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에 전시된 아니 비지에 & 프랑크 아프르테 'X-이벤트2'.
서울 종로구 화동(花洞)은 조선시대 궁중의 꽃을 키우는 관아였던 장원서(掌苑署)가 있던 곳입니다. 2008년 11월, 이곳에서 예술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화동 근처에는 비교적 좋은 갤러리가 모여 있는 편인데요. 전시기획을 하는 ‘사무소(SAMUSO)’가 오랜 준비 끝에 화동 일대 10곳의 전시장에서 ‘플랫폼 서울 2008’(10. 25~11. 23)을 개최했습니다. 아트선재센터, 갤러리예맥, 갤러리선컨템포러리, 국제갤러리, 두아트서울, PKM갤러리, 웨이방갤러리, 송원아트센터, 원앤제이갤러리, 가갤러리가 바로 그곳입니다. 가히 ‘화동 비엔날레’라고 불릴 만하지요.
그러나 행사 성격은 비엔날레보다 훨씬 ‘동시대적’입니다. 전시뿐 아니라 비디오와 영화 상영, 공연, 강연, 퍼포먼스 등이 총체적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플랫폼 서울’은 2006년부터 시작됐는데, 올해는 ‘미술에서의 연극성’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한층 복합적인 행사로 진일보했습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존 케이지의 말에서 인용한 ‘I have nothing to say and I am saying it’라고 합니다. 무슨 소린지 영 모르겠다고요? 구보 씨도 그렇습니다. 참으로 모호한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지각하게 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네요. 조금 난해하다 싶어도 전시 기간에 산발적으로 열리는 퍼포먼스를 쫓다 보면, 자신의 코드와 딱 맞는 예술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특히 평소에 조용한 전시장에서 그림만 보는 게 지겹다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더욱 좋은 기회입니다. 아, 그리고 화동의 10곳 외에 구 서울역사와 대학로의 쇳대박물관에서도 행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빠뜨리지 마시고요.
안젤라 불로흐의 2005년 작, RGV SPHERES (위) 다나카 고키의 2008년 작 \'APP roach to an Old House\'.
아무리 미술에 문외한이라고 하는 분들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정말 잘 알고 계신 것 맞나요?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분인데, 이번 기회에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완전히 마스터하는 것은 어떨까요? 바로 지난달 용인에 새롭게 개관한 백남준아트센터의 ‘백남준페스티벌-Now Jump’(10. 8~2009. 2. 5)로 가면 가능할 듯합니다.
이영철 초대관장은 ‘친절한 과외 선생님’처럼 백남준의 어린 시절부터 일본 독일 미국을 거치기까지의 시대적 배경과 활동상을 전시로 풀어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부잣집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유학을 떠나 당시 가장 실험적이었던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음악가 존 케이지는 물론 미술가 요셉 보이스, 무용가 머스 커닝햄,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 전자공학자 슈야 아베 등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백미는 백남준의 작품 ‘TV피쉬’ ‘TV가든’ ‘엘리펀트 카트’겠지만요.
‘백남준페스티벌’은 “창조! 창조! 창조!”를 외쳤던 백남준의 전위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는 동시대 작품도 적극 수용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술과 비(非)예술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백남준을 닮은 미술가, 건축가, 무용가, 음악가입니다. ‘플랫폼 서울’처럼 ‘백남준페스티벌’도 다양한 퍼포먼스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습니다.
퍼포먼스는 지루하지 않아서 좋긴 한데, 단점이 있다면 놓치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미리 시간표 확인하시고 늦지 않게 가세요!