매수수료 0.15%의 적립식펀드를 가정해보자. 이 펀드를 판매한 은행이 1년 동안 가져가는 보수는 1만1700원이다(100,000×(1+2+…+12)×0.15%). 일시에 고액을 맡기는 거치식펀드는 어떨까? 10억원을 1년간 맡긴다면 은행이 가져가는 판매보수는 1500만원(1,000,000,000×0.15%)이 된다. 같은 펀드를 팔고도 투자금에 따라 엄청난 보수 차이가 생긴다. 판매사들이 기꺼이 고액투자자들에게 고급 서비스와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펀드수수료 인하가 능사 아니다”

    은행에서 펀드 가입 상담을 받고 있는 고객(왼쪽). 일손이 부족한 은행창구에서 펀드 상담이 성실하게 이뤄지긴 어렵다.

    고액투자자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지만, 지나치게 많은 수수료를 낸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한편 소액투자자들에겐 판매사의 상담 내용이 매우 부실하고 사후관리도 성의껏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판매사들은 “수수료로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느냐”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따라서 일률적인 수수료 인하는 고액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환영받을 일이지만, 대다수에 해당하는 소액투자자 처지에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펀드판매사에 지불했던 보수 금액이 크지 않았고 수수료 인하 이후에도 소액만 절감되기 때문에 수수료 인하 혜택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차라리 기본수수료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불완전판매 문제가 생겼을 때 판매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 마련이 소액투자자들에게 더 유용한 방안이라 하겠다.

    투자금액·서비스 따라 수수료 요율 달리 적용해야

    이러한 이유로 택시의 기본요금제와 설계 방식이 비슷한 ‘기본수수료 제도’를 펀드에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택시 기본요금은 운전기사에게는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하고 승객에게는 택시를 마음 놓고 이용하게 하는, 양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나, 때로 아주 멀리 가더라도 운전기사나 승객 모두가 크게 불만이 없다.

    펀드수수료도 택시요금처럼 기본수수료를 도입하는 동시에 투자금액이나 서비스 수준에 따라 요율을 달리 적용한다면, 판매사와 투자자 모두 불만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수익 기반을 확보한 판매사들은 소액 적립식펀드 투자자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담창구나 상담인원을 강화해 서비스 경쟁에 나설 것이다. 고액투자자에 대한 수수료 인하도 자연스럽게 시행될 것이다.

    이번 미국발(發) 금융위기에서 증명됐듯, ‘작은 투자’들이 모여 형성된 적립식펀드 시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한국 자본시장의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제대로 된 투자문화가 형성돼야 한국 자본시장은 선진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펀드를 제대로 알고 투자하는 사람은 열에 한 명도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투자자들의 든든한 지킴이가 돼야 할 정책당국은 당장 박수받는 정책보다는 투자자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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